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지도자 예수

[신앙] 지도자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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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예수
박태식신부(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낙제점 지도자 예수


요즘 기준으로 지도자 예수를 평가할 때 과연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잠시 망설여진다.  예수의 의사결정 방법은 민주적 절차와 거리가 멀었고, 각 사람의 구구절절한 사정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대신 오직 하느님 나라를 위해 희생하라는 명령 일색이며, 모두 잘 먹고 잘 살게 만들어주기는커녕 세끼 밥도 제대로 해결해주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공중에 나는 새와 들에 핀 꽃을 보라’고까지 하였을까? 그런가하면 예수가 주변 사람의 충고에 귀 기울였다는 기록은 눈 씻고 찾아도 복음서에서 발견할 수 없으며,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차마 입에 담기 힘들 말조차 하였다. ‘저주 받아라’, ‘독사의 새끼’, ‘회칠한 무덤’은 기본이고 ‘눈을 빼 던져라’, ‘팔을 잘라 던져라’, ‘차라리 맷돌을 목에 걸고 물에 빠져 죽어라’ 등등. 어느 날인가 그래도 맘이 통했던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를 조용한 곳으로 데려가 ‘제발 곧 죽는다는 말 좀 고만하시라’고 부탁하자 ‘사탄아 물러가라’는 폭언마저 서슴지 않았다.
  
그러니 예수라고 하면, 한마디로,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지도자 상이 떠오른다. 그런 막무가내 지도자 예수가 삼년 동안이나 공동체를 이끌어간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다. 더구나 부활 승천 후 오히려 공동체성이 탄력을 받아 오늘날 세계 인구 절반이 예수를 명실공이 최고의 지도자로 섬기고 있으니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지도자로서 예수의 모습을 알기 위해 우선 그분이 이끌었던 공동체의 성격을 살펴보겠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다음에 지도자로서 예수의 특징을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변모산 이야기’(마르 9,2-13)를 살펴볼 텐데 복음서에서 거의 유일하게 예수의 신성이 드러나는 본문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난 후 독자들은 예수가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었을 때 벌어질 일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란다. 그렇게 부탁하는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예수의 공동체

  
예수의 추종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먼저 예수를 따르기로 결정한 후에도 자신들의 일상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있는데, 편의상 그들을 ‘재가在家제자’라 이르겠다: “예수가 등장하는 곳곳에서 지지자들이 생겼다. 그들은 자기네 가족과 함께 하느님 나라의 통치를 기다리며 예수와 예수의 사자使者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온 나라 안에서 그런 사람들이 발견된다. 특히 갈릴래아는 물론이고, 예컨대 베타니아나, 유대아, 또는 데카폴리스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마르 5,19-20).” 이름이 알려진 재가제자로는 유대인 최고회의(산헤드린)의 의원이며 후에 예수에게 자신의 동굴 무덤까지 양보한 아리마테 요셉(마르 15,42-47), 예수를 찾아와 가르침을 받은 바리사이파 유력인사인 니고데모(요한 3,1-21), 세리장 자캐우스(루가 19,1-10) 그리고 예수의 제자이자 친구로 불린 나자로 등이 있다(요한 11,1-42).
   
