Home 신앙자료실 신앙자료실(5월 19일, 둔스탄)

신앙자료실(5월 19일, 둔스탄)

621
0
공유

5월19일(월)

    

둔스탄(캔터베리대주교, 수도운동의 부흥가, 968년)

    

둔스탄은 약 909(910)년경 글래스턴베리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는 작은아버지인 캔터베리 대주교 집에서 살았으며 아일랜드 수사들과 순례자들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 뒤 잉글랜드의 국왕 애셀스탠의 궁전에 들어갔다. 그의 삼촌이 그에게 수도원으로 들어가기를 권했다. 처음에 둔스탄은 망설였으나 결국에 그는 그가 가지고 있는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수도원에 가기로 결정하였다. 수도원에서 수사가 된 둔스탄은 글래스턴 베리로 다시 돌아와 음악과 금속공예, 조명등 창작작업에 몰두하였다. 둔스탄은 943년경 글래스턴베리에 있는 수도원을 재흥시키고자 하는 왕 에드먼드 1세의 부름을 받아 글래스턴베리의 대수도원장직을 맡게 되었다. 이후 둔스탄은 영국 전체의 수도원운동을 부활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955년 에드위그 왕이 즉위하고 둔스탄은 왕 에드위그와 불화가 있었다. 그 불화로 둔스탄의 영향력과 직위는 사라지고,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플랑드르 지방으로 쫓겨났다. 플랑드르 지방에 머무는 동안 둔스탄은 베네딕트 수도원(청빈, 정절, 복종의 의무를 중히 여기고 오로지 수행과 노동에 종사)의 왕성한 부흥운동과 접하게 되면서 유럽 대륙의 수도원 제도를 연구하였다.

    

에드위그왕이 죽고, 잉글랜드의 왕이 된 에드거 왕이 957년 둔스탄을 다시 글래스턴으로 불러들여 우스터 및 런던 주교로 임명하였고, 959(960)년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하였다. 둔스탄은 캔터베리 대주교 재임기 동안 그의 친구 에텔월드와 오스왈드의 도움을 얻어 잉글랜드의 수도원 제도를 재구성하고 개혁하며 재건립하는 일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 세 사람은 수도원의 기도하는 삶을 국가나 교회에 직접 적용한 “행동하는 명상가”로 알려진다.

    

이러한 둔스탄의 개혁운동은 970년 주교와 수도원장들이 모여 “수도원의 규정”을 만드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 협약은 둔스탄의 영감아래 아텔월드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대체로 성 베네딕트의 수도생활 규칙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수도원의 수도사들만이 아니라 일반 평민들에게까지 신앙생활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또한 왕족을 위해 끊임없는 기도를 할 것을 요구하고, 수도원과 왕권이 밀접한 관계를 맺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왕의 임명을 신성화하고, 교회와 국가의 긴밀한 이러한 동맹은 973년 영국의 왕 에드가의 대관식날 대관식 예식문에 잘 표현되어 있다. 둔스탄의 개혁운동은 후에 특별히 “수도원 성당( monastic cathedral)” 과 “수사-주교(monk-bishops)” 의 영국의 교회제도를 발전시키는데 공헌하였다.

    

975년 에드거 왕이 죽었을 때 둔스탄은 에드거의 맏아들인 성 에드워드가 왕위에 오르도록 지켜주었다. 그러나 978년 에드워드가 살해되고 에셀레드 2세가 즉위하자 둔스탄의 대외활동은 약화되었다. 하지만 둔스탄은 캔터베리 대주교로서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였다. 그는 988년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