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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디파티드’ -문화의 대류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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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파티드’ -문화의 대류현상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79회 아카데미 시상식

제 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디파티드’라는 영화가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 각색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특히 감독상과 작품상은 최고의 영화에게 돌아가는 상이니까 디파티드가 작년 한 해 최고의 영화였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이를 통해 무려 6차례나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가 고배를 마신 마틴 스콜세지가 드디어 소원을 풀고 말았다. 시상은 할리우드의 중견 감독들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대부’), 조지 루카스(‘스타워즈’), 스티븐 스필버그(‘ET’)가 맡아 감동을 더해주었다.

디파티드의 수상에 대해 항간에서는 영화계 원로이며 흥행 감독인 마틴 스콜세지에게 주어진 영예로 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디파티드’의 작품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흥행에 실패를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아카데미 수상작들이 대체로 성공을 거두는 한국의 영화시장에서 왜 ‘디파티드’만 유독 실패를 하고 말았을까? 이런 질문까지 싫증내지 않고 쫓아오신 독자라면 이 글을 한번 끝까지 읽어보시기 바란다.

아카데미 영화제는 주로 영어권에서 제작된 작품들에게 수상하는 영화제이다. 그런 맥락에서 수상식 다음날, 어느 일간지에서 올해는 9개의 상이 외국인의 손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이제 할리우드가 편견을 벽을 깨기 시작했다고 평을 했다. 영화제의 특성을 십분 고려한 평이다. 물론 그런 관찰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다 깊은 차원에서 일어나는 할리우드의 변화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디파티드

‘디파티드’(마틴 스콜세지 감독, 드라마/범죄물, 미국, 2006년, 152분)는 형용사로 쓰일 때는 ‘떠나간’이지만 명사로는 ‘죽은 자’라는 뜻이다. 영화를 통해 무엇인가 절박한 상황을 보여주려는 제목임이 분명하다.

암흑가의 보스인 프랭크(잭 니콜슨)는 어릴 때부터 키워온 자신의 부하 콜린(맷 데이먼)을 경찰로 만들어 정보를 캐내고 있다. 그와 정반대의 일이 경찰 쪽에서도 이루어지는데 조직폭력 담당인 퀸난(마틴 쉰)과 디그냄(마크 윌버그)은 신입 경찰인 빌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불량배로 위장시켜 프랭크의 수하로 들여보낸다. 빌리와 콜린은 각각의 위치에서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긴 채 임무를 수행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어느 날 그 두 사람이 스파이로서 진가를 발휘할 사건이 터진다. 그러나 범죄 현장을 덮치려고 출동한 경찰은 실패했고 지휘관 엘러비(알렉 볼드윈)는 바보가 되고 만다. 양쪽이 서로 심어놓은 스파이의 존재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영화가 박진감 넘치게 돌아간다. 영화의 세팅을 우선 길게 잡아놓고 중간부터 갑자기 팽팽한 긴장감을 관객의 손에 쥐어주는 스콜세지의 영화 스타일을 잘 아는 관객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시작하자마자 숨 가쁘게 몰아치는 요즘의 영화제작 풍토와 비교하면 자못 예스런 연출방식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미국에서 ‘디파티드’는 박스 오피스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남다른 매력을 가진 범죄물로 인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그리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양조위와 유덕화가 주연한 무간도(조맥휘/유희강 감독, 극영화/범죄물, 홍콩, 2002년, 100분)를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리메이크 인 헐리우드

사실 헐리우드에서 외국 영화를 가져다가 다시 제작한 일을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이는 주로 유럽 영화에 머물렀고 아시아 영화는 왠지 그런 제작관행에서 낯설게 여겨졌다. 아니, 가물에 콩 나듯 있기는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리메이크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이다. 대표적인 예로  ‘커리지 언더 파이어’(1996년)라는 영화를 들어보자.

코믹 멜로물에 단골로 출연하는 여배우인 멕 라이언과 댄젤 워싱턴(‘트레이닝 데이’)이 주연을 맡았는데 일본의 거장 쿠로자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년)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 전쟁터에서 벌어졌던 의문의 사건에 대해 그 작전에 참여했던 병사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증언하는데, 긴장을 고조시켜 나가는 감독의 솜씨가 제법이었다. 하지만 ‘라쇼몽’의 깊이를 뛰어넘지는 못했는데, 죽은 자의 입장까지 동원시켜 가며 사건의 각도를 다양화하고 여러 인물들의 개성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둔 아키라보다는 연출력이 여러 수 아래였다. ‘커리지 언더 파이어’는 영웅적인 행동과 애국심 고취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스토리 중심의 영화여서 그랬던 모양이다.

