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그리스도의 수난 The Passion of the Christ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 The Passion of the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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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수난

I

얼마 전에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개봉 전부터 영화에 대한 소문으로 한국은 이미 떠들썩했는데, 반유대주의 색채가 있다느니, 미국에서 영화를 보던 여성이 심장마비로 죽었다느니. 사실적인 표현에 감동을 받았다느니, 유혈 낭자한 장면밖에 기억이 안 난다느니 등등,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다. 물론 그런 찬사와 악평 덕분에 제작자이자 감독인 멜 깁슨은 돈방석에 올라앉았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이 작품이 종교영화임은 분명하고,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 종교물/역사물, 미국, 2004년, 126분)은 복음서에 보도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受難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그리스도교의 경전인 신약성서는 모두 27권으로 이루어져있고 그 중 앞의 네 권(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서)을 복음서라 부른다. 거기에는 탄생부터 부활까지 예수의 일생이 그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예수가 체포된 후 십자가형을 받은 때까지의 이야기를 이른바 ‘수난사화受難史話’라 부른다. 대략 12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다. 영화를 심도 있게 감상하기 위해 역사적인 과정을 따라가면서 예수 사건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영화감상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II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나자렛이라는 작은 동네에 살다가 대략 30세를 전후(기원 27/8년)해서 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예수는 이스라엘 북부의 갈릴래아 호숫가를 중심으로 약 3년 동안 활동했다. 그 기간을 흔히 예수의 ‘공생애共生涯’라 한다. 예수가 갈릴래아 호숫가를 활동 중심지로 삼은 이유는 자명하다. 광활한 갈릴래아 호수(남북 21km, 동서 12km)에서는 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이 잡혔는데, 호숫가에 그 물고기를 가공해서 전국에 공급하는 도시들이 즐비했다. 그처럼 갈릴래아 호숫가에 큰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고 그에 따라 유동인구의 숫자도 상당했다. 예수가 자신의 복음을 선포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예수는 갈릴래아 호숫가 주변 지역들을 여기저기 오가면서 복음을 선포했다. 하지만 선포 초창기만 해도 유대교의 제도권 종교지도자들은 예수의 복음에 큰 위기 위식을 느끼지 않았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예수 말고도 제도권 유대교에 비판적인 예언자들이 들끓었기에 그저 예수라는 인물을 점검해두는 차원에 머물렀던 것 같다. 그 사실은 종교지도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보냈을법한 하수인들이 예수에게 하느님의 징표가 될 수 있는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한 데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마가 8,11-13). 예수는 그들의 기적 요구를 거부했다.

예수가 갈릴래아에서 활동할 때만 해도 큰 소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의 추종자들과 함께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들어오자 상황은 급변했다. 특히,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자마자 한 행동에 제도권 종교인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예루살렘 성전에 들이닥쳐 안뜰에서 장사꾼들의 좌판을 뒤엎으며 성전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마가 11,15-19).

유대인들에게는 한 해에 한차례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순례 때는 제사를 지내는 데 필요한 제물을 가져 와야 하는데 제물로 쓰일 짐승은 반드시 흠이 없어야 했다. 하지만 성전 문 앞에 포진한 제물 검사관들의 눈은 여간 까다롭지 않아서 순례자들이 직접 가져온 제물은 문을 통과하기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순례자들에게는 성전 안뜰에서, 성전 문을 이미 통과한 제물을 구입하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이는 곧 전문적인 제물공급업체의 필요성을 뜻한다. 게다가 성전 내에서는 오직 성전에서 주조한 코인(동전)만 사용될 수 있었으므로 모든 외국 돈은 성전코인으로 교환해야만 했다. 즉, 성전 안뜰에 돈을 바꾸어주는 환전상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 정황을 미루어볼 때 우리는 예루살렘 성전을 장악한 대제관들과 장사꾼들 사이에 모종의 뒷거래가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은 어디나 다 비슷한 법이다.

