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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예수님의 눈높이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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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눈높이 교육

박태식신부(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나의 눈높이로  
  
강의를 하다 보면 종종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때가 있다. 학생들이 과연 내 강의를 제대로 알아듣고 있을까? 지금의 저 애매모호한 눈빛은 알아들었다는 뜻일까, 아니면 졸음을 겨우 참고 있느라 저런가? 무표정이 한국 사람의 대표적 특징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수업태도만으로 강의 습득 여부를 올바르게 판단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이를테면, 머릿속으로 딴 생각을 하든, 눈은 교수를 보지만 손전화로는 친구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든 딱히 알 도리가 없다. 그리고 (아주 드문 경우기는 하지만) 상당히 불량한 수업 태도를 가진 학생이었는데 의외로 좋은 답안을 낸 경우도 있다.
 
독일에서 공부를 끝내고 와 처음 강의를 맡았을 때는 의욕에 대단했다. 그래서 영어권, 독어권, 불어권 가리지 않고 신약성서학 분야의 최신 연구 동향을 전달하고 가능한 한 많은 학자들의 견해를 다양하게 알려주려 했다. 그런데 몇 학기 지나면서 어쩐지 강의 효과는 나의 노력과 반비례한다는 느낌이 점점 강해졌다. 과연 어디에 잘못이 있을까? 특히, 수강인원이 일정한 숫자에 도달하지 못하면 강의를 빼앗기고 마는 게 냉혹한 시간강사의 세계이다 보니 신속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 독일 사람들이 즐겨하는 말대로 잘못하면 길바닥에 나앉을 신세였다. 한쪽에선 어린 아들이 접시위에 맛있는 고기반찬을 놓아달라고 애절한 눈길을 보내는 판인데 말이다.
 
이렇듯 사설을 늘어놓은 데는 이유가 있다. 예수님 역시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루도 아니고 3년씩이나 매일 수천 명이 제 발로 몰려오게 만들었고 그 때 마다 하느님의 엄청난 감동을 가슴 깊숙이 심어주었다. 무언가 대단한 비법이 숨어있음이 틀림없다. 물론 2천년 뒤의 대한민국이라는 환경이 사는 우리로서 예수님의 인기비결을 완전하게 알아내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성서에 보도된 바를 한자 한자 자세히 읽어보면 약간의 틈이 보이기도 한다.
 
산파술과 결의론
 
유대 율사들의 학풍에 따르면 학생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암기력이었다. 율법서 어느 구절에 어느 대목이 있는지를 우선 외워야 했다. 공부의 교재는 토라(모세오경)인데 그 양이 실로 방대했다. 그러니 암기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율사공부에 어려움을 느끼기 마련이었을 것이다. 외우는 능력과 동반해 또 한 가지 필요한 능력은 선배 율사들의 해석을 공부하고 이해하는 것이었다. 교재는 ‘장로들의 전승’(혹은 조상의 전통)이란 것(마르 7,5 참조)이었는데, 처음에는 구두전승이었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미슈나>, <토세프타>, <탈무드>로 발전했다.
 