아시아 영화에서 아이디어 정도를 빌려온 것이 과거의 관행이라면 요즘 할리우드에서는 원작을 가져다가 아예 리메이크 판을 만드는 일에 익숙해있다. ‘디파티드’ 외에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사교춤 열풍을 일으켰던 일본 영화 ‘쉘 위 댄스’(수오 마사유키 감독, 코미디, 일본, 1996년, 138분)를 같은 제목(피터 첼섬 감독, 코미디, 미국, 2004년, 106분)으로 만들었고, 한국영화 ‘시월애’(이현승 감독, 극영화, 2000년, 93분)에는 ‘레이크 하우스’(알레한드로 아그레시티 감독, 미국, 극영화, 2006년, 98분)라는 정감 넘치는 제목이 붙여졌다. 이들 말고 앞으로 몇 작품이 준비 중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특히 ‘디파티드’가 아카데미에서 중요한 상을 타면서 아시아 영화의 리메이크 경향이 짙어질 것으로 보인다.

할리우드 리메이크의 한계

‘디파티드’의 설정은 무간도와 동일했고 그 설정에서부터 시작해 스토리를 밀어붙이는 스콜세지 특유의 추진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몇 가지 무간도와 구별되는 점이 있었다.

우선 모두 세계적인 주연급 배우들을 캐스팅 하다 보니 그들 한명 한명에게 중량 감 있는 위치를 설정해주고 관객의 시선이 머무를 수 있는 포인트를 설정해주어야 하는 부담감이 느껴졌다. 그 정도 배우들을 한 영화에 출연시키려면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영화를 통해 말하려는 바가 배우들 뒤쪽으로 자꾸 가려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살리려다 보니 무리가 뒤따랐다. 단적으로 말해 원래 스토리 위주의 영화를 캐릭터 위주의 영화로 만들다보니 초점이 흐려졌다는 뜻이다.

영화의 두 축은 빌리와 콜린이다. 그리고 둘 중에서도 빌리가 보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시시각각 밀려오는 죽음의 위기를 가까스로 빠져나가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역할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하는 처지이다. 그런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배우는 내면의 갈등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와일드했다. 물론 전통적인 갱 영화의 주인공은 탁월한 판단력으로 위기를 헤쳐 나가야 어울리고, ‘갱스 오브 뉴욕’에서 디카프리오는 그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그러나 무간도에서 보여준 양조위의 차분함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 마찬가지 예가 잭 니콜슨에게도 해당된다.

다음으로 아시아 영화 특유의 정靜적인 면을 바르게 파악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시아에서는 갱 영화를 만들 때조차 감정을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설혹 위기에 말려들어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주인공은 잠시나마 상황을 관조하는 여유를 즐긴다. 쉬지 않는 폭력으로 밀어붙여 갱영화의 승부를 내는 게 서양식이라면 냉정하리만큼 잔인하게 일처리를 하는 것이 동양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동적인 디카프리오와 정적인 양조위의 차이점은 거기에서 비롯한다.

무간도는 원래 다분히 종교적인 배경을 가진 영화이다. 서양 그리스도교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이 뚜렷하여 종국에는 윤리적으로 적합한 결론으로 유도하는 반면 동양 불교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선과 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인간의 욕심이 갖는 무상함을 강조한다. 무간도無間道라는 말은 해탈解脫에 이르는 네 가지 단계중 하나로, 번뇌煩惱가 사라져 막힘이 없는 경지를 일컫는다.(그러나 영어제목은 Infernal affairs이다. 무간도를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번역한 것 같다) 자신의 어쩔 수 없는 죽음을 차분하게 받아들인 진영인(양조위)과는 달리 끝까지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던 빌리는 인면수심의 악당 프랭크의 하수인인 콜린에게 허무하게 죽어갔다. 결국 ‘디파티드’는 악인(콜린)의 최후로 끝을 맺고 번뇌의 고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말았다.

문화의 대류현상

아시아 영화의 리메이크라는 측면에서 보면 ‘디파티드’는 아직 무엇인가 부족해 보인다. 아시아의 감성을 충분히 따라 잡지 못했고, 개성파 배우들을 살리느라 스토리 전개에 허점을 보였으며, 종교적인 측면의 이해가 부족했다. 그처럼 이런 저런 사정이 덧붙여지면서 상영시간마저 길어졌다. 아쉬운 일이다. 여기서 반드시 짚어볼 점이 한 가지 있다. 그러기 위해 잠시 한국의 전통문화로 눈길을 돌려보자.