예수는 ‘내 아버지의 집을 도둑놈의 소굴로 만들었구나!’라는 일갈로 그 추악한 탐욕의 현장을 뒤엎었는데, 이를 달리 보면 제도권 종교인들의 튼튼한 돈줄을 막아버린 꼴이었다. 게다가 예수는 스스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라고 떠벌였으니… 제도권 종교인들이 예수를 처단할 이유는 넘치고도 남았다.

예수의 파격적인 말과 행동에서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제도권 종교인들은 예수를 처치하기로 작정했다. 우선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낮에 예수를 체포하는 것은 자칫 소요를 일으킬 소지가 있어 밤에 체포하는 게 바람직했다. 하지만 전기불도 없던 시절에 어두컴컴한 밤에 예수를 어떻게 색출해내겠는가? 그런 까닭에 희미한 횃불 조명 아래서도 예수를 금세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제자 중의 한명인 유다가 예수를 배신했고, 체포조와 함께 나타난 유다가 예수를 만나자 입맞춤을 한 이유이다(마가 14,45).

III

유대교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만 제거하면 자연스럽게 폭풍을 잠재울 수 있으리라는 예상 아래, 교묘하게 그를 엮어 넣을 구실을 세웠다. 그들의 계획은 먼저 예수를 유대교 최고회의에 데리고 가 거짓 메시아의 가면을 벗긴 다음, 유다 총독이었던 빌라도에게 넘겨주어 사형을 언도시키는 것이었다. 로마의 점령지였던 당시 이스라엘에는 범죄자를 사형시킬 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고회의에서 죄인을 재판하는 과정은 대개 네 단계로 나뉘어 진다. ① 우선 증인들의 증언을 듣고, ② 이어서 대사제(최고회의 의장)의 직접 심문이 있는 후, ③ 죄가 확정되면 죄인을 사형에 처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고시하고, ④ 고시기간 동안 별 반대가 없으면 사형을 집행한다. 예수를 재판할 때도 일차적으로 증인들을 불러 모았다. 그런데 증인들을 각각 별도의 방에 데리고 가 증언을 받은 후 나중에 증언들을 모아 비교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증언들끼리 서로 아귀가 맞아떨어지지 않아 증거로 채택될 수 없었던 것이다(마가 14,59). 상황이 그리되자 이제 대사제가 나서서 직접 심문에 들어간다.

대사제는 예수에게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예수는 ‘장차 인자人子(신의 대리자)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는 대답을 하여 질문을 긍정했다. 이스라엘의 법원은 지방회의와 그 상급기관인 최고회의로 나뉘어졌다. 최고회의에서는 세 가지 경우의 범죄(지파, 대제관, 거짓 예언자에 관한 범죄)만 다루었는데, 예수는 그 중에서 ‘거짓 예언자’에 해당했다. 거짓 예언자란 구체적으로 ‘하느님에게 듣지도 않은 말을 들었다고 하는 자’이다. 예수의 대답이 듣고 나서 대사제는 옷을 찢음으로써 거짓 예언자 중에서도 구체적으로 ‘메시아 사칭’ 혐의를 확정지었다. 유다인이 옷을 찢는 것은 지독한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는 경우나,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을 때이다.

사형을 확정한 후 최고회의는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겼다. 하지만 ‘메시아 사칭’이라는 종교적인 범죄로 사형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아 ‘황제 사칭’으로 죄목을 슬쩍 바꾸었다.

