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구하기/받기 – 청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요

[심오한 삶의 발견]구하기/받기 – 청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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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오한 삶의 발견]구하기/받기 – 청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요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너희 중에 아들이 빵을 달라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는 악하면서도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마태 7,7-12

그리스도인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가 실제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같은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세상의 부자관계에 비겨서 표현했을 뿐 이는 은유에 불과합니다. 사실 설명이 불가능하니까 ‘부모와 자녀’라는 은유를 사용한 것입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설명이지요.

고대 그레코-로마 시대의 수사법에 대비논법이 있습니다. 라틴어로는 a minori ad majus 라 하는데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라는 뜻입니다. 우리말로 ‘~라면, 하물며 ~’ 정도가 될 겁니다. ‘인간 아버지도 아들이 빵을 달라면 빵을 주는데, 하물며 하늘 아버지는 어떻겠느냐?’는 논리입니다. 대비논법과 은유를 겹쳐 사용하여 예수님은 하느님을 설명합니다.

하느님은 인간 아버지보다 훨씬 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기에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청하면 주실 것이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기복신앙에 밝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구절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빌고 열심히 간구하면 하느님이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기복신앙은 한국에서 가톨릭⋅개신교 구별 없이 그리스도교가 엄청나게 성장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알 듯이 소원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하느님이 원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겁니다. 그런 상황에 익숙한 인간은 여러 가지 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인간은 계획하고 하느님은 비웃으신다.’, ‘하느님은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을 열어주신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등등. 하나같이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보려고 만들어진 말입니다. 아무튼 우리의 소원과 하느님의 뜻은 다르기만 하니 답답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우리는 모두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숙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지, 하느님은 누구신지, 기도란 무엇인지 마음 깊숙한 곳으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