한국의 전통 문화를 대하는 우리는 자세는 종종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우리 것은 좋은 것’이라 하면서 전통문화가 외부의 힘에 의해 손상당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전통문화가 널리 소개되어 세상 사람들이 입을 모아 ‘원더풀’을 외치기 바란다. 명절맞이 특집 TV 프로그램들을 보면 특히 그런 현상이 눈에 띄는데, 한국의 전통 떡방아를 재현하는 현장을 취재하면서 마지막 멘트는 꼭 현장에 구경나온 외국인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 싶어한다. “정말 맛있다. 만드는 과정이 너무 신기하다. 고국에 돌아가면 고향사람들에게도 반드시 알려주고 싶다.” 그렇다면 가장 한국적인 문화도 결국 외국인이 마지막으로 판단해주어야 한다는 뜻일까?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느닷없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거론했다.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아시아의 영화들을 할리우드에서 가져가 리메이크한다는 사실은 ‘서편제’나 ‘취화선’이 외국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것과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만일 서편제를 헐리우드에서 만든다면 이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미국사람들이 대신 소개해주는 귀여운 짓(!)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이 영화의 주제를 세계적으로 표준화시켜 상업성이 뛰어난 돌연변이를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할 것이다. 가슴과 머리의 차이라고 정의하면 적당할까?

할리우드의 리메이크는 소재 빈곤이 아니라 흡수력이 뛰어난 데서 나온 결과이다. 지금은 비록 우습게 보여도 리메이크를 통해 돈 버는 생리를 일단 체득하면 아마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과거에는 문화의 대류현상이 세대를 거치면서 완만하게 이루어졌다. 한 곳에서 배워가고, 내면화하고, 역으로 그 곳에 전달하는 데 그만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논리는 다르다. 순식간에 폭발적인 힘으로 전 세계를 휘어잡는다. 아마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디파티드’를 먼저 보고 나서 ‘무간도’라는 영화의 존재를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화의 대류현상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자연스럽게 그 흐름을 타는 게 오히려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은 다 아는 말이다.  

문화는 움직인다.

이번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또 하나 주목 받았던 영화는 미술상, 분장상, 촬영상 등 세 개 부문에서 수상해 영화계를 놀라게 한 ‘판의 미로’(길레르모 델 토로 감독, 판타지, 스페인/멕시코/미국, 2006, 113분)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프랑코 총통이 남긴 깊숙한 상처를 스페인 국민들이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뛰어난 상징성을 판타지에 담아 생각할 거리를 듬뿍 얹어주는 영화라는 뜻이다.

영화를 보면서 37년간 스페인에서 있었던 일들은 상상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군부통치 시절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인지 판타지와 현실의 교차 대조와 갖가지 상징들이 눈과 귀에 쏙쏙 들어왔다. 판타지와 상징성의 절묘한 조화가 이루어진 영화이다. 특히, 스페인의 애절한 현대사를 잘 아는 유럽의 관객들에게는 칸느 영화제에서 22분간이나 기립박수를 유도할 만한 감동의 영화였을 법하다. 그러나 영화를 본 한국 관객의 의견은 달랐다. ‘판타지가 약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어떤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졸았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평론가들의 글도 그와 별다를 게 없어 한국에서는 그저 실패한 판타지 영화로 기억 속에서 사라져갈 공산이 크다. 상황이 다르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디파티드’를 보면서 미국의 관객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영화에서 어떤 감동을 받았기에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여했는지도 궁금하고 원작의 깊이를 얼마나 이해했는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을 할리우드에서 어떤 식으로든 세계 문화의 대류현상에 기여를 한다는 점이다. 자기 것만 고집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아이디어와 감동을 찾아 전 세계 문화를 섭렵하는 자세가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새로운 발판을 제공한다. 할리우드에서 영화 소재가 고갈되자 능력의 한계를 깨달아 아시아 영화로 눈을 돌린 게 아니라 한계를 모르는 실험정신의 일환으로 아시아 영화들을 리메이크하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옳다. 우리 영화계가 배워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디파티드’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호보까지 올랐던 마크 월버그가 주연을 맡은 속편이 기획 중이라니 기대를 해본다. 역시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을 맡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