빌라도 앞에서는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았다. 빌라도가 사형 언도를 꺼렸는데, 예수에게서 이렇다 할 황제사칭 혐의를 발견하지 못한 때문이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를 군중 앞에 데리고 나가 ‘해방절 사면’(라틴어로 사티스 파체레 Satis Facere) 여부를 물었으나, 결국 군중의 압력에 밀려 ‘유다인의 왕’이라는 죄목을 씌워 예수를 십자가형에 넘겼다. 거기에다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이 로마 황제에 대한 빌라도의 불충을 은근히 꼬집었다는 사실도 사형 언도에 한몫을 단단히 했다(요한 19,12). 오늘날 식으로 보면 높은 사람을 팔아 협박을 한 꼴이니, 종교지도자들은 상당한 정치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까 예수는 종교범으로 판결을 받았는데, 실제로는 정치범으로 사형을 당한 것이다. 정치범은 통상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VI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 대한 복음서의 보도는 매우 사실적이다. 로마의 사형 방법은 목을 자르는 참수형, 굶주린 맹수들의 먹이로 넘겨주는 맹수형, 그리고 십자가형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십자가형은 극형 중의 극형으로, 우리 식으로 따지면 부관참시나 능지처참에 해당할 법한 형벌이다. 얼마나 잔혹했던지 아무리 용서 못할 죄를 지었어도 로마 시민은 십자가형에 처하지 않았다고 한다(로마시민의 권리). 어떤 이가 십자가형에 처해진다는 것은 당시에 아주 끔찍한 일로 취급받았다. 그래서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십자가형이란 (단지 생명의 박탈일 뿐 아니라) 눈과 귀와 생각마저도 말살시키는” 형벌로 간주했으며, 점잖은 사람이라면 입에 올리기조차 꺼리던 처형 방법이었다.  

십자가형이 언도되면 사형수는 먼저 모진 태형을 당한 뒤에, 십자가의 횡목을 직접 지고 사형장까지 운반해야 한다. 하지만 태형 때문에 약해질 대로 약해져 미처 횡목을 운반할 만한 힘이 없을 때는 아무나 강제로 뽑아 대신 횡목을 나르게 할 수 있었다. 이는 피정복지 주민을 임의로 부역에 차출할 수 있는 로마군의 권리에 따른 것이다. 사형장에는 수직목이 세워져 있고 횡목을 날라 온 죄수는 손목과 발등에 못이 박혀 십자가에 달리게 된다. 손바닥이 아니라 손목에 못을 박는 이유는 손바닥이 몸무게를 못 이겨 찢어지는 바람에 사형수가 십자가에서 곤두박질치는 일을 막기 위함인데, 틀림없이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개발된 방법이었을 것이다.

십자가에 달린 죄수는 물론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몰약을 탄 포도주’를 해면에 적셔 마시게 하는데, 아마 약간의 마취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십자가 죄수는 손목에 못을 박았으니 손목동맥 파열에 따른 과다출혈로 숨을 거둔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실은 질식사였다. 몸이 아래로 처지면 횡경막이 눌려 숨을 못 쉬게 되고, 못으로 고정된 발의 힘을 빌려 몸을 추스리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다가, 마침내 몸을 추스릴 기운이 빠지면 호흡곤란으로 죽는 것이다. 그래도 죽지 않을 경우는 완전히 숨을 거두게 하기 위해 다리를 꺾어 버렸다. 발에 힘을 못주게 하려는 조치이다.

형리로 선발된 군인들은 사형수의 죽음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었으므로 누구인가 예수에게 다가가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보았다. 만일 이 때 조그만 신음 소리라도 들렸다면 여지없이 마지막 일격(다리 꺾기)을 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라 창에 찔린 곳에서 물과 피만 흘러나올 뿐이었다고 한다(요한 19,32-34). 어느 의사 선생님에게 사람이 죽으면 피에서 물이 분리되기 시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십자가에 달린 죄수는 보통 하루 정도 버텼다. 역사적인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2세기에 검투사의 반란을 일으켰던 스팔타커스가 십자가에서 사흘을 버텼다고 한다. 말하자면 십자가에 달려 오래 버티기 부문의 기록 보유자인 셈이다. 검투사의 다부진 체력이 한몫 단단히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예수는 미처 세 시간을 못 버텼는데 아마 3년의 공생애 동안 영양 공급이 부실했기에 그만큼 몸이 약해진 때문이었을 것이다.

