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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옥스포드)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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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들어서서 영국교회 즉 성공회는 안일과 무사주의에 빠져있었다. 성직자들은 복수교구제를 통해 여러 가지 지위를 갖고서 수입을 얻었으며 비거주 주교제, 예배 및 예전준수에 대한 태만이 만연되고 있었다. 영국교회내의 일부 복음주의자들은 전통을 계승하여 19세기 초에 와서도 가장 열성적인 활동을 했다.
성서를 연구하고 종교문학을 출판하며 자선사업과 사회개혁에 계속 힘썼다. 반면에 이들은 사변적인 역사와 철학사상에 관심이 없었다. 성서를 하느님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는 만족했어도 과학적 비판연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꾸준히 계속해서 영국교회 발전을 위해 많은 영향과 감화를 주었다.
19세기는 영국교회에 있어 전반적으로 놀라운 발전을 가져다 준 시기라 할 수 있다. 1832년 의회에서 개혁법이 통과된 후 그간의 악폐들을 시정하여 성공회로 하여금 새로운 시대여건에 효율적인 대처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영국교회감독관이란 단체가 조직되어 교구, 교회 성직자들의 각종 비리를 정비하게 하였다. 한편 영국교회 내에서는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이른바 옥스퍼드 운동이었다.

옥스퍼드운동은 신학적 운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교회적 운동으로 옥스퍼드의 사람들이 옛 고교회파의 교회주의를 그 당시 실제적 요청에 적용시키려고 한 운동이라 하겠다. 옥스퍼드운동의 선구자는 휴 제임스 로우즈였는데 그는 강연집을 통해 독일의 합리주의를 비판했고 브리티쉬 매거진을 창간하여 옥스퍼드운동의 기관지가 되게 했다. 또 한사람은 평신도학자인 알렉산더 녹스와 동료인 죤 제브 주교였다. 이들 가르침의 골자는 중도노선으로서의 앵글리칸이즘, 사도적계승, 그리고 교회의 보편성과 계속성을 보존하는 기초적 원리로서의 성공회예전 등이었는데 이것들은 옥스퍼드운동자들의 원리가 되었던 것이다. 본격적이 운동의 대표자는 뉴맨, 퓨지 그리고 케블이었다. 죤 헨리 뉴맨(John Henry Newman)은 교부신학연구와 고교회입장에 관심을 두었고 “트랙스”(Tract) 잡지의 주필로서 활약하였다. 나중에 로마교회로 개종하여 추기경이 되었다. 에드워드 퓨지(Edward Pusey)는 화육과 십자가에 대한 신비적 예전적 개념에 중점을 두고 활동했으며 뉴맨의 개종이후 영국가톨릭(Anglo-Catholic) 세력을 규합하였다.
시인이며 신학자였던 죤 케블(John Keble)은 찬송시집에서 낭만주의학파의 자연상징주의에 대하여 기독교적 예전해석을 가하였다. 본격적인 운동은 대체로 세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기간에는 보수적이고 정적인 분위기에서 교회의 영적본질과 독립성을 수호하는 문제를 다루었고, 둘째 기간에는 종교의 경건, 화육, 신비적 예전주의, 윤리적 금욕주의가 강조되어 이 운동의 특징을 드러내 주었으며 희랍교부들의 저서를 번역, 소개했으며 트랙(Tracts)가 논문집 구실을 했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기간에는 교회의 진보적 이상에 대해 관심을 두었다. 이들 가르침의 요점을 간추려보면 우선 이들의 노선은 반로마적인 동시에 반프로테스탄트로서 중도노선이었고 성찬에 관한 가르침에서도 로마교회의 화체설과 루터의 공재설을 모두 거부하여 성공회의 전통에 충실했다.
 삼위일체와 화육의 교리가 강조되었고 십자가에 대한 신비적 명상과 금욕적 이상을 강조하는 경건이 중요시 되었다. 이와 같은 옥스퍼드운동의 결과는 19세기 이후 영국성공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우선 후커의 낡은 국가적 교회개념과는 대조적으로 영국교회로 하여금 교회의 영적근거와 사명을 자각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영국교회로 하여금 카톨릭적 유산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게 해주었다.

이 운동자들은 주교제도의 사도계승 전통에서 카톨릭교회의 본질적 특징을 발견하려했으며 특히 성사와 예전을 중요시하여 합법적인 사도계승 전통에 따라 안수받은 성직자가 집전할 때만 유효하다고 했다. 초대교부의 글을 높이 평가하고 신학연구를 중요시했으며 신경에 나타난 신앙을 해치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예전의 관습, 제복, 부품들을 부활시켰고 예배는 위엄과 아름다움이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수도원제도를 부활시키고 사회적 열정을 가해 주었다. 특별히 희랍교부들에 관한 연구는 영국신학으로 하여금 화육론을 그리스도교 교리의 중심으로 삼게 해주었다.
 
옥스포드 운동은 결국 앵글로 카톨릭운동으로 승화되었고 일부 운동가들은 로마교회로 개종했으나 대부분은 영국교회에 남아 카톨릭전통을 강화시켰으며 특히 이들이 당시 영국의 여러도시에 살고 있는 빈곤계층을 위한 희생적 봉사활동은 특기할 만한 것이었다. 19세기 후반 영국교회를 생명력있게 발전시키고 헌신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지만 앵글로 카톨릭운동과 맥을 잇는 측면에 한사람 대표로 찰스 고어(Charles Gore) 주교를 들 수 있다. 그는 1889년에 “룩스 문디”(Lux Mundi)란 책을 냈는데 이 책의 내용은 카톨릭신앙을 현재의 지적, 도덕적 문제들과 조화시키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당시 성공회 신학에 있어서 획기적인 지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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