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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관]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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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가 10,41-42)

여성이 달라졌다

최근 브라질에서 여성대통령이 탄생되자 여성의 지도력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언론 보도를 자세히 살펴보니 실제로 여성이 남성과 경쟁해 당당하게 이겨내는 경우가 상당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사법, 행정, 외무 고시 합격생 비율이 남성에 비해 여성이 우월하고 연수원 성적도 월등해 여성들이 주로 판사로 임명된단다.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담당 의사가 입원환자의 회진할 때 뒤를 좇는 수련의들 상당수가 여성들이다. 특히, 요즘 잘나가는 서울의 5대 종합병원을 보면 수련의들 중 대다수가 여성이라고 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나가는 데 있어 여성의 능력이 남성을 앞지른다는 지표가 될 것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여성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아직 제한된 까닭에 그 중 남녀차별이 덜한 분야에서 여성이 두각이 나타낸다는 의견도 있지만, 아무튼 오늘날 사회 전 분야에서 여성의 약진은 괄목할만하다. 그리스도 교회만 제외해 놓고 말이다.

TV 드라마 ‘성균관스캔들’의 최종회를 우연히 보았다. 거기에서 정조와 정약용이 한 가지 사안을 놓고 의견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금녀의 집인 ‘성균관’에 입학해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까닭에 임금의 주목을 받은 청년이 실은 남장여인이었다. 이로 인해 정조 스스로 곤란한 입장에 놓일지 모를 상황에서 벌어진 대화였다. 정조는 약용에게 물어본다. ‘당신이 따르는 서학에서는 남성과 여성을 동등하게 여긴다는데 당신 생각도 그와 같은가?’ 라는 내용의 질문이었다. 약용은 정조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서학이 그러한 것은 사실이나 나의 주군은 당신이기에 당신의 뜻을 따르겠다.’는 절묘한 말솜씨로 자칫 목이 달아날 순간을 넘긴다.
‘성균관스캔들’에서 보여주려는 문제의식은 간단하다.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배움의 기회를 줄 수 있는가?’ 이다. 2천년전 예수에게도 똑같은 질문이 주어졌다.

여성도 교육을 받을 있는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질문 축에도 들지 않지만 예수가 살던 당시의 유대 땅에서는 어림도 없는 질문이었다. 학교는 소년만 위한 곳이었고, 부인들에게는 토라 공부의 길이 막혀 있었으며, 여성들은 회당 예배 때 방청객에 불과했다. 하지만 예수는 달랐다. 그분은 여성에게 공평한 교육의 기회를 주었다.

‘마리아와 마르타 이야기’(루가 10,38-42)는 예수가 여성에게도 동등한 교육 기회를 주었음을 알 수 있은 좋은 예이다. 어느 날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가 사는 집에 예수가 들러 식사대접을 받게 된다. 그러나 마르타는 음식 장만에 여념 없었고, 마리아는 동기의 분주함을 외면한 채 예수의 말씀에 열중해 있었다고 한다. 손님이 오면 어디 가나 여성만 바쁘기 마련이다. 그 때 마리아는 예수의 “발아래서”(프로스 투스 포다스: 39절) 말씀을 들었는데, 이는 율사가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베풀 때만 제한적으로 쓰이는 전문 용어이다. 사도 바울로는 자신이 받은 율사 교육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유다인입니다. 나기는 길리기아의 다르소에서 났지만 바로 이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믈리엘 선생 발아래서 우리 조상이 전해 준 율법에 대해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습니다.”(사도 22,3)고 했으며, 예수가 제자들을 가르칠 때도 비슷한 표현이 등장한다(마태 5,1). 즉, 이 표현은 예수가 여성들에게 정식 제자 교육을 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데 정통 유대교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과 나눈 대화(요한 4,1-42)도 여성의 제자 교육에 중요한 암시를 제공한다. 어느 날 예수는 사마리아 지방으로 들어갔다. 유대인은 유배 시기(주전 587-538) 이후로 이방인의 피가 섞였다고 하여 사마리아인들을 상종하지 않았다(2열왕 17,24-41; 집회 50,25-26). 그런데 피가 깨끗한 유대인 예수가, 그것도 상 죄인 취급을 받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걸었으니 경악할 노릇이었다.