 

V

로마제국에 반기를 든 정치범은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십자가형의 순서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① 형리들이 죄수에게 태형을 가하고, ② 자신이 매달리게 될 횡목을 죄수 스스로 사형장까지 나르고, ③ 손목과 발등에 못을 박아 죄수를 십자가에 고정시키면, ④ 죄수는 대략 하루를 못 넘기고 질식사했다. 특히, 십자가 처형은 그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끔찍한 공포감을 심어주었기에 로마에 반기를 들 생각을 아예 못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바로 멜 깁슨이 영화에서 강력하게 부각시킨 부분이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보면서 멜 깁슨이 이제까지 출연했던 영화들을 떠올려 보았다. ‘매드 맥스’ 시리즈(1977,1981,1985년), ‘리쎌 웨폰’ 시리즈(1987,1987,1992년), ‘브레이브 하트’(1995년), ‘페트리어트’(2000년) 등등. 대체로 완성도 높은 폭력성이 돋보이는 영화들이었다. 그런 경향을 미루어볼 때 멜 깁슨이 그리스도가 당한 폭행을 가능한 한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 이해가 되었다. 특히, 피에 굶주린 악당들로 표현된 로마의 형리들이나 예수의 죽음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행태는 관객의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멜 깁슨은 영화를 만들면서 상당 수준의 고증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예수의 모국어인 아람어(히브리어의 사투리)와 로마의 행정용어인 라틴어를 사용하여 영화의 사실감을 높인 작업은 정말 칭찬할 만 하다. 아람어와 라틴어는 문자로는 남아있지만 실생활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사어死語 수준의 고대언어이다. 그런데 전혀 어색하지 않은 배우들의 발음과 억양을 통해 뒤에서 기울인 노력이 얼마나 엄청났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만들어진 어떤 예수 영화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낸 것이다. 또한 십자가형의 과정에서도 사실감이 충분히 드러났다. 로마의 형리들은 채찍 끝에 동물의 뼈나 납을 달아 사람의 몸에 채찍이 잘 감기도록 만들었다. 그 채찍질이 얼마나 모질었는지 열 대 정도 때리면 피부가 벗겨져 뼈가 드러날 정도였다고 한다. 예수가 당했던 채찍질은 실제로도 매우 끔찍했을 것이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 외에도 실존 인물들이 영화에는 여럿 등장하다. 기원 1세기의 이스라엘은 북부의 갈릴래아, 중부의 사마리아, 남부의 유다, 그리고 요르단 강 동편의 베레아로 행정구역이 나뉘어 있었다. 그 중에서 갈릴래아와 베레아를 다스리던 분봉왕分封王(로마가 세운 꼭두각시 왕)은 헤로데 안티파스였는데 예수가 그의 영지인 갈릴래아 출신이었기에 예수의 사형에 관여했다(누가 23,6-12). 예수가 탄생했을 때 베들레헴 일대의 아기들을 살해했다는 폭군 헤로데 대왕의 아들이다(마태 2,16-18). 예수를 십자가형에 넘긴 로마 총독 빌라도는 기원 26-36년에 유대지역을 통치했던 이다. 비록 복음서와 영화에서는 예수에게 호의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포악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 이유로 로마 황제는 그를 유대총독 자리에서 직위 해임했고,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후에 황제로부터 자살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이제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다룬 영화는 많았다. 얼추 떠오르는 작품만 해도 ‘왕중왕’(1961년), ‘위대한 생애’(1965년), ‘나자렛 예수’(1977년), ‘예수의 마지막 유혹’(1988년) 이 있는데 모두 ‘그리스도의 수난’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이전의 영화들은 대체로 예수의 일생을 다루면서 그의 가르침이나 사상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수난’은 깊은 성찰 보다는 십자가형의 사실감을 표현하는 데만 치중한 덕분에 종교영화로서의 품위는 현격히 감소되었다. 영화가 끝난 후 손에 남은 것은 오직 끔찍한 고통을 겪은 예수를 향한 연민의 감정뿐이었다. 하지만 고통 자체에 사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진정한 의미는 그 고통을 통해 창출되는 가치에 있지 않을까? ‘그리스도의 수난’이 비록 흥행작품으로 대박을 터뜨렸을지는 모르나 종교영화로는 실패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를 보면서 개신교인들은 아마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횡목을 나르는 중에 예수가 어머니 마리아를 만나는 장면이나, 어느 여인(베로니카)이 예수의 피 묻은 얼굴을 닦아주는 장면이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가톨릭과 성공회의 전통 중 하나인 이른바 ‘14처기도’에서 따온 것으로, 십자가의 길을 14단계로 나누어 묵상하는 방법이다. 그 때문에 요즘 한국 개신교의 일부 보수적인 신자들 사이에서 이 영화를 이단異端의 술수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는데, 과민 반응으로 보인다.

