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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영접하라!(연중 31주일, 최도미닉 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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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3(연중31주) / 이사1:10-18, 2데살1:1-12, 루가19:1-10

예수를 영접하라!

 

지월(指月)이란 말이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킨다는 말입니다. 이 때 우리가 바라보아야할 것은 손가락이 아니라 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를 바라보며 그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교회에 다니는 사람으로 오해합니다. 사실 주일이 되면 열심히 교회에 참석하니 그럴 만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를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가 진정 보아야할 대상은 교회가 아니라 교회가 가리키는 예수입니다. 우리가 주일도 열심히 지키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성경도 열심히 읽습니다. 다 좋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결국 예수를 바라보지 못한다면, 예수를 자신의 삶 속으로 영접하지 못했다면 그 믿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 승리하는 자는 마치 내가 승리한 후에 내 아버지와 함께 그 옥좌에 앉은 것같이 나와 함께 내 옥좌에 앉게 하여 주겠다”고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의 옥좌에 앉습니까?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까? 어떤 사람이 축복을 받고, 어떤 사람이 주님이 주시는 치유를 경험합니까? 바로 주님을 영접한 사람입니다.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영접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포인트입니다. 구원의 포인트입니다. 예수를 만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를 통해서 생명의 물, 치유의 물, 온갖 축복의 물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은 사라은 성서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요한7:38)

오늘 복음은 우리가 어떻게 예수를 내 마음속에 그리고 내 삶속에 영접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나오는 생명수를 마실 수 있는지 그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사람들을 중에 “오늘 이집은 구원을 얻었다.”라고 축복을 받은 사람은 예수를 영접한 자케오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케오는 어떻게 해서 주님을 영접할 수 있었을까요?

 

첫째, 관심이 달라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목표가 바뀐 것입니다. 목표를 바꾸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예수를 만날 수 없습니다.

자케오는 부자입니다. 비록 로마에 빌붙어 살기는 했지만 여리고에서는 잘 알려진 사람이요, 부귀와 권세도 누린 사람입니다. 만약 자케오가 부자로 만족했다면 그는 결코 주님을 영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자케오는 “예수가 어떤 분인지를 보려고 애를 썼다”라고 했습니다.

부자는 무엇을 보려고 애쓰는 사람입니까? 돈을 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입니다. 명예와 권세를 보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케오가 돈을 보려는 것에서 예수를 보려고 애쓰는 삶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뀌어야 합니다. 이게 바뀌지 않고는 예수를 볼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필립보서 3장 8절 이하의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에게는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깁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고백입니다. 지금까지 바울로는 무엇을 위해 살았습니까? 그는 자신이 귀족 가문임을 자랑했고, 자신의 능력을 자랑했고, 자신의 부를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존귀하게 여기던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 그리스도를 얻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 전에 자랑하던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긴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교회에 나오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결국 우리의 지향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기도예문에 고백처럼 “마음을 드높이 주님께 올립니다. 주님을 향하여 마음을 엽니다.” 로 바뀌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찾기에 애를 쓰고 있습니까? 너무나 중요한 질문입니다. 예수를 보려고 애쓰는 삶이 되야합니다. 예수를 보려고 애쓰는 삶이 없이는 결코 주님을 영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예수를 만나려고 하는 갈망이 없다면 우리는 군중이요, 그저 스쳐가는 사람입니다. 군중처럼 예수의 겉모습만 보려는 사람은 결코 예수를 영접할 수 없습니다.

 

둘째, 장애를 극복해야 합니다.

자케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었지만 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장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자신이 키가 작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예수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키가 작다는 것은 자케오도 어쩔 수 없는 장애입니다. 그렇데 태어난 것을 어떻게 합니까? 이처럼 우리에게는 어쩔 수 없는 장애가 있습니다.

어느 현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를 위해서 하려고 하는 온갖 종교적인 태도는 마치 돌을 안고 물 위에 뜨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그러니 ‘나’라고 하는 무거운 돌을 내던져라. 그러면 진리의 드넓은 바다에 떠올라 살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나라고 하는 것, 어쩔 수 없는 장애입니다. 내 안에서 나오는 그릇된 욕심, 분노, 잘못된 성품과 습관들은 예수를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게 하는 장애입니다. 이런 장애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케오에게 이런 장애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군중들도 그의 장애였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싶어도 예수를 둘러싸고 있는 군중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장애는 자아 때문에 생기는 것만은 아닙니다. 주변의 환경과 이웃들 때문에 생기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신부 때문에 생기기도 합니다. 교우 간에 생기기도 합니다. 경제적이 어려움이나 육체적인 고통으로 인해 생기기도 합니다.