대화를 나누던 중 예수를 부르는 여인의 호칭이 여러 차례 바뀐다. 우선 여인은 예수를 평범한 ‘유대인’으로 불렀다가(9절), 그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를 듣고는 구약성서의 유명한 조상인 ‘야곱보다 더 훌륭하신 분’인지 물어보았고(12절), 15절에서는 초대 교회 시절의 일반적인 명칭이었던 ‘주님’으로 예수를 부른다. 그리고 예수가 그 여인의 전력을 속속들이 꿰고 있음을 사실을 알고는 그를 ‘예언자’로 불렀다가(19절), 진정한 예배에 대한 예수의 명쾌한 답변을 듣고 나서는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는다(26.29절). 여인은 마을로 들어가 예수를 증언했고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믿었으며 마침내 예수는 ‘참 구세주’로 추앙 받는다. 예수에게 붙여진 다양한 호칭을 통해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의 참 모습을 알아 가는 과정을 읽어볼 수 있다. 여인이 가졌던 뛰어난 이해력의 결과였다.

여성이 성직에 오를 수 있는가?

오늘날 그리스도 교회 안팎에서 여성 성직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일찌감치 여성 성직을 인정해 평등의 길로 나아간 몇몇 개신교 교단들과 성공회는 그런대로 예봉을 피해가는 편이다. 하지만 언제나 직격탄을 맞는 가톨릭인 경우 문제가 심각하다.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이 세계 언론을 뜨겁게 달구면서 여성 성직이 대안으로 등장했고 제멋대로 여성에게 사제 서품을 주었다가 파문당한 주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 성직이 쟁점화 되지 않은 안전지대라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수면 밑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다.

예수의 열두 사도는 전원 남성이다. 그들은 예수에게 선발되어 그분과 함께 다니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고 정식으로 파견 받았다(마태 10,1-15) 그리고 베드로에게는 천국의 열쇠가 주어지면서 수위권까지 인정되었다(마태 16,17-20). 예수가 직접 세우신 게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사도직이기에, 사실 여성이 낄 자린 없는 셈이다. 그런데 예수의 부활 승천 이후 생긴 교회 상황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바울로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고린토 부근 켄크레아 항구에 세워진 교회엔 포이베라는 여성 교회 일꾼이 있었다고 한다(로마 16,1-2). 정확히 말해 “켄크레아 교회의 봉사자 포이베”이다. 여기 사용된 어휘가 헬라어 ‘디아코노스’인데 봉사자, 성직자로 번역이 가능하며 가톨릭교회 직제에 나오는 부제의 기원이 되는 호칭이기도 하다. 디아코노스의 자격에 대해서는 1티모 3,8-13에 자세하게 나온다.

여성 성직에 대한 또 하나의 믿을만한 자료는 로마제국의 문헌에 등장한다. 이는 그리스도교 문헌이 아니라 신빙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역 논리도 가능하다. 즉, 주변세계에서 인정할 정도로 자명한 것이 여성 성직이라는 논리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오현제五賢帝 중 하나인 트라야누스 황제 시절(98-117년), 비티니아 속주에 총독으로 발령받아 간 플리니우스는 그리스도인 문제로 황제에게 문서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로 고발된 자들의 처리 지침을 황제에게 문의하면서 여러 가지 경우를 거론했다. 일단 그리스도인으로 고발되면 신앙과 목숨 사이에 양자택일하라는 요구를 했고, 잡혀온 신자들 중에 20년 넘게 신앙생활을 한 남성들마저 믿음을 포기했다. 그러다가 한 가지 덧붙이는데 “그럴수록 나는 여부제로 불리던 두 노예로부터 고문을 해서까지 진실을 알아내는 것이 더욱 필요하게 생각되었습니다.”(최석우 신부 번역)라고 한다. 여기서 ‘여부제로 불리던 두 노예’를 라틴어 원문으로 옮기면 duabus ancillis, quae ministrae dicebantur 이다. 미니스트레(ministrae), 곧 두 여성은 성직자였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바울로는 포이베의 신앙을 칭찬했다. 그녀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후원자로 뛰어난 활약을 했던 까닭이다. 또한 두 여성 성직자를 고문할 수밖에 없었다는 플리니우스의 고백을 통해 목숨을 걸면서 믿음을 지켰던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을 만나볼 수 있다. 어떤 남성은 20년 신앙 인생을 헌신짝처럼 버렸는데 말이다.