장차 율사를 꿈꾸는 학생은 스승을 찾아가 개인적인 제자가 되고 스승은 그에게 알맞은 교육을 시킨다. 그 때 사용되는 방법이 산파술이었는데, 예수님 역시 산파술을 종종 사용했다(루가 10,25-37). 산파술의 원칙은 간단하다. 먼저 학생이 선생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 그러면 선생은 대답대신 오히려 학생에게 역 질문을 던진다. 이 방법은 오늘날의 교육 현장에서도 많이 사용된다. 학생이 질문을 던질 때는 대체로 자신의 머리 속에 해답을 갖고 있으면서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교수를 통해 확인하려는 경우이다. 흔히 ‘질문이 대답을 결정한다.’고 한다. 따라서 학생의 질문을 받았을 때는 우선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라고 물어보면 대답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나갈 수 있다. 루가 10,25-37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이 산파술을 정확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여러 번의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중에 학생은 스스로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얻고 핵심을 올바르게 이해하기에 이른다. 오늘날에도 미국 등지에 있는 율사 학교를 가보면 너른 교실에 학생들이 둘씩 짝을 지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풍경이 눈에 띄는데, 여전히 산파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토라 암기와 ‘장로들의 전승’을 습득한 율사후보생은 산파술 교육을 통해 서로의 견해를 확인하고 접점을 찾아나간다. 그렇게 함으로써 각 사안에 대한 근사한 해결책에 도달할 수 있다. 이를 흔히 결의론決疑論이라 하는데 이해를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미슈나>에 보면 다음과 같은 조항이 나온다. “숯불에 굽는 빵을 개가 물고 가서 건초더미에 태웠다면 그 주인은 빵 값 전부와 건초 값 절반을 변상해야 한다.” 이 조항이 <미슈나>에 실리기까지의 과정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어떤 이의 개가 밖에 나갔다가 사고를 쳤다. 그 사고에는 개주인과 빵 주인과 건초주인이 이해관계가 걸렸을 테고 배상 문제에 이르러 각자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했을 것이다. 며칠째 먹을 것이 없다가 겨우 빵 몇 개 구해 막 먹으려던 참인데……, 몇 달간 말린 양질의 건초였는데……, 아니, 내가 언제 우리 집 개에게 사고 치라고 시켰단 말이요?
 
그럴 때 필요한 사람이 바로 율사이다. 율사는 나름의 합리적인 문제 해결책을 제시했고 그 해결책을 전승으로 남겼다. “주인은 빵 값 전부와 건초 값 절반을 변상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오.” 그리고 언제 또 그런 일이 생길지 모르니 문서로 남겨두는 게 상책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율사는 잘못 생각했다. 도대체 상식적으로 볼 때 똑같은 일이 어떻게 또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별별 것들을 다 싣다보니 <미슈나>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율사의 해석에도 토라와 동등한 권위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토라를 받아 여호수아에게 물려주었으며, 여호수아는 장로들에게, 장로들은 예언자들에게, 그리고 예언자들은 그 율법을 대회당의 남자(율사, 장로)들에게 물려주었다.”(<미슈나> 아보트편 1,1) 즉, 율법해석에서 우리에게는 익숙한 상위법上位法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결의론적인 성서해석과 시시때때로 부딪쳤음을 알 수 있다. ‘코르반’은 자기 재산을 하느님께 바치기로 서약을 하면 다른 용도로는 쓰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었다(<미슈나> 느다림 8,7). 그런데 자식들은 이 규정을 악용해 불효를 일삼았고 예수님은 십계명의 제 5계명을 들어 반박했다. ‘부모를 공경하라’가 상위법이라는 뜻이다(마르 7,9-13). 또한 정결례 규정에 따르면 그릇과 손을 씻고 나서 음식을 먹어야 했고(<미슈나> 킬림 5․25장), 금기 식품법은 먹을 수 없는 동물의 리스트를 작성해놓았다(레위 11장). 그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는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다.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마르 7,1-23). 즉, 하느님의 창조섭리에 비추어 음식규정을 해석하신 셈인데 이 역시 상위법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제자들과 예수님

 
예수님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는 것은 주지하는바 대로이다. 하지만 그들의 지적 수준은 균일하지 않았다. 당대의 최고 지성인인 율사들이 있었는가 하면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최하의 죄인들도 있었다. (예수님에 비하면 그래도 일정한 지적 수준을 가진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나는 행복한 편이다.) 그런데 신비로운 점은 이해관계와 지적수준이 각양각색인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는 데 있다. 어느 정도 과장을 감안하더라도 한번에 여성과 어린이를 뺀 남성만 5천명이 모였다니(마르 6,34-44) 실로 입이 딱 벌어진다.  
 
우리는 앞의 두 항목(산파술과 결의론)에서 당시 율사 교육의 학풍과 예수님의 교육방법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예수님은 율사들의 학풍을 잘 알고 있었음이 분명한데 산파술을 십분 활용하고 결의론의 약점을 정확하게 지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율사 교육을 예수님이 받았다는 보도는 성서 어디에도 없으니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익혔다고 봄이 옳겠다. 편하게 말해 무 선생 자통하셨다는 말이다.
 
