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그레이트 디베이터스

[영화평]그레이트 디베이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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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그레이트 디베이터스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한국 사람들은 논리적인 대화를 나누는 데 약점을 지닌다고들 한다. 아니 대화 자체가 힘들다고도 한다. 서로 자기 할 말만 하고 남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그렇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어느 정도 동의하리라고 믿는다. 사실 어릴 적부터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다’라는 어른들의 꾸중에 주눅이 들어 언제 속 시원히 자기만의 논리를 펴본 적이 있었던가 말이다. 그러다 갑자기 어른이 되면 대화 기술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절실히 깨닫고 만다. 세대를 거치면서 악순환이 계속되는 느낌이다.

배우로도 잘 알려진 덴젤 워싱턴이 감독을 맡은 ‘그레이트 디베이터스’(극영화, 미국, 2007년, 126분)는 서양 사람들의 대화능력이 어떻게 길러졌는지 그 생생한 과정을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미국 대학들은 오래 전부터 ‘토론 대회’라는 전통을 갖고 있다. 각 대학에서 토론에 능한 학생들로 팀을 구성해 다른 대학 토론 팀에 도전해 승리를 하면 또 다른 도전 상대를 찾는 식이다. 영화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실력 있다고 알려진 하버드 대학의 토론 팀에 흑인들만 다니는 남부의 와일리 대학 토론 팀이 도전해 자웅을 겨루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사실 상황설정 자체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영화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와일리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톨슨 교수(덴젤 워싱턴: ‘트레이닝 데이’, ‘영광의 깃발’), 불량학생 헨리, 변호사를 꿈꾸는 사만다, 우수한 두뇌로 대학에 일찍 진학한 제임스 파머 주니어, 제임스의 아버지이자 와일리 대학의 학장인 제임스 파머 목사(포레스트 휘테커: ‘라스트 킹’)가 그들이다.

백인들과 마찬가지로 흑인들 중에도 좋은 교육을 받고, 교양이 있으며,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와 반대의 경우도 있어 매사에 불만투성이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다양한 계층의 백인들과 흑인들이 뒤섞여 살다보면 갖가지 힘겨운 일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영화는 비록 ‘토론 대회’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으나 실은 미국의 흑인들에게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길인지’ 알려주는 데 목적이 있는 것 같다.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에는 때로 과감한 희생도 있어야 한다. 그런 온갖 어려운 과정을 겪어 와일리의 학생들은 마침내 하버드 대학 강당에서 미국 최고의 토론 팀과 마주하고, 최고의 기량을 발휘한다.

이 영화를 소개하는 데는 사실 우리나라의 영어 조기 교육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이유도 있다. 영어교사들, 아니 비단 영어교사뿐 아니라 모든 교육자와 영어교육에 전념하는 부모님들이 이 영화를 보면 나름대로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훌륭한 영어 교육의 방향을 알려주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나오기 전에 이 이야기가 실화를 근거로 만들어졌다는 글이 올라왔다. 바로 실제 주인공들의 후일담들을 정리한 글이었다. 거기서 와일리 대학의 토론 팀이 만들어낸 훌륭한 결과를 보았다. 특별한 소재이긴 하지만 탄탄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훌륭한 영화이다. 더불어 아카데미상 2회 수상의 덴젤 워싱턴이 비단 연기뿐 아니라 연출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