예수 주변의 여성들이 보여준 모습도 주목할 만하다. 마리아는 예수의 가르침에 재미를 붙여 자리를 떠날 줄 몰랐고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가 메시아임을 알아보았다. 사실 이는 마리아와 사마리아 여인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마리아의 동기 마르타는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요한 11,27)라는 모범적인 신앙 고백을 했고, 부활 예수를 만난 막달라 마리아는 “내가 주님을 뵈었다.”(요한 20,18)는 표준적인 사도직 선언을 하였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최초의 신앙고백을 한 인물은 베드로이다(마태 16,16). 그러나 여성들의 신앙고백은 질적으로 남성들과 차이가 없으며, 남성 제자들의 우유부단함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신뢰감 넘친다. 왜냐하면 삶 전체로 자신의 신앙을 증명했기 때문이다(마르 1,29-31;7,24-30;14,3-9;15,40-47;16,1-8;루가 8,1-3;요한 12,1-8;19,25-27 등등).

여기서 자연스럽게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초기 교회에는 엄연히 여성 성직이 존재했는데 예수의 열두 사도는 전원 남성인가? 그렇다면 예수의 가르침을 초기 교회에서 따르지 않았다는 뜻인가? 그래서 초기 교회에서 혼란에 빠졌던 (남성에게만 주어진) 성직의 순수함이 여성 성직의 철폐를 통해 회복되었다는 뜻인가?

오늘날 가톨릭교회에서 여성의 능력이 남성보다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여성과 남성은 당연히 신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동등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유독 예수는 여성을 사도로 파견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여성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사도로 파견하진 않았다. 사실 그리 복잡한 사연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당시의 치안상태는 몹시 불안했다. 여리코로 가다간 강도를 만나기 십상이고(루가 11,29-37) 예수마저 사도를 파견할 때 지팡이와 단도를 준비할 것을 부탁했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여성을 사도로 파견할 수 있었을까? 여인들을 파견했다가 자칫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았겠는가?

이 질문들의 답을 지상에서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보다는 오히려 기도와 이성에 따른 교회의 과단성 있는 결단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독일 여성신학자인 E.S. 피오렌자의 기도를 옮겨본다. 

하느님의 지혜 / E.S. 피오렌자  

………
우리 언어는 부족합니다
우리 지력은 당신을 파악하지 못합니다
우리 상상력은 당신을 포착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어떻게 부를 지 모르지만
당신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당신 지혜가 우리를 품어 안습니다
당신 신실하심이 우리 가운데 머뭅니다
당신 정의가 우리를 지탱합니다
당신 복된 세계가 우리에게 약속되었습니다
당신 투쟁이 우리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자마다 당신 눈에는 소중합니다
여자마다 당신 가슴에 다가가 있습니다
여자마다 당신 힘과 함께 합니다
여자마다 존엄과 정의를 주장해 마땅합니다
여자마다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거룩한 분, 지극히 자비로운 분이여
우리 죽을 때 우리를 집으로 데려가소서
아멘

(1984년에 발행된 독일의『여성기도책』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