율사에게 율사후보생이 있었다면 예수님에게는 제자들이 있었다. 예수님이 가까이 두었던 인물들로는 열두 제자가 있었고 조금 넓히면 72제자단(루가 10,1-24)과 여성들(루가 10,38-42;요한 4,5-42)이 있고, 더 넓히면 5천명의 장정이 청중으로 있었다(마르 6,44).   비록 체계적인 교육은 받지 않았으나 그들도 율법규정에 대한 귀동냥 정도는 하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하루하루 먹어야 하고 자신의 재산을 관리해야하는 처지에 놓여있던 평민들에게는 코르반, 정결례, 금식법(마르 2,18-20), 금기 식품 목록 등은 아주 익숙했을 터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에서 놀라운 면을 발견했다. 어릴 적부터 관습에 젖어 무비판적으로 따르던 규정들을 예수님이 단번에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갖가지 율법규정과 그에 대한 율사들의 해석은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비추어보면 모두 허구에 불과했다. 하느님의 자비는 끝 간 데 없이 크셔서 인간이 세워놓은 윤리 규정들로 도저히 묶어놓을 수 없다. 따라서 모는 세상사는 하느님의 눈에 비추어보아야 한다.
 
제자들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유대교에서 정해놓은 공식적인 금식일에도 먹고 마셨으며(마르 2,18), 정렬례에 어긋나게 부정한 손으로 밥을 먹었고(마르 7,2), 예수님과 같이 죄인과 세리와 즐겨 먹고 마셨던 ‘먹보에 술꾼’이었다(마태 11,18-19). 서슬이 시퍼렇던 제도권 종교인의 싸늘한 눈빛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이는 분명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영혼의 자유를 맛보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느님은 우주를 보듬을 정도로 넉넉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바야흐로 속박의 시대가 지나 자유의 시대가 온 것이다.
 

학생의 눈높이로

 
이 글의 시작에서 시간 강사의 서러움을 토로했다. 내가 구하던 답은 의외로 간단한 데 있었다. 선생이 원하는 강의가 아니라 학교와 학생들이 원하는 강의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수강생 중에 신약성서학의 세계적인 석학이 혹시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강의 수준을 마냥 높여서는 절대 안 된다. 오히려 가능하면 쉽게, 가능하면 구수하게, 가능하면 간결하게 내용을 정리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행여 학생들이 졸기 시작하면 은근슬쩍 흥미를 끌 수 있는 이야기를 5분쯤 들려준다. 예를 들어, 따끈따끈한 정치판 소식이라든가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얻어들은 이야기를 현장감 넘치게 묘사한다. 그러노라면 어느덧 졸음은 사라지고 강의집중력이 다시 살아나게끔 되어 있다. 십년 강의를 하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요령이다.
 
예수님은 철저히 제자들의 눈높이에 교육의 수준을 맞추었다. 그들이 절실하게 필요로 했던 문제들에 해답을 제시했는데, 그 가르침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제자들이 크게 변하고 말았다. 현장에 없었으니 예수님의 가르침을 속속들이 규명해낼 수는 없지만 그 가르침의 결과는 제자들의 파격적인 행동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사람은 여간해서 변하지 않는다.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시절이 바뀌어도 여전한 게 사람이다. 더구나 교리와 관습에 짓눌려 옴짝도 못하며 율사들의 눈치나 보던 겁쟁이들이라면 변화를 더욱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예수님의 제자들은 완전히 바뀌어 마음대로 율법을 어길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유인이 되었다.
 
혹시 독자 여러분도 그런 스승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이제까지 헛살았다는 점을 깨우쳐주고 하느님의 온전한 자유를 선사해준 그런 스승 말이다.
 
그림자를 벗어버리고 싶은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그림자는 떨어질 줄 몰랐다. 그의 고충을 들은 현자가 말했다. “걱정 말게, 세상에 그렇게 쉬운 일도 없네. 나무 그늘로 들어가면 된다네.”
교리와 관습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우리 시대에도 예수님의 가르침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