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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아름다운 천사들이요! 헌신들이여!(연중 26주일, 최도미닉 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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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카엘과 모든 천사들. 연중 26주일 /창세28:10-17, 묵시12:7-12, 요한1:47-51

오! 아름다운 천사들이요! 헌신들이여!

 

부르스 웰리스 주연의 제 5원소란 영화가 있습니다.

300년 후인 2259년 뉴욕입니다. 지구에 거대한 괴행성이 다가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전 군대는 비상상태에 돌입하고, 핵미사일로 공격을 합니다. 그러나 공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괴행성은 점점 더 커지면서 더 빠른 속도로 지구를 향해 돌진해올 뿐입니다.

이런 위기 앞에 인류는 속수무책입니다. 이 때 피라미드의 성직자 코넬리우스는 300년 전 예언대로 악마가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언에 의하면 이 5개의 원소를 갖고 우주인이 찾아와 지구를 구해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우주인이 바로 ‘리루’라는 소녀입니다. 바로 이 ‘리루’라는 소녀와 ‘코벤’이라는 형사와 함께 5개의 원소의 비밀을 찾아가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이때 4원소는 물, 불, 바람, 흙을 상징하는 돌이었습니다. 이 원소들은 인류 문명의 상징입니다. 이것들을 갖고 인간은 문명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이 문명은 인간을 풍요롭게도 했지만 인간을 파괴하는 절대적인 힘이기도 합니다. 이 네 개의 요소가 악마와 결합하면 지구는 악마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 네 개의 요소가 다른 하나와 결합하면 지구를 멸망에서 구할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주제입니다.

코벤과 일행들은 4개의 원소 비밀을 찾는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비밀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 비밀은 오직 ‘리루’라는 소녀만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리루’는 부상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리루’의 기억 속에는 인간들의 잔악한 모습들이 영상처럼 떠오릅니다. 서로 죽이고 파괴하는 모습, 원자폭탄이 터지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리루’는 더 이상 이기심과 욕심으로 가득 찬 이런 인간들로는 이 아름다운 지구를 지켜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리루’는 이런 인간을 구해야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고 침묵하며 죽어갑니다.

그러면서 리루는 말합니다.

“인간은 창조한 모든 것들을 다시 파괴합니다.”

결국 ‘리루’는 마지막 5원소를 말하지 않습니다. 이 때 주인공 형사 ‘코벤’은 흐느끼며 그래도 인간은 살릴 가치가 있다 말합니다.

그러자 ‘리루’는 아주 희미한 소리로 그 이유를 묻습니다. 그러자 ‘코벤’이 대답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으니까?”라고 말입니다.

바로 이게 해답이었습니다. “사랑” 바로 이 사랑이 인류를 구원할 제 5원소였습니다. 사랑을 말하는 순간 강한 빛이 지구를 파괴하려고 달려드는 횡성을 부수어버립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왜 하느님은 우리에게 천사들을 보내셨는지, 그리고 그 천사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려는 비밀이 무엇인지,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의 평화와 축복을 위해 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사랑이었습니다.

오늘은 성미가엘 과 모든 천사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대한성공회 설립기념일이기도 합니다. 천사는 하느님을 대신하여 사탄과 싸우고 인간을 보호해주는 분입니다. 그리고 천사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영적 존재들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찾아와 하느님의 뜻을 알려줍니다. 하느님은 동녀인 마리아를 통해 구세주를 태어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이 제안을 수락합니다.

무엇 때문에 마리아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처녀 잉태를 수락했을까요? 저는 앞으로 예수가 보여줄 사랑, 십자가의 비밀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열쇄,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다른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이길 만이 구원의 길이요 생명의 길입니다. 하느님은 이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던 것처럼 이 사랑으로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실 비전을 천사는 마리아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 사랑으로 에덴의 축복, 에덴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때문에 이런 비전을 보여줄 예수를 잉태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보다 더 갚진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말씀은 성경에 없습니다. 이것은 설교자의 상상력입니다. 아마 천사는 이런 하느님의 계획으로 마리아를 설득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저는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 가지 확신이 있습니다. 바울로의 말씀처럼 “십자가” 이외에는 생명과 축복으로 가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아마 대한성공회가 천사 미카엘과 모든 천사들을 기념하는 날을 택한 것도 바로 이런 정신으로 출발하겠다는 의지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교회사 학자인 이덕주 선생님은 성공회 초기 선교사들의 출신학교로 보면 다른 어떤 교파 선교사 보다 교육 수준이 월등하다고 했습니다. 문헌을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초대 한국 교구장을 역임한 코프 주교를 비롯하여 2대, 3대 교구장을 역임한 단아덕 주교와 조마가 주교 모두가 옥스퍼드 출신이고, 일제 시대 마지막 교구장을 역임한 구세실 주교는 케임브릿지 출신이라고 합니다. 우리로 말하면 서울대, 연. 고대 출신들일 것입니다. 이런 명문대를 나온 이들이 사제가 되었고, 그것도 부족해서 남들이 가려고 하지 않는 지도에도 없는 조선을 선택해서 선교사로 왔던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 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하다가 암으로 일생을 마친 이태석 신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대한성공회 설립기념일이니 대한성공회 초석을 놓은 초대 주교인 코프 주교와 렌디스 박사의 일화를 함께 나누어 볼까 합니다. 정말 이 이야기는 생각할 때마다 짠한 감동을 줍니다. 이들이야 말로 우리에게는 천사였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국선교를 위한 노력은 1880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887년 북중국 주교 스코트와 일본의 주교 비커스테드는 조선 선교를 위해 1887년 9월 26일 선교사를 파송줄 것을 켄터베리 대주교에게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이를 위해 켄터베리 대주교는 의회를 소집하고, 영국해군 군종신부였던 존 코프 신부를 1889년 11월 1일 제성일(모든 성인들을 기억하는 축일이지요) 에 조선성공회 초대주교로 서품합니다.

