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김영호박사 칼럼 약속의 자녀

약속의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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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리라. (로마서 9:8)
구약성서의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야가 오실 때에 이루어질 일들 가운데 하나로 “세계선교”를 예언했습니다. 여기서 세계선교라는 말은, 유대인이 아닌 다른 민족의 사람들도 메시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이사야 9:1-2)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 모든 섬에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자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도다. (이사야 24:15-1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이사야 42:6-7)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이사야 49:6)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명을 세계선교로 알고 계셨으며, 제자들도 이 사명을 함께 수행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행전 1:8)

그런데 예수의 제자들이 이 세계선교의 사명을 이해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영상을 본 이후에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우 극적인 이 사건을 성서에 기록된 그대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베드로는 기도를 드리러 옥상에 올라 가 있었다. 때는 낮 열 두 시쯤이었다. 아래에서는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베드로는 시장기가 들어 무엇을 좀 먹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무아지경에 빠져 들어 갔다. 그러자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와 같은 그릇이 네 귀퉁이에 끈이 달려서 땅으로 내려 오는 것을 보였다. 그 속에는 온갖 네 발 가진 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짐승과 하늘의 날짐승이 들어 있었다. 그 때 “베드로야, 어서 잡아 먹어라” 하는 음성이 들려 왔다. 베드로가 “절대로 안 됩니다, 주님. 저는 일찌기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번도 입에 대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는 음성이 다시 들려 왔다. 이와 같은 말이 세 번 오고 간 뒤에 그 그릇은 갑자기 하늘로 들려 올라 갔다.

베드로는 자기가 본 영상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하고 혼자 어리둥절해 있었는데 마침 로마 군대의 백인대장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와 문 앞에 서 있었다. 베드로는 아직도 자기가 본 일을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사람들이 와서 너를 찾고 있으니, 어서 내려 가서 주저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거라. 그들은 내가 보낸 사람들이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내려 가서 “당신들이 찾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요. 어떻게 오셨소?” 하고 묻자, 그들은 “고넬료라는 백인대장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며 하나님을 공경하며 모든 유다인에게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거룩한 천사에게서 선생님을 집에 모셔다가 말씀을 들으라는 지시를 받고 우리를 보낸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튿날 베드로는 채비를 차리고 그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을 시작하였다. “나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두려워하며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해 주셨는데, 그것은 만민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시켜 선포하신 평화의 복음입니다.”
(행전 10:9-24, 34-36)

이 일이 처음에는 다른 사도들과 신도들 사이에서 비난과 논란이 있었지만, 베드로의 설명을 듣고 결국에는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베드로는,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누구이기에 감히 그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도 회개하고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다”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행전 11:17-18)

이러한 세계선교의 사명을 자신의 특별한 사명으로
깨닫고 행한 자가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이방인들의 구원은 그들도 “약속의 자녀들” 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씀입니다.
육정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오직 약속의 자녀만이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 받는다는 뜻입니다. (로마 9:8)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선행을 보시고 불러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불러 주시며 선택의 원리에 의해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로마 9:11)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그 때 육정으로 난 자식이 성령으로 난 자식을 박해하였는데 지금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몸에서 난 자녀가 아니라 자유인의 몸에서 난 자녀들입니다. (갈라디아 4:29, 31)
약속의 자녀는 율법을 따라 사는 육신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율법에서 해방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하나님의 자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약속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는 자유롭게 된 자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갈라디아 5:1)

세계선교, 이방인 선교, 약속의 자녀를 모으는 선교, 예수의 자유케 하는 평화의 복음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는 선교는 바로 이러한 정신에 기초를 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동안 곳곳에 예수사람들을 일으키는 운동을 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예수사람들을 모으는 운동을 하면서, 겨자씨교회를 개척하면서, 나에게 주신 새로운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전통과 율법의 무거운 짐을 메고 예수를 믿는 오늘의 기독교인들과, 세상과 육신의 일에 짓눌려 사는 세상 사람들을 함께 해방하는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세계선교는 기독교 바깥에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계선교는 교회 안과 바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율법의 자녀, 육신의 자녀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 자유 한 자녀로 만드는 일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명은 나 혼자에게만 주어진 사명이 아닙니다. 이 사명은 예수를 신실하게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일해야 합니다. 각 사람들의 가정에서, 일터에서, 생활 속에서, 작은 겨자씨 같은 예수사람들의 모임들을 만들고, 이를
통해서 예수께서 메시아의 일을 행하실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새롭게 형성되는 새로운 세상, 오늘의 땅 끝인 인터넷의 세상에까지 예수의 자유케 하는 복음 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