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어웨이 프롬 허

[영화평]어웨이 프롬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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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어웨이 프롬 허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나 없는 내 인생2003’라는 멋진 영화를 만든 바 있는 사라 폴리 감독이 ‘어웨이 프롬 허’(사라 폴리 감독, 극영화, 캐나다, 2006년, 110분)로 다시 나타났다. 이 영화는 감독 외에도 알츠하이머병을 주제로 삼았고, 거의 잊혀졌던 ‘닥터 지바고1969’의 줄리 크리스티(라라)가 병을 앓는 노부인 역을 맡았다는 점, 그리고 올 초에 열리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그녀가 노미네이트되었다는 사실이 관심을 끌었다. 과연 우리들의 청초한 라라는 어떻게 변했을까?

이 영화에는 감독의 남다른 감수성이 십분 살아있다. 우선 주인공이 알츠하이머에 걸렸음을 알려주는 증상 한 가지 한 가지가 관객에게 충분한 공감대를 만들어주었다. 피오나(줄리 크리스티)는 프라이팬을 냉장고에 집어넣고, ‘와인’이라는 낱말을 기억하지 못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잊고, 마침내 남편마저 알아보지 못한다. 그녀의 인생과 44년의 결혼생활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알츠하이머의 파괴적인 힘은 실로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감독은 온 집을 환하게 밝혔던 불이 방마다 하나씩 꺼지는 과정을 병의 진행에 대한 은유로 사용한다. 그렇게 기억들이 한 가지씩 차례로 뇌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심지어 피오나는 문병 온 남편을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인으로 여겨 동정어린 눈길을 보낸다.

치매 노인을 돌보는 병원은 겉보기에 매우 아름답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채광인 잘 된 복도를 오가다가 멋지게 꾸며진 응접실에서 갖가지 취미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심하게 보살펴 주는 시스템은 역시 잘 사는 나라(캐나다)임을 알게 해준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비인간적인 면도 눈에 띈다. 최고급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에게 엄청난 재정 부담을 지우고 (치료 명목으로) 환자를 가족과 강제로 떼어놓았다가 중증에 들어서면 잔인하게 격리시킨다. 말하자면 치매 병원이란 죽음으로 가는 수순을 밟아주는 데 그 역할이 있는 것이다. ‘채광이 잘 된 복도’는 실은 망각과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사회 고발의 메시지가 깔린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다.

줄리 크리스티의 연기는 뛰어났다. 우아하고 세련된 귀부인에서 흐트러진 머리칼을 휘날리는 정신 놓은 노파로 전락하고 병원에서 새로운 사랑을 만나 열병을 앓다가 다시 남편에게 돌아오는 그 모든 과정을 차분한 표정연기로 멋지게 소화해냈다. 조연으로 나온 올림피아 두카키스(매리앤)의 연기는 언제 보아도 멋들어지다. 관록이 절로 묻어나오는 배우이다.

사람들은 모두 말년이 평화롭기를 바란다. 세상살이에 지친 몸을 이끌고 바야흐로 죽음 앞에 선 순간까지 몹쓸 고통을 겪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결코 맘대로 되지 않는다. 이제 살만할 때 꼭 일이 터지고 만다. 피오나와 그랜트 부부도 자신들에게 그런 불행이 닥치리라고는 아마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데 있다. 끝 장면을 보고서야 이 영화의 주제가 치매가 아니라 실은 부부의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독의 편집의도에 멋지게 한 방 먹은 셈이다.

‘어웨이 프롬 허’는 베를린영화제와 선덴스 영화제 수상작품이고 줄리 크리스티는 골든 글러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만일 ‘라비앙 로즈’의 마리옹 꼬띠아르만 아니었다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도 당연히 그녀의 몫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