다음으로 예수에게 소명을 받은 후 함께 다니며 동고동락했던 이들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다. 이들을 재가제자와 견줄 때 ‘출가出家제자’라 부르면 편하다. 우리가 본격적인 의미에서 제자단이라고 할 때는 보통 출가제자를 뜻한다. 제자단에는 비단 베드로를 위시한 열 두 제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는 단지 확정된 집단일 뿐이고 실제로 예수를 따르던 이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았다. 네 복음서에서 ‘제자’(마테테스)라는 어휘를 ‘열두 제자’에게 한정시켜 적용하는 책이 오직 마태오복음뿐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예수의 제자단을 열두 명으로 국한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비록 열두 제자에 속하지 않지만 예수와 동행했던 인물을 꼽아보자. 글레오파(루가 24,18)와 바르사빠 요셉과 마티아(사도 2,23-26)와 요한계 문헌에만 등장하는 예수의 애제자(요한 13,23-26;18,15-16;19,26-27;20,2-10;21,7.20-23)가 있다. 특히, 루가는 열두제자와 구분되는 제자들을 칠십인(혹은 72인) 제자단이라 하여 출가제자의 범위를 대폭 넓혀 놓았다. 유대인들에게 70은 7과 10이라는 완전수의 결합이다(7일 동안의 창조, 10계명), 그들 역시 복음 전도의 소명을 받았음은 물론이다(루가 10,1.17). 그리고 예수를 따르던 다수의 여성들도 제자단에 속하고(루가 8,1-3), 예수의 가족도 그를 따르던 무리에 포함될 수 있다(사도 2,14).
   
복음서 보도에 따르면 일행의 살림을 꾸려나가는 일은 전적으로 제자단의 몫이었던 것 같다. 제자들은 음식을 마련해 두어야 할 책임이 있었고(마태 16,5-7;요한 4,31-33), 최후의 만찬을 할 장소와 음식을 준비할 임무를 맡았으며(마르 14,12-16), 예수를 배반한 유다는 예수 일행의 자금을 관리했다고 전한다(요한 12,6). 그리고 여성들의 역할도 중요했는데 그들은 재산을 팔아 예수를 도왔고(루가 8,3), 예수의 시중을 들었으며(마르 15,41), 예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러 무덤을 찾아갔다(마르 16,1). 제반 상황들을 둘러볼 때 제자단은 예수를 지도자로 모신 일종의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가 이끌었던 ‘생활공동체’의 성격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사도행전은 예수의 부활 승천 후 처음으로 탄생한 예루살렘 모교회의 역사를 다룬다. 말하자면 그리스도교 최초의 교회사인 셈이다. 예루살렘 모교회의 실상을 보도하면서 모교회를 열두 사도의 집단 지도 체제로 움직이던 ‘소유공동체’로 규정한다(2,43-47;4,32-37). 모든 교우들이 각자 자신의 재산을 팔아 사도들에게 가져오면 필요에 따라 재분배하던 방식이다. 즉, 예루살렘 모교회는 ‘사유재산권의 포기’를 기치로 내걸었던 것이다.
   

파격적인 지도자상

   
도대체 예루살렘 모교회에서는 그런 별난 공동체 질서를 어디에서 본 따온 것일까? 인간의 이기심을 십분 고려할 때 도대체 있을 법하지 않은 규칙 아닌가? 가장 합리적인 대답은 모교회가 살아생전 예수가 이끌던 공동체를 모델 삼아 그대로 모방하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예수는 세리장 자캐우스의 재산을 헌납 받았고, 여성들의 재산 기부와 봉사를 이끌어 냈으며, 세리에게서 공동 식사를 제공 받았고, 이름 모를 예루살렘 교우에게 최후의 만찬에 해당하는 밥상을 준비시켰으며, 아리마테 요셉에게서는 무덤까지 양보 받았다. 생산 활동이라곤 없이 오직 하느님 나라 선포에만 주력했던 예수의 ‘생활공동체’가 출가제자와 재가제자에게서 물질적인 지원을 받은 것이다. 이를 보다 그럴듯하게 증명하는 이야기 한 가지가 복음서에 나온다.
   
어느 날 영원한 생명을 원하는 부자 청년이 예수에게 온 적이 있었다(마르 10,17-27). 예수는 그에게 가진 재산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전부 내놓은 후 따라 나서라고 했다. 이 요구를 도움 받는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재산을 내 놓아야 하는 청년의 관점에서 보면 ‘사유재산권의 포기’를 요구한 것이다. 부자 청년이 황망하게 발길을 돌리자 옆에 있던 베드로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서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10,28)라며 변죽을 울렸다. 즉, 예수의 생활공동체는 ‘사유재산권의 포기’가 우선이었던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 모교회와 직접 통하는 특징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전 재산을 바쳐 공동체에 투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답은 한 가지뿐, 바로 예수 그분으로부터 자신의 인생 전체를 바꿀만한 엄청난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외에 어떤 설명이 가능하겠는가?
   
