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열매 – 씨 뿌리는 자

[심오한 삶의 발견]열매 – 씨 뿌리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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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오한 삶의 발견]열매 – 씨 뿌리는 자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예수께서 다시 호숫가에서 가르치셨다. 군중이 너무나 많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배를 타고 그 안에 앉으신 다음 배를 물에 띄웠다. 그리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께서는 비유로 여러 가지를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 들어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바닥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쪼아먹고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서 싹은 곧 나왔지만 해가 뜨자 뿌리도 내리지 못한 채 말라버렸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 가시나무들이 자라자 숨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잘 자라 열매를 맺었는데, 열매가 삼십 배가 된 것도 있고 육십 배가 된 것도 있고 백 배가 된 것도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어서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혼자 계실 때에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의 뜻을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게 해주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들려준다. 그것은 그들이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알아보고 알아듣기만 한다면 나에게 돌아와 용서를 받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 비유도 알아듣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비유들을 알아듣겠느냐? 씨 뿌리는 사람이 뿌린 씨는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이다. 길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은 마음속에 뿌려지는 그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날쌔게 달려드는 사탄에게 그것을 빼앗겨버리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씨가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마음속에 뿌리가 내리지 않아 오래 가지 못하고 그 후에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를 당하게 되면 곧 넘어지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씨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와서 그 말씀을 가로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씨가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잘 받아들여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마르 4,1-20

어느 농부가 씨를 뿌리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씨는 길에 떨어져 새들이 쪼아 먹었고,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져 햇볕에 말라죽었으며, 어떤 씨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져 열매를 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몇몇 씨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수확을 냈다는 내용입니다.

비유에 나오는 농부란 실은 예수 자신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전하고 다니는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씨 뿌리는 이’에 견주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는 비유의 농부처럼 부지런히 하느님 나라에 관한 가르침을 이스라엘 땅 방방곡곡에 전하고 다녔습니다. 말씀을 전하면서, 예수는 자신이 뿌리는 ‘하느님 나라’의 씨들이 더러는 박토에 떨어져 결실을 못 볼 수도 있으나 마침내 옥토를 만나 풍성한 열매를 맺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핵심은 바로 하느님 나라에 두었던 예수의 크나큰 희망입니다.

비유가 갖는 부차적인 의미에 관해서는 비유 바로 뒤에 나오는 마르 4,13-20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뿌려지는 ‘씨’란 하느님 나라의 말씀이고 ‘길’은 사탄에게 넘어가는 사람을 뜻하며, ‘돌밭’이란 줏대 없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고, ‘가시덤불’이란 세상 욕심이 가득 찬 사람이지만, ‘좋은 땅’이란 글자 그대로 하느님 나라의 말씀을 잘 수용한 사람을 일컫는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비유에 등장하는 하나하나의 사물마다 나름대로 심오한 의미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런 풀이를 두고 흔히 우의적 해석이라고 합니다.

우의적 해석은 비유를 들으면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줍니다. 나는 과연 어디에 해당할까?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의 삶은 합당한 것일까?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