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여우’라 부른 예수

‘여우’라 부른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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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라 부른 예수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마르 12,15-17: 예수께서는 그들의 교활한 속셈을 알아채시고 “왜 나의 속을 떠보는 겁니까?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주시오” 하셨다. 그들이 돈을 가져오자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입니까?”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하고 대답하자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시오. 그러나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주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천황 건드리기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지배자를 황제로 불렀다. 하늘에는 상제가 있고 땅에는 황제가 있다는 식인데, 이는 지배자를 신의 기운을 물려받은 거룩한 인물로 간주했다는 뜻이다. 사실 이런 유의 의미 부여는 비단 중국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는 저승과 이승을 두루 통치하는 존재로 여겨졌고 로마에선 ‘황제숭배’라는 종교가 있어 제국경영의 실효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어디 그뿐인가? 터키의 술탄, 프랑스의 태양왕, 러시아의 차르 등도 지배자를 신성으로 포장된 예다. 이렇게 왕의 권위를 하늘의 권위와 연결시켜서 얻는 효과는 물론 원활한 통치를 위해서이다. 조금 더 속을 헤집어보면 백성들에게 ‘우리를 다스리는 이가 실은 하늘이 보내신 분’이라고 여기게 만들어 철저한 복종을 이끌어내는 통치 이데올로기로서 ‘신성한 왕권’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 신성한 왕권은 옛 이야기가 되었다. 설혹 왕권이 남아있다 하여도 입헌군주제 형태를 띠어 왕이란 그저 구경거리에 불과할 뿐이다. 영국의 버킹검 궁전을 찾는 사람치고 여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처럼 구시대의 잔해가 되어버린 신성한 왕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그들은 아직도 천황天皇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신사에 참배한다. 심지어 1960년대에 미시마 유키오라는 극렬분자는 천황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며 할복했던 적도 있다. 사실 한 시절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정도의 강력한 국가를 만들었던 때의 구심점이 천황이니, 일본의 보수적인 애국자들에겐 천황이 곧 국가일 수도 있는 노릇이다. 따라서 일본을 자극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천황을 건드리는 것이다.

예수는 정치적인 인물일까?

예수가 활동하던 시절의 유다 땅에서도 피 정복지의 불만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로마의 정책이 펼쳐지고 있었다. 로마는 이스라엘에 분봉왕이라는 꼭두각시 정권을 수립해 놓았고,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귀족으로 남아 있게끔 특전을 베풀었다. 로마는 정기적으로 세금을 거두어 감으로써 정복자의 몫을 찾았을 뿐,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군사적인 행동을 자제했다. 가이사리아에 있던 총독은 주말이면 예루살렘에 휴가를 즐기러 가곤 했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약은 정책도 민심을 끌어안지는 못했고, 활화산과 같은 폭발의 기운을 잠재우지 못했다. 유다인들 사이에서 세금 징수를 대신 맡아 처리하던 세리들에 대한 원성이 자자했고, 거리에 열 지어 다니는 로마군의 무력시위는 공포심과 더불어 하느님이 주신 거룩한 땅이 이방인에게 짓밟혔다는 패배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길 가다가 졸지에 부역에라도 차출되는 날이면, 당하는 이들의 마음속에는 적개심이 들끓었을 것이고(마태 5,40; 마르 15,21 참조. 로마군에게는 강제 부역을 시킬 권리가 있었다), 열혈당원들은 가슴에 칼을 품고 다니며 조국 독립의 날을 꿈꾸었다. 민족의 불만은 드디어 66-70년의 제 1 차 유다 독립전쟁으로 터져 나오게 된다.

우선 외관상으로 볼 때, 예수는 빼다 박은 지도자였다. 그는 평소부터 메시아로 추앙 받았는데(마르 8,29), 메시아란 통일 왕국의 위업을 이룬 다윗처럼 강력한 존재이다. 게다가 예수는 갈릴래아 지역을 다스렸던 분봉왕 헤로데 안티파스를 ‘여우’라 불렀고(루가 13,32),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라 하여 사치한 생활에 빠진 왕족을 은근히 비아냥거렸으며(마태 11,9), 헤로데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세례자 요한을 칭찬했다(마태 11,11). 따라서 당시의 유다인들의 눈에는 예수가 다윗의 분신으로 지배자 로마를 쳐부수고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자존심과 명예를 되찾아줄 인물로 비쳐졌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예수를 바라볼 수도 있었다. 예수는 로마의 앞잡이 개인 세리를 제자로 삼았고(마르 2,14), 제국 통치의 상징인 인두세를 선뜻 냈다(마태 17,24-27). 또한, 예수의 참모습을 알아본 이들은 종종 로마인을 포함한 이방인이었다고 하며(마르 7,24-30; 15,49). 그리고 예수는 자신의 종을 고쳐달라고 찾아온 로마인 백부장을 두고 “이런 믿음을 이스라엘에서 본 적이 없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은 적도 있었다(루가 7,1-10). 아무튼 예수는 그의 공생활 중에 말씀과 기적으로 인기가 아주 높아 주위에 언제나 엄청난 숫자의 사람이 몰려 있었으니, 예수의 말 한마디면 그들이 모두 양순한 주민이 되거나 돌연 폭도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었다. 말하자면, 해석하기에 따라서 예수를 얼마든지 신성한 지도자로 간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교활한 여우