모두들 인생이 복잡하다고 한탄 한다. 자식 걱정, 부모님 걱정, 재산 걱정, 건강 걱정, 출세 걱정 등등이 슬그머니 우리 인생에 끼어들었다가 어느 날 내 전체를 휘어잡아 버린다. 예수에게 쫓기로 작정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버님 장례를 먼저 치르겠습니다, 결혼부터 하고 나서 다시 오겠습니다, 안식일 법에 따르면 당신의 행동은 잘못된 것입니다, 논과 밭을 팔아야 하는데 이제 막 매매계약이 성사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부자청년이 나타났고 그의 어리석은 행동은 2천년동안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내 재산을 포기하라고요? 천만의 말씀!’
  
그 모든 변명에 대한 예수의 충고는 간단하다. “쟁기에 손을 얹고 뒤를 돌아보는 것을 하느님 나라에 맞지 않습니다.”(루가 9,62)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집착을 버리면 자유를 얻는다’가 될 것이다. 예수만 바라보고 공동체로 모여들었던 이들은 인생에서 처음 만나는 자유를 경험했을 것이다. 세기조차 버거운 613가지 율법 규정을 ‘사랑의 계명’ 한가지로 환원시켜 종교적 자유를 선사했고, ‘죽은 자의 일은 죽은 자에게 맡기라’는 궤변을 통해 가족의 연줄을 끊어주었다. 돈 가진 것 다 내놓으라고 하여 무통장, 무카드의 홀가분함을 선사했고, 위선자들에게 온갖 독설을 퍼부음으로써 언어의 자유를 허락했다. 그리고 마침내 부활 사건을 통해 죽음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었다.

예수처럼 매력적인 분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영광스러운 변모(마르 9,2-13)  

  
유대인은 예로부터 ‘산’을 비범한 장소로 여겼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던 곳이 모리아 산이고 지혜문학에 즐겨 등장하는 소재가 산이다. 그 중에서도 모세는 누구보다 산과 인연이 깊다.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과 모세의 첫 만남, 십계명을 받은 곳, 모세가 마지막을 맞이한 곳이 모두 산인 까닭이다. 산이란 한마디로, 인간이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이자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낸 계시의 장소이다.  
  
예수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산으로 간다. 그러더니 갑자기 세상 어떤 발광체보다 환한 빛을 냈다. 인간이 실명하는 빛의 온도가 보통 2천도라고 하니까 바울로의 눈에 들어왔던 빛의 충격이 아마 그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예수가 빛을 냈다는 것은 평소에 지니셨던 인간 껍데기를 걷어내고 신적인 알맹이를 드러내셨다는 뜻으로, 바로 하느님과 같은 초월적인 모습이다. 이는 시나이 산에서 하나님이 나타난 신현神現사화(출애 24장)와 꼭 닮았다. 예로부터 ‘산’은 계시의 장소라고 하지 않았는가!
   
예수가 천상의 모습으로 변하고 나서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잘 알다시피 구약시대의 엘리야와 에녹은 죽음을 겪지 않고 하늘에 바로 올라간 인물로 유명하고, 모세 역시 (전설에 따르면) 죽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당시에는 모세와 엘리아가 종말이 되면 나타나리라는 민간신앙이 있었다(말라 3,23-24 등). 말하자면 두 사람은 종말론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예수와 친구가 되어 말씀을 나누었다는 것은 모세와 엘리야가 갖는 의미를 통해 예수를 조명해보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기술적으로 말해, 마르 9,2-13은 신학적 성찰이 반영된 본문으로, 복음서작가의 편집사상이 담겨있다. 하느님 세계에서 영생을 누리는 이들(모세, 엘리야)이 실시간으로 예수와 대화를 나누었으니 예수 역시 초월적인 인물이라는 뜻이겠다.
   
