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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서, 성령이여!(성령강림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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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서, 성령이여!

우리 신앙에서 가장 신비롭고 달콤한 것은 성령의 강림과 인도하심입니다. 하느님의 숨결이 우리에게 임하시어 세속에서 얻을 수 없는 가장 기쁘고 평화로운 상태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성령이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라고 했습니다. 물론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어도 이런 것들을 교육과 수련으로서 인격적으로 갖출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의지와 노력으로 이루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덕목들을 자랑하고 집착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이루어주시는 열매로서의 이런 덕목들은 자신 안에 담겨있는 영원한 신성의 깨어남으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시련의 파고가 몰아친다고 해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영적 각성을 위한 많은 노력들이 있어왔습니다. 그 중에서 중세기의 수도자들, 특히 마에스터 에크하르트나 아빌라의 데레사 등등의 신비적 영성가들의 안내는 오늘날에도 깊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빌라의 데레사는 영적 각성의 7가지 단계를 ‘내면의 성’이라는 책으로 적었습니다. 영혼을 ‘마치 하나의 거대한 다이아몬드나 매우 투명한 수정으로 만들어진 성’이라 비유했습니다. 그 속에는 ‘거할 곳’이 많다고 보았는데 그 성에는 7개의 방이 있다고 합니다.

(내면의 성 / 아빌라의 테레사 / 요단출판사 / 구입링크(알라딘서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의 바깥에 살고 있는 처참한 삶을 산다고 합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너무나 분주하고 번잡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성 안에 있는 보물을 알아볼 여유조차 없습니다. 때로는 기도나 명상을 통해서 성 안으로 들어가 보려 하지만 기도가 너무나도 미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중에 정말로 하느님께 가깝게 나아갈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은 성 안쪽에 있는 첫째 방으로 들어갈 마음이 생겨서 그리로 들어갑니다. 세속적인 모든 것들이 덧없으므로 완전한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없고 하느님의 사랑만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둘째 방에서는 사람들이 더 큰 힘을 얻기 시작해서 하느님의 것들을 추구하고 기도를 통해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셋째 방에 이를 정도가 되면 세상 사람들 눈에 착한 사람, 신앙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하느님께 완전히 순종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이성을 믿는 입장으로 되돌아가느냐를 결정해야 합니다. 넷째 방은 신비적 경험의 초기 단계로서 신을 더욱 의존하고 신뢰하며 그의 품에 들어갑니다. 노력이나 애쓰는 차원이 아니라 은혜와 축복의 방입니다. 다섯 째 방에서는 하느님과 하나 됨이 이루어집니다. 영혼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영양분을 먹고 사는 누에와 같아서 완전한 신뢰 상태에서 하느님 사랑 속에 고치를 틀고 안주하게 된다고 합니다. ‘나비는 그것이 벌레였을 때 하던 일, 천천히 실을 뽑던 일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나비는 이제 날개를 가졌다. 날 수 있는데 어찌 꾸물거리면서 기는 것에 만족할 수 있겠는가?’

여섯 째 방은 하느님과 약혼 관계로서 ‘영혼의 어두운 밤’인데 영혼은 더욱 큰 사랑을 받는 반면에 시련도 그만큼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방에서는 완전한 평화와 안정을 지니고 하느님과 혼인 관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 지상에서 하느님을 완전히 표현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사건이나 시련이 다가오지만 이런 것들은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처음 세 방까지는 인간의 노력과 일상적인 은혜로 이를 수 있지만, 나머지 네 방은 오로지 신비적인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을 때 가능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때 기도는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그의 뜻에 더욱 가깝게 나아가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데레사가 이해하고 인도하는 영적 안내의 그 깊은 단계는 성령임재를 갈구하는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그것은 개인의 황홀경 체험이나 개인의 복락을 위한 신기한 능력으로서의 성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수난하시기 전날 밤에 게쎄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아버지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 기도가 우리의 입술로 고해지기를 바랍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6월 8 성령강림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