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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보라!(분당교회 장기용요한 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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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보라!

사람들이 판단을 하고 선택을 할 때 피해야 할 것은 ‘편견’입니다. 공정하지 못하고 한 쪽으로 치우친 사고를 하면 상황과 사람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도록 합니다. 특정한 사람을 이유 없이 우대하거나 차별한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매우 불쾌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냥 한 대 맞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집니다. 그러나 차별받는 말 한 마디는 평생의 상처로 남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가정에서 장남을 지나치게 우대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많았던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공부 잘 하는 아이와 못 하는 아이, 잘 사는 아이와 못 사는 아이에 대한 차별이 없었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상계동 지역이 계발 될 때 어느 신부님이 하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학교 체육시간에 운동복을 갈아입고 운동장에 나갔다가 교실로 돌아왔는데 어느 아이의 지갑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눈을 감게 하고 지갑을 가져간 사람은 조용히 손을 들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나오지 않자 선생님은 원주민들이 사는 지역의 아이들은 남고 개발지역의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집으로 돌려보냈답니다. 남은 아이들은 아직도 가난한 미개발 지역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도둑 취급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때 아이들이 받았을 상처는 얼마나 쓰렸을까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편견은 불충분하고 부정확한 근거에 기초해서 가치 판단을 내려버립니다. 가끔 정확한 사실이 드러나도 고집스럽게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몇 년 전에 미국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국내에 돌아와 가수가 되었던 사람도 끈질기게 괴롭히는 사람들에 의해서 가정도 본인도 엄청난 시련을 당했던 것은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아무리 사실을 해명해도 고집스럽게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명문대학 졸업은 가짜라는 가정을 진리처럼 확신을 가진 편견은 어쩌면 해코지 하는 사람들의 불안하고 열등한 의식을 보상받고자 하는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처음 전도여행을 떠나시면서 만났던 제자들의 이야기를 필립보와 나타나엘을 중심으로 전합니다. 예수님을 따라나섰던 필립보는 자기의 친구 나타나엘을 찾아가서 예수를 만난 사실을 전합니다. 구약 율법서와 예언서에 약속된 분을 만났으니 함께 따라나서자고 권합니다. 그러자 나타나엘은 시큰둥하면서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하고 대답합니다. 나자렛은 갈릴래아의 한 동네로서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 죄인들이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 곳 사람들은 한결같이 못나고 흉악하고 무식한 사람들인 것으로 낙인찍었던 것입니다. 나타나엘은 갈릴리 나자렛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군중들에게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 알렉산드르 이바노프, 1837~1857, 패널에 유채, 트레치야코프 미술관 Room 10, 모스크바, 러시아) 


그러나 필립보는 포기하지 않고 ‘와서 보라!’고 했습니다. 실상을 보기도 전에 그런 식으로 판단해서 문을 닫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과연 직접 예수님을 대면한 나타나엘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는 고백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전달하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전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관과 판단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한 나름의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개신교 교회가 요즘에는 젊은이들에게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부정적인 스캔들과 공격적인 선교, 그리고 사랑 없는 교세확장에 실망을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흔히 이들이 쓰는 말로는 ‘개독교’라고 지칭되는 교회에 대해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남들이 전하는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라고 보여 집니다. 

때문에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은 매우 중요합니다.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였기 때문에 나타나엘의 마음도 바뀔 수 있었습니다. 인도자의 역할은 이토록 중요한데 그 인도자가 인격과 신앙적으로 신뢰를 잃는다면 그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인도자의 확신과 평상시의 신앙적 생활을 우선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도자들은 말과 행실로 일상 속에서 그리스도 사역에 참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타나엘은 ‘와서 보라!’고 끈질기게 권한 필립보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와서 보라’고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월 18일 주의 세례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