예수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다. 이는 비단 성서뿐 아니라 주변의 문헌들을 통해서도 확인된 바다. 몇 가지 자료들을 인용해보겠다.

① “이 즈음에 굳이 그를 사람으로 부른다면, 예수라고 하는 현자 한 사람이 살았다. 예수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며 그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선생이 되었다. 그는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았다. 그는 바로 메시아였다. 빌라도는 우리 유대인들 중 고위층 사람들이 예수를 비난하는 소리를 듣고 그를 십자가에 처형시키도록 명령했으나, 처음부터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예수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다. 예수가 죽은 지 3일째 되는 날, 그는 다시 살아서 그들 앞에 나타났다. 이것은 하느님의 선지자들이 이미 예언했던 바, 예수에 대한 많은 불가사의한 일들 중의 하나였다. 오늘날까지도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요세푸스, <유대고사>, 18권 3장)

② “이 소문을 종식시키기 위해 네로는 반종교적인 성향으로 미움받던 이들을 기술적으로 고문할 것을 명령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었다. 그 이름은 티베리우스 시대에 본디오 빌라도 총독에 의해 처형된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이다. 당시에 처벌되었던 그 사악한 미신은 다시 유대뿐 아니라 로마에까지 파고 들어와, 더럽고 사악한 것을 퍼뜨리며 자발적인 동료들을 얻어냈다.”(타키투스, <연대기> 15장 44절)

③ 과월절 전날 예수를 매달았다. 그 40일 전에 전령이 이렇게 외쳤다. “예수는 성밖으로 끌려가 돌에 맞아 죽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마술을 부리고 이스라엘을 현혹하고 빗나가게 했기 때문이다. 그를 변호할 말이 있는 사람은 나와서 말하라.” 그를 변호하는 말이 없었으므로 과월절 전날 저녁 때 그를 매달았다.(<바빌론 탈무드> 산헤드린편 43a)  

그 예수로부터 시작하여 민족종교인 유대교가 세계종교인 그리스도교로 탈바꿈했다. 그처럼 그리스도교가 세계종교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 바로 예수의 부활이고, 부활을 강조하기 위해 그 앞의 과정인 죽음을 선명하게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지난 2천년 교회 역사에서 예수의 수난이야기가 그리스도 신앙의 중요한 몫을 차지하게 된 까닭이다. 

우리나라는 그리스도교 국가가 아닌 만큼 미국이나 유럽에서처럼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서구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기에 궁금증을 풀어보는 차원에서 한번쯤 볼만한 영화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앞에 설명한 예수 처형의 역사와 영화에 나타난 처형 과정을 비교하면서 영화를 감상하면 보다 짭짤한 재미를 맛볼 것이다. 다만 너무 끔찍한 장면이 많아 맘 약한 분들은 그저 이 영화 평으로 만족해도 좋을 듯싶다. / 박태식 신부 (홀리넷 함께사는 세상 이야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