 

이처럼 주님을 영접하는 삶을 살기까지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장애가 있는지 모릅니다. 이때 자케오처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예수를 보기에는 키가 작았지만 그리고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 때문에 예수를 볼 수 없었지만 예수를 만나야 하는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는 사람은 결코 예수를 영접할 수 없습니다.

 

셋째,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보고 싶었지만 볼 수가 없었던 자케오는 어떻게 했나요.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가실 길을 앞질러 간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 말씀입니다.

“너희 손은 피투성이. 몸을 씻어 정결케 하여라. 내 앞에서 악한 행실을 버려라. 깨끗이 악에서 손을 떼어라. 착한 길을 익히고 바른 삶을 찾아라.”

그렇습니다. 착한 길을 익히고 바른 삶이 무엇인지를 찾으려는 구도의 삶이 없이는 주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앞질러 갔던 자케오는 앞에 서있는 돌무화과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나무 위를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보이지 않던 주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케오는 주님의 길을 앞서 갔고, 그리고 무화과나무 위로 올라 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케오는 키가 작다는 자신의 운명, 그리고 군중들에 둘러싸여 볼 수 없었던 한계를 극복하고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은 자케오보다 주님은 먼저 보시고 자케오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보려할 때 주님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보십니다. 그리고 다정하게 나를 불러주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올라가야할 무화과나무는 어디에 있나요. 바로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주님을 보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올라가야할 나무입니다. 주님은 바로 이 말씀과 기도를 통해 자신을 보여 주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라, 나와 시비를 가리자. 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어지며,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

그렇습니다. 말씀 안으로 들어가서 시비를 가리십시오. 우리를 정결케 해주실 것입니다. 기도함으로 시비를 가리십시오. 주님께서 나의 힘의 되어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삶을 찾기 위해 말씀과 기도 안에 머무는 삶이 없이는 주님을 영접할 길이 없습니다. 자케오처럼 미리 달려가십시오. 그리고 나무위로 올라가십시오.

자케오가 나무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체면을 생각하면,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지 않고는 올라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버려야 합니다. 체면도 시간도 내 처지를 다 버리고 기도와 말씀의 나무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지금 바쁘다고요, 뭔가 힘들고 어렵다고요. 그래서 나중하게 하겠다고요. 주님은 지나가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이 모든 일은 지금 해야 합니다.

넷째는 변화해야 합니다.

영접한 자의 모습은 변화로 나타납니다. 자케오는 회개한 삶을 증거로 보여 주었습니다. 이게 어리석은 부자와 다른 점입니다.

 

변화가 없는 만남은 영접이 아니라 그저 스쳐지나갈 뿐입니다. 주님을 영접했다고 하는 증거는 연제나 변화된 삶으로 나타납니다. 열매로 나무를 알듯이 내가 주님을 영접했는지 아는 비밀은 변화입니다. 소금은 넣었다는 것 무엇으로 압니까? 색깔인가요. 모양인가요. 아닙니다. 맛으로 압니니다. 이처럼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만나면 인격이 변화됩니다. 삶의 가치와 목적이 변화됩니다. 만약에 예수를 믿고도 이런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영접한 자가 아니라 스쳐지나가는 사람입니다. 영접한 자가 아니라 군중에 불과할 뿐입니다. 군중은 예수로부터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케오는 변화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하든 재산을 모으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자신의 재산을 반으로 나누었습니다. 가짐에서 나눔으로 바뀌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남을 속여 먹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아 주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였을 분만 아니라 죄의 대가를 지불하였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제의 내가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날로날로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접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따라다니던 군중이나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영접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군중은 예수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영접한자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가 영접하는 믿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손끝이 아니라 달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는 우리가 되야 하겠습니다.

다음 주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자케오처럼 나만 느끼는 감사가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느끼고 찬양하는 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자케오야, 너는 구원을 받았다가 아니라 오늘 이집은 구원을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온 가족이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게 하라는 명령도 함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