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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키핑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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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핑 멈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성공회 사제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성직자 모임에 가면 종종 듣는 질문이다. 물론 한마디로 이를 정의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회 사제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서 이제까지 품어왔던 질문에 대한 답을 단편적으로나마 얻어낼 때가 있다. 일종의 직업의식이라고나 할까? 같은 맥락에서 ‘키핑 멈’(니올 존슨 감독, 극영화, 영국, 2006년, 102분)은 성공회 사제들에게 소중한 영화이다. 영국의 작은 마을 리틀 월롭은 불과 57명의 교인을 둔 미니 교회이다. 그 교회 관할 사제 월터(로완 앳킨슨: ‘미스터 빈’)는 아름다운 부인 글로리아(크리스틴 스코트 토마스: ‘잉글리시 페이션트’)와 자유분방한 딸 홀리, 그리고 양순한 아들 피티와 단란한 가정을 꾸며나가는 가장이다.

단란하다고……? 이는 분명 미련하리만치 눈치가 없는 월터 신부의 눈에 비친 모습일 뿐이다. 실제로 이 가정은 큰 위기에 빠져있다. 글로리아는 사모로 주어진 삶의 방식을 따분히 여기고 매주일 미사에조차 나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골프강사인 렌스(패트릭 스웨이즈: 사랑과 영혼)와 바야흐로 바람이 나기 일보직전이다. 딸 홀리는 자유분방함이 지나쳐 며칠에 한 번씩 남자친구를 바꾸는데 마치 정서불안 증세인 것 같다. 게다가 학교에서 왕따로 괴롭힘을 당하는 가여운 피티의 사정을 알아주는 가족은 아무도 없다.

어느 날 위기의 가정에 신비한 인물이 찾아온다. 그 이름도 의미심장한 그레이스(메기 스미스: 시스터 액트)라는 가정부이다. 흔히 이런 경우 가정부의 역할은 가족애를 회복시켜주는 것인데(‘메리 포핀스’, ‘내니 머피’ 등), 비록 그 역할은 같지만 그레이스의 방법은 무척 다르다. 그레이스(은총)는 이름과는 달리 무자비하기 짝이 없는 사람으로 살인을 밥 먹듯이 한다. 이쯤에서 눈치 빠른 독자들은 ‘키핑 멈’이라는 영화가 영국식 코미디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겉보기에 멀쩡한 사람들이 등장해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을 해서 관객에게 웃음을 던져주는 엽기적인 형식의 코미디 말이다.

영화중에 글로리아가 그레이스에게 남편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하느님을 찾게 되면 왜 유머를 잃고 말지요?” 학창시절에 그렇게 멋졌던 남편이 사목에 전념하느라 벽창호가 되어버린 현실을 두고 말한 것이다. 그러자 정확히 글로리아의 나이만큼 세상을 더 산 그레이스도 월터를 간단하게 정리해준다. “남자들은 가끔씩 길을 잃곤 한다. 월터도 좋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조금 둔한 편이다. 하지만 결국은 돌아올 것이다.”

그레이스에 예언처럼 월터도 돌아왔다. 유머감각을 되찾고 가족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사사건건 면담을 요청하는 할머니 신자에게 처음으로 “며칠 뒤에 이야기 합시다.”라고 용감하게(!) 거절을 말을 한다. 신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그만큼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키핑 멈’은 코미디로서 그렇게 훌륭하지 못했고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에 실패했다. 아마 미스터 빈에 대한 기대가 만족스럽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코미디 배우가 갑자기 멀쩡한 역을 맡으면 흔히 벌어지는 현상이기는 하다. 그러나 성공회 사제들에게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영화이다.

하느님은 유머 감각이 있으신 분이다. 그래서 인간의 하찮은 잘못 따위는 그저 눈감아 주신다. 그러니 사제로서 완벽한 삶을 살려고 애쓰기 보다는 내면에 숨은 자연스런 인간성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다. 일생을 살면서 인간은 자기가 의도하지 않았던 일들에 부딪힌다. 사제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나의 길은 너희의 길과 같지 않다.”(이사 55,8) 월터는 교구 회의의 개회사에서 이 구절에 대한 멋진 해석을 내린다.

“얘들아, 난 신비롭다. 참고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