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말씀과 신앙나눔 연중 33주일 – 세상 끝은 내려와야 완성된다.(이쁜이사제, 원주나눔교회)

연중 33주일 – 세상 끝은 내려와야 완성된다.(이쁜이사제, 원주나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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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은 내려와야 완성된다.


연중 33주일
성공회원주교회 설교

말라기 3:19-20상
시편 98
2데살 3:6-13
루가 21:5-19

#1.
‘세상의 끝’이 이번 주 주제입니다. 시대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성경 말씀입니다. 사수대(시위대 맨 앞에 섬) 출정식 앞에 읽어야 할 것 같은 본문들입니다. 정신이 무장되면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2.
시대적인 상황과 맞아 떨어지는 우리가 가진 텍스트(TEXT), 본문은 이처럼 힘이 있습니다. 성경을 과거 언제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이면 감동이 없습니다. 읽는 ‘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진정으로 나를 움직이는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내’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살아 숨 쉬는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분명히 관통하는 하나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울림을 줍니다. 그것을 신학에서는 상황 속에서 읽는다고 하여 상황화(CONTEXT)라고 부릅니다.

#3.
누구나 자기 상황에서는 진실해집니다. 상황화는 누구에게나 살아있는 텍스트를 마주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 텍스트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힙니다 하지만 진리는 각도에 따라 다른 얼굴을 하고 있으며 빛과 어둠 모든 것을 포함하게 됩니다. “진리가 변한다”는 대목에 다들 반발할 수 있지만, 성경이 그런 경우입니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공간마다 다르게 읽히며 적용됩니다. 그러면서 영향을 끼치고 끊임없이 답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아마도 지금도 전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것이 아닐까요.

#4.
내 상황에 비추어 보기는 진리에 접근하는 가장 좋은 통로입니다. 누구도 나를 벗어난 감각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오감으로 세상을 만지고 소통하며 그리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기억합니다. 그 저장 공간들은 나를 알리게 됩니다. 그러니 내 상황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그 분의 솜씨는 나를 ‘상황'(CONTEXT) 속에 놓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성경 속의 인물이 되어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이들이 자신의 감각의 마비를 가졌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습니다. 눈이 멀었거나 일어설 수 없거나 문둥병 환자였다거나 귀신들렸던 이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 앞에서 무릎 꿇게 됩니다. ‘진정 낫기를 원하는냐’하시는 그 분 앞에 말입니다. 그분은 직접 내 몸, 내 상황 속에서 나를 낫게 하십니다.

#5.
거리에서 울려 퍼진 많은 이들의 퇴진 요구가 너무나도 진실하였습니다. 누군가 적어준 멘트를 읽는 것 아니라 내 이야기를 내 상황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니 100만이 모일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세상이 끝났다’ ‘종말이다’라고 말할 만합니다. 온갖 곳에서 비리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나옵니다. 몇 억은 아이들 장난이고 몇 백억, 몇 천억원의 돈들이 흘러간 이야기들을 합니다. 청와대에서 직원들은 아무도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은 듯 보입니다. 영부인을 담당하는 부서였다던 제2부속실만이 가동되었고 대통령을 대면하고 업무를 지시하지도 못했다는 고백들을 들어봅니다. 그러니 나라꼴이 이렇게 위험천만이었습니다. 대외업무는 늘 이상하게 실수 투성이었고 큰 사건사고는 끊임없이 났습니다.

#6.
그러니 우리는 이렇게 외칩니다. ‘세상의 끝이다.’ 연중 주일의 마지막 주일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이제 주권이 바뀌는 때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교회력으로는 11월 20일 그리스도 왕 주일이 마지막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온갖 실체 없는 것들의 종말을 선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받아드리는 일입니다. 안병무 선생님은 ‘민중이 곧 하느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권을 가지고 새하늘, 새땅을 간절히 원하는 이들이 하느님인데, 그것을 민중의 사건으로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민중이 역사를 바꾸는 주체이며 역사에 항거하고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7.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의 끝은 당연한 진실입니다. 그 진리는 끝, 이라는 시간과 연결됩니다. 끝을 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징조를 읽고 용기를 내어 인내하여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가 주인되는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중신학으로 말하면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멈추지 않고 우리의 길을 걸어갑니다. 우리는 조작해놓은 세상이 아닌 깨어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투명하게 보길 원해 암흑의 세상에 촛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순간의 깨어있음은 보편적 진리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까닭은 이 시간은 모두에게 속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읽은 아브라함 헤셀의 <안식>에서는 시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공간의 한 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저마다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 나의 신체가 점유한 공간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나 자신만이 점유한 공간이다. 하지만 시간을 점유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도 순간을 독차지할 수 없다. 지금 이순간은 나에게 속해 있음과 동시에 모든 살아 있는 사람에게 속해 있다. 시간은 공유의 대상이고 공간은 소유의 대상이다. 공간을 소유하면 다른 모든 존재의 적수가 되지만, 시간 속에서 살면 다른 모든 존재와 동시대인이 된다”


#8.
민중이 청와대로 행진을 하지만 그것은 청와대를 원해서가 아닙니다. 때를 염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끝’입니다. 세상의 끝은 한 권력가의 구체적인 행동 ‘내려오는 일’로 가능합니다. 그렇게 모든 시간안에서 누구에게도(본인 자신에게도) 자유로운 한 순간을 기다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주 복음적인 행동이며 그리스도교에 합당한 행동입니다.

#9.
자본주의 많은 사람들은 공간을 더 많이 점유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곳곳에서 맘몬을 섬기기 위한 거짓과 비리가 넘쳐납니다. 그들에게 적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이나 절대적 ‘선’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니라 ‘공간’을 더많이 가지는 것입니다. 집을, 땅을, 아파트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은 종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폭력을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입니다. 우리들은 더욱 잘 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어제 100만이 모인 것도 내 세상을 ‘니 멋대로’ 운영하고 싶지 않다는 결연한 의지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의 돌들이 다 무너져 내릴 것이고 기근과 질병이 닥쳐오는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세상의 종말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경험했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오히려 자유롭게 들립니다. 나를 옭아매는 낡은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입니다.

#10.
사실은 누구에게나 내려오는 길은 아름답습니다. 자기 모습을 보고 자기 낡은 것들을 버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낡은 것들은 새 시대에 맞지 않으며 새 술을 담지 못합니다. ‘나의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가장 아름다운 일은 내려와야 합니다. 우리는 진정 낡은 것을 버리는 일만이 살 수 있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세상 끝, 내려오는 때를 염원해야 할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