그러나 고요한 주교의 처음부터 고행이었습니다. 고요한 주교는 조선에서 선교할 동역자를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조선은 지도에도 없는 미개한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고요한 주교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과 케나다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동역자를 찾았습니다. 바로 이 때 고요한 주교와 함께하겠다고 나선 청년이 있었습니다. 바로 렌디스 박사였습니다. 그는 총망받는 젊은 의사였는데 모든 출세의 길을 마다하고 고요한 주교와 함께 조선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렇게 고요한 주교와 렌디스 박사가 제물포 항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이때가 바로 9월 29일이었습니다. 대한성공회가 시작되는 첫 날이 된 셈입니다.

 

인천 제물포에 첫 발을 딛은 고요한 주교는 제물포에 1890년 도착 직후 교회를 세워 기도처를 마련하였고, 서울(경성)에도 장림성당(현 서울대성당)을 설립하여 개척선교를 시작하였습니다. 더불어 랜디스 의사는 인천 도착 직후 진찰실을 꾸며 의료진료를 시작했고 이듬해 10월 성누가병원(樂善施病院)을 개원하였습니다. 이후 1891년에 서울 정동에 성베드로병원과 낙동에 성마태병원을 세웠으며, 이후 진천의 애인병원, 여주병원 등 의료선교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고요한 주교는 전도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책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해군동료들이 보내준 성금으로 1891년 인쇄기를 구입합니다. 그 때부터 고요한 주교님은 조만민광(照萬民光) 등 수십 종의 신앙서적과 전례기도서, 성가, 교리문답 등이 출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문서를 통한 전도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이런 뒷받침에 힘입어 선교지역도 서울 마포, 광나루, 경기도의 수원, 황해도의 백천 등지로 넓혀갔습니다. 그리고 교회와 함께 서구식 교육사업 실시, 그리고 고아원 등의 복지사업도 펼쳐 나갔습니다.

코프 주교는 용감한 ‘개척선교자’였습니다.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극동(極東, Far East)’의 감추어진 나라 조선, 동역할 선교사도 없고, 영국의 재정지원 부족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 먼 이국땅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쳤던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희생입니까? 바로 우리에게는 천사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렌드스 박사입니다. 저는 렌디스 박사야 말로 복음을 살아간 분이요 천사라고 생각했습니다. 렌디스 박사에 대한 한 보고서입니다.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다른 날도 마찬가지이지만, 오늘 그가 한 일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환자들이아침 7시부터 오기 시작해서 오전 11시 30분까지 35명의 외래환를 진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입원환자들을 돌보고 점심식하 후에 바로 더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였는데 …. ”

의사로써 얼마나 바쁘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환자들만 돌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영어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그 후에는 한 사람의 응급환자를 치료하고 8시 30분에야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는 의사일 뿐만아니라 선생님이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이 쉬어야 할 시간에는 영어학교를 열어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뿐만 아닙니다. 1892년에는 여섯 살 난 고아를 데려다가 양자로 삼아 기르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인천고아원의 효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렌디스 박사에게는 자기 삶이란 없었습니다. 오직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1897년에는 서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삶을 살기 위해 송림동로 이사합니다. 사람들은 성공을 하면 더 좋은 곳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렌디스 박사는 오히려 가난하고 어려운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고 나누기 위해 예수님처럼 갈릴리로 간 것입니다. 결국 이것이 원인이 되어 1989년 4월 16일 32세의 젊은 나이로 풍토병으로 죽게 됩니다.

저는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미지의 땅에 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치게 만들었을까? 단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려는 것입니다. 어쩌면 제 5원소의 영화에 나오는 ‘리루’처럼 십자가의 사랑이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우리들에게 온 천사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어을 기억하고, 무엇을 기념해야할까요? 그들이 뿌린 희생, 피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또한 천사가 되야 합니다. 이게 예수님의 방식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신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이 시대에 복음을 전하는 천사가 되야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십자가의 진리입니다. 바로 이 십자가는 우리가 가야할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이 십자가의 진리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이 세상에 이 십자가의 진리를 전해주는 천사가 되야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진리는 렌디스 박사나, 혹은 코프 주교님처럼 꼭 선교사가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그들이 져야할 십자가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 나에게 주신 십자가를 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져야할 십자가란 뭘까요?

지금까지의 십자가는 나를 위해 남을 죽이는 게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것을 내가 죽는 십자가로 바꾸셨습니다.

비록 겨자씨만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해 나눌 수 있다면, 예수님처럼 기꺼이 낮아질 수 있다면 우리는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해주는 마음, 남을 위해 나를 기꺼이 내어주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이 있기에 메마름은 촉촉해지고, 어둠은 밝아지는 것이요, 값없는 천한 존재들이 더 고귀한 존재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언제나 “남보다 더” 가지려는 것에서 찾으려 합니다. 지식도, 명예도, 재산도, 권세도 남보다 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구약의 바벨처럼, 신약의 베짜다의 연못처럼 “남보다 더”라는 이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남과 함께”가 아니라 “남보다 더” 가져야 한다는 이 생각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살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언제나 “남보다 더”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래서 어둠 속을 헤메는 것입니다.

 

이 때 요엘의 말씀처럼 “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만민이 야훼의 영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선교사요, 이 시대의 천사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코프 주교와 렌디스 박사가 기꺼이 우리에게 천사가 되어 준 것처럼 우리도 어둠 속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진리를 전하는 천사가 되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성찬례를 나누면서 우리 모두 하느님의 천사가 되기를 다짐해보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