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화씨 9.11

[영화평]화씨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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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화씨 9.11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먼저 ‘화씨 9.11’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 몇 가지를 떠올려본다. 껌을 씹으며 이라크 전쟁의 지지 인터뷰를 하던 브리트니 스피어스, 알라에게 도움을 청하며 울부짖던 이라크 여인, 백악관 앞에서 눈물을 터뜨린 미군 전사자의 어머니, 무어의 인터뷰를 거절한 국회의원들, 부시의 어정쩡한 표정들. 그 장면들을 보고서도 이라크 전쟁이 정당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화씨 9.11’(마이클 무어 감독, 다큐멘타리, 미국, 2004년, 124분)은 9월 11일에 끔찍한 사태가 터졌던 2001년, 그 한 해 전부터 시작된다. 석유사업을 하던 부시가 공화당 대선 후보에 출마했을 때 알 카에다와 사업상의 거래가 있었고 빈 라덴 일가와도 모종의 관계를 유지했다. 그 거래와 관계의 이면에는 석유가 놓여있었다. 그러나 9.11 사태로 산통이 깨지자 대통령 부시는 그를 빌미로 이제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중동의 석유를 차지하려는 작전을 펼친다. 바로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나라들 사이에 정치적⋅경제적⋅종교적인 문제로 전쟁이 터지면, 윤리적으로 그 전쟁이 정당했는지 아무도 따지지 않는다. 오직 승자의 논리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무어 감독은 승자의 논리에 감추어져 이제까지 무시되었던 전쟁의 뒤쪽 모습을 전달해 준다.

대중 선동, 빗나간 애국심, 여론 조작, 전쟁 반대론자의 색출, 일선 군인 하나하나가 가진 생각, 전사자와 그 가족의 이야기, 부상자들, 전쟁을 통해 이득을 챙기는 사람들, 자기 자식은 절대로 전쟁터에 보내지 않는 고위급 실력자들……. 감독은 전쟁의 추악한 얼굴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전쟁 뒤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 했던 이야기가 참으로 많이 숨어 있었다. 거기다가 일방적으로 전쟁을 당한(?) 이라크 인들의 참혹한 현실은 눈물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영화 곳곳에서 보여준 감독의 유머감각은 비극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했다. ‘화씨 9.11’은 다큐멘타리 분야에서 분명 최고의 경지에 올라서 있었다.

이라크 전쟁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전쟁을 일으킬 위험이 없는 허약한 나라를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일방적으로 짓밟은 전쟁이었다. 그러나 전쟁의 양상은 미국의 뜻대로 되지 않아 상황이 이대로 지속되면 제 2의 월남전이 될 가능성도 있다.

‘화씨 9.11’이 올해 칸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다큐멘타리 영화가 칸느에서 대상을 받은 것은 지극히 예외적인 일인데, 극영화를 출품해 경쟁을 벌이는 게 영화제의 기본 성격이기 때문이다. 수상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의 언론들은 앞 다투어 그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어쩐지 미국의 눈치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무어 감독이 탁월한 고발영화를 만들어도, 전쟁은 승자의 논리를 여전히 지지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