이 본문은 지도자로서 예수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어디에서 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분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그걸 알면 이미 천상의 영역으로 넘어간 사람이다. 따라서 인간은 절대 몰라야 마땅하다. 다만 예수가 아끼고 사랑하던 제자들 앞에서 빛에 싸인 모습을 보여 준 것은 자신의 공동체에게 주어진, 일종의 선물처럼 보인다.
    

만점 지도자 예수

    
요즘 차기 대통령 선출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다. 그래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에 대해 설왕설래 많은 말들이 오가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은 지도자를 요구한다. 우선 민주적으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을 세세하게 살펴주며 놀랄만한 추진력으로 우리나라를 초강대국 대열에 하루빨리 올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고질병인 교육, 부동산, 양극화, 윤리적인 타락, 남북문제, 부정부패에 이르기까지 시원하고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면서 대통령 자신은 겸손과 자신감을 두루 갖추고 도덕적으로 한 치의 오점도 없어야 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황당무계한 기준이란 생각이 든다. 아무튼 요즘 거론되는 후보들 중에 (모두들 자기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힘주어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자질을 두루 갖춘 사람은 없어 보인다.
  
우리 국민의 수준 높은 기대감에 비추어볼 때 예수는 어떨까? 자신 있게 말하건대 분명 0점 지도자다. 그런데도 예수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가?    
  
얼마 전에 대학시절 은사분이 편찮으시다는 말을 듣고 댁으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 상계동 빈민들과 오래 사신 데일리 신부님인데 몸이 많이 쇠약해지셨다고 했다. 아무튼 화곡동 예수회 공동체로 가면서 그분의 모습을 떠올리려 했으나 워낙 뵌 지 오래 돼 얼굴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신부님의 눈을 보는 순간 돌연 오랜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 저 눈빛!’ 2천 년 전 예수님을 처음 뵌 사람들 역시 그분의 눈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아! 저 하느님의 눈빛!’ 이를 두고 리더십 분야의 전문가는 예수를 ‘카리스마 형 지도자’로 분류할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 그런 식의 분류법은 왠지 가벼워 보이고 맘에 썩 안 들지만, 요즘 세상이 벤치마킹 시대니 어쩔 수 없이 좀 따라가야겠다.
  
“어린 시절 프란치스코는 번창하던 포목 사업을 이어받으리라는 가족의 기대 속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원래 삶이란 주변의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프란치스코는 십대에 이미 빈자들에게 이끌려 아버지 가게에서 만난 가난한 사람들에게 옷이나 망토를 공짜로 나누어주곤 했다. 프란치스코는 특별히 종교적인 젊은이는 아니었지만 어느 날 교회에서 예수가 부자 청년에게 자신이 가진 걸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요구한 복음을 들은 후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그는 즉시, 이야말로 정확히 자신이 하려는 일이라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예상처럼 그의 생각에 찬성하지 않았으며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심지어 그를 가두면서까지 만류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에게는 돈과 좋은 옷과 소유물들을 버리는 일은 상실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였다. 재산의 포기는 그를 둘러싼 사회적 기대들을 확고히 깨고 마음의 짐을 덜어 주었다. 이는 헐벗은 그리스도를 헐벗은 채로 따르는 기회였으며, 스스로를 열고 자신에게 다가올 모든 고통과 기쁨을 위해 모든 것을 수용하는 길이었다.” (하비 콕스, ‘6장: 그리스도교’, <우리 종교>, A. 샤르마 엮음, 박태식 옮김, 근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예수의 지도자상을 최고로 벤치마킹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