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말씀과 신앙나눔 연중 31주일 설교문 (김종훈 신부, 길찾는 교회. 용산나눔의집)

연중 31주일 설교문 (김종훈 신부, 길찾는 교회. 용산나눔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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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오늘, 우리는 광장에서, 일상에서 어느 편에 서서 살아야 할까요.

 

자캐오로 산다는 것은.”

 

* 20161030, 연중31주일 (Twenty Fourth Sunday after Pentecost)

* 1독서, 이사 1:10-18 / 2독서, 2데살 1:1-12 / 복음, 루가 19:1-10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은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등장하는 키 작은 자캐오는 저의 신명(信名)이자 세례명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든 인간의 욕망을 따라 돈과 명예를 좇아 살던 세관장이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에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돈과 명예로 포장하려던 사람이었죠.

 

그 이름의 뜻은 순결이었으나, 그는 유대인들에게 불결하고 부정하게 생각되던 삶을 살았다는 건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성서에서 그의 이름 뜻과 실제 삶은 정반대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런 자캐오는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키가 작다는 물리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심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부정한 자캐오는 차마 주님 곁에 가까이 가지 못합니다.

 

그저 멀리서 지켜봅니다.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끌리는 자신을 주체할 수 없어 세관장의 체면은 뒤로 한 채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가 주님을 보려고 시도합니다.

 

그런 자캐오를 주님께서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자캐오를 불러 그의 집에 손님으로 머무시고, 자캐오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구원받은 자임을 선포하십니다.

 

욕망을 좇던, 사람들의 눈을 속이려던, 불결하고 부정하던 세관장 자캐오가 주님의 은총을 만났습니다.

 

키 작은 자캐오는 주님을 만난 후, 주님 보시기에 부정하게 얻은 재물을 4배씩 더 얹어 갚겠다고 합니다.

 

주님을 만났던 훌륭한 부자 청년이 구원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 놓으라는 말씀에 말없이 돌아섰던 것과는 다르게, 그는 주님이 요구하시지도 않은 것을 내어 놓았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통념을 뛰어 넘어 주님께 그 믿음을 보였습니다(출애 22:3).

 

그는 깨달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진짜 자캐오를 바라보고 계시기에, 더 이상 거추장스러운 돈이나 명예로 자신을 포장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더 이상 사람들이 어떻게 보느냐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에게 다가온 자캐오의 불결하고 부정한 삶을 곧바로 뚫고 그가 품고 있던 순결함에 대한 갈망을 붙듭니다. 자캐오는 더 이상 불결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포장하거나 스스로를 지키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런 것들은 오히려 주님을 따르는 자신의 삶을 방해하는 것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부자들에게 자신의 삶으로 얘기합니다. ‘그 거추장스러운 자리에서 내려오십시오! 모두 내어 놓으십시오. 당신들의 것이 아닌 그것들을 원래 주인들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그는 그렇게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과 화해하고 그로 인해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주님의 화해를 증언합니다.

 

그는 이 땅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으로 말을 겁니다. ‘모두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십시오! 나 같은 이가 용납 받았듯이 이 세상에 주님에게 용납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용납해주신 주님을 따라, 이 세상의 모든 소외받고 거절 받은, 상처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용납하시는 구원을 선포합니다.

 

제가 7년 전 여름, 부제 서품을 받으며 신명을 자캐오로 바꾼 것은 이런 자캐오의 삶을 살기로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서는 재미있게도 오늘 복음 말씀인 루가의 복음서 19자캐오의 이야기앞인, 18장 앞부분에 바리사이파 사람과 세리의 이야기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8장의 뒷부분에서는 훌륭한 부자 청년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게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낮음을 깨닫고, 가난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자비를 구하며, 이웃에게 자비의 통로가 되는 사람만이 진정한 하느님의 자비를 얻을 것이란 가르침을 주죠.

 

지난주에 얘기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은 바리사이파 사람과 부자 청년에게는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가난한 마음과 갈망을 선택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선택할 여유나 이유, 또는 권리가 없는 가난하거나 부정한 취급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품고 있는 그 가난한 마음과 갈망을 정직하게 마주하며 당신께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분명, 하느님과 우리의 기준은 다릅니다. 그리고 자캐오는 그 다른 기준을 온전히 삶으로 드러낸 성서 인물입니다.

 

이처럼 성서와 초기 교회는 자캐오의 삶을 통해서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부와 명예를 비롯한 온갖 것들로 자신을 지키려는 사람의 욕망과 몸부림이 주님의 시선 앞에서 얼마나 허망한지를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런 욕망과 몸부림을 넘어 사람의 중심을 향해 선포된 주님의 인정과 구원이 한 사람을 어떻게 극적으로 변화시키는지를 증언합니다.

 

그렇게 더 가진 사람들은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가난한 마음과 갈망을 가져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더 가난한 사람들은 이미 품고 있는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가난한 마음과 갈망을 왜곡하거나 과장하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정직하게 나아오라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