상황이 그 정도였으니 예수가 갈릴래아에서 3년간의 활동을 마치고 에루살렘에 입성했을 때쯤에는, 유다인들 사이에서 분명히 그분에 대한 하마평이 오갔을 것이다. ‘이분이 과연 우리를 구해주실 왕일까?’ 이들의 관심이 보다 구체화되어 드러난 곳이 바로 세금납부에 대해 예수에게 물어보는 대목이다. 예수가 어떤 답을 하는가에 따라 그분의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가 만일 세금을 바치라고 하면 로마제국의 왕권을 인정한다는 셈이고 거절한다면 무엇인가 (로마 제국를 전복할?) 속셈이 있다는 뜻이었을 테니 말이다.

예수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질문에 대한 긍정도 부정도 없이 그저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시오. 그러나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주시오”라고 말했을 뿐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하느님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한 말이니, ‘세상일은 로마 황제에게 맡겨두고 당신들을 하늘나라 일에나 신경 쓰시오.’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실제로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이렇게 해석하여 ‘그리스도인들은 그저 정권 잡은 사람들이 하는 대로 보고만 있으시오. 그들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하지 않겠습니까?’로 이 말씀을 받아들이곤 한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이 말씀을 풀어볼 수 있다.

예수의 대답은 질문에 대해 맞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황제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비교하면 과연 어느 쪽이 더 위력이 있을까? 당연히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예수의 대답은 외견상으로, 예수의 답이 황제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구별하라는 것으로 비쳐지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하느님의 나라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들어가 있다. 황제의 것과 하느님의 것 중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

예수는 헤로데를 ‘여우’라 불렀다. 여우는 교활하여 대의명분 보다 자리에 급급해 무엇이 자신의 입지에 도움이 될 지 연구한다. 아니, 설혹 대의명분을 앞세운다 할지라도 종국엔 개인의 이익과 앞날을 도모하는 데 이용할 뿐이다. 헤로데가 로마제국과 백성들 사이에서 벌였던 줄다리기를 염두에 두면 쉽게 이해가 가는 일이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혹시라도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찾으려 한다면 크게 잘못 생각한 게 된다. 그저 헤로데처럼 교활한 정치인일 뿐이다. 예수가 답을 하기 전에 그들의 “교활한 속셈을 알아채시고”라고 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 말씀 하시지요!

한일 관계가 급속하게 냉각되었다. 올림픽 축구 3.4 위전을 하기 불과 이틀 전만해도 조짐이 보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리 된 것이다. 때 맞춰 독도까지 수영으로 건너가 콘서트를 연 가수가 영웅이 되었고 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감격에 찬 눈물이 온 국민의 애국심에 불을 붙였다. 불과 며칠 사이에 온 나라에 반일 분위기가 급상승한 것을 보면 우리 국민 가슴 한구석에 모두들 ‘반일감정’이라는 폭탄을 갖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아무튼 독도는 우리 땅인 게 분명하고 천황이라는 자도 자신의 선조가 저지른 죄에 대해 깊이 있게 참회해 마땅하다. 독일의 빌리 브란트 수상이 폴란드에서 무릎을 꿇은 것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이쯤에서 짚어볼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일본은 입만 열면 한일 문제가 진즉에 일단락 지어졌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1961년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일본에 특사를 보냈고 그 특사는 “내가 제 2의 이완용이라는 오명을 쓰더라도 꼭 실현을 하겠다.”라는 다짐까지 하면서 1965년에 ‘한일 의정서’를 채결한 역사가 있다. 따라서 일본 입장에선 우리나라를 36년간 강점했던 빚을 국가 차원에서 배상한 셈이니 그 뒤로 이 문제를 다시 꺼내는 게 비신사적인 행위로 간주될 소지가 있다. 안 그래도 쓰나미 덕분에 나라가 간당간당한데 왜 애꿎은 천황까지 건드려 우리를 열 받게 하느냐는 항변이 가능한 것이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이미 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특사 역을 했던 사람은 아직 건재하니 그 분의 이야기를 좀 듣고 싶다. 이를테면 “그 때 일본은 빚을 청산했으니 우리가 지금 일본을 향해 책임을 지라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항변하거나,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쿠데타 정권의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해 무엇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는 식으로 책임 전가를 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런데 묵묵부답, 오랫동안 입을 꼭 다물고 있다. 자신의 행동이 떳떳치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럴 땐 그저 가만히 엎드려 있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해서일까?

그에 보태어 맘 한구석엔 또 한 가지 궁금한 구석이 있다. 왜 앞으로는 대결의 시대가 아니라 화해의 시대라며 일본 쪽에 먼저 손을 내밀었던 현 정부가 갑작스레 입장을 바꾸었을까? 그리고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하다며 일본 TV에까지 출연했던 대통령의 태도가 왜 하루아침에 돌변했을까? 혹시 대통령이 안중근 의사 같은 애국지사로 거듭난 것은 아닐까?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두 분 모두의 속 말씀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