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말씀과 신앙나눔 용서하라! 그러면 받을 상이 클 것입니다.(연중 24주일, 최도미닉 신부 말씀)

용서하라! 그러면 받을 상이 클 것입니다.(연중 24주일, 최도미닉 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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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24주일)/창세50:14-21, 로마14:1-12, 마태18:21-35

용서하라, 그러면 받을 상이 클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미운 놈 떡 하나 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거 잘못된 속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시인의 노래를 보면서 이것은 잘못된 속담이 아니라 진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인은 힘들게 하는 세상,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런 기도를 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요.

그래야 내가 사니까,

그래야 또 내가 살아갈 수 있으니까

제발 용서하게 해다라고 아이처럼 조르세요.”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왜 우리 조상들이 미운 놈에게 떡 하나 주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미움과 증오는 보복이나 저주로 이겨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움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 그것은 용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조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용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용서는 우리가 화해의 길을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할 마지막 고비입니다. 이 고비를 넘어설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있고, 화해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요셉이 형제들과 화해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용서였습니다.

그런데 용서란 그리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길이요,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 마지막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용서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왕에게 일 만 달란트를 빚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도저히 갚을 길이 없어 용서해달라고 청합니다. 왕은 이 청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동료가 100 데나리온을 갚지 않았다 해서 감옥에 가두고 맙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용서를 무효화시키고 다시 그 종을 감옥에 가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기 위해 우리는 먼저 해야할 일은 형제를 용서해야 했던 것입니다. 법정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용서는 가장 큰 수행이다. 남을 용서함으로써 나 자신이 용서 받는다.”

사람은 누구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때문에 이 관계가 어긋나게 되면 불행하게 됩니다. 너그러울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특히 나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거나 나에게 손해를 주었다고 생각하면 그 관계는 여지없이 허물어지게 됩니다. 이런 옹졸함은 개인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인천 아시안게임에 인공기를 걸지 않기 위해 올림픽에 참가하는 모든 나라들의 기를 내렸다는 말을 듣고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런 행위가 세상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이 어떻게 비쳐질까? 과연 평화의 축제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오는 24일 박대통령은 유엔에서 통일대박에 대하여 기조연설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 과연 이 말이 다른 나라들에게 어떻게 들릴까 생각했습니다.

프란시스 교황은 남과 북의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고 용서하라고 말이 절절하게 들립니다.

형제를 용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내 자신이 지고 있는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용서란 결국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탕감 받은 종은 그 감사로 먼저 형제를 용서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억해야 합니다. 증오라는 칼로, 미움이라는 칼로 남을 해치려 한다면 그 칼이 내 자신을 먼저 찌른다는 사실입니다. 증오와 미움의 칼은 언제나 상대방에게 닿기 전에 내 자신을 먼저 찌릅니다. 이처럼 미움과 증오는 나를 아프게 하고 남도 아프게 합니다. 때문에 용서해야 합니다.

13년 전 미국이 9.11 테러를 당했습니다. 미국은 이 테러를 두고 용서가 아닌 보복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지난 십 수 년 동안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모두 3조2천280억 달러, 무려 3천 450조원을 썼다고 합니다. 이러한 막대한 전쟁비용은 결국 미국을 재정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보복은 수많은 희생과 상처를 재생산했습니다. 테러로 사망한 시민은 3천명, 그런데 보복 전쟁으로 사망한 다국적군은 무려 7천 5백 명이나 되었고, 15만 명이나 되는 무고한 사람들이 이 보복 전쟁으로 죽어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미국이 선택한 보복과 증오는 평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두려움과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일보 기자인 김옹호는 아프카니스탄 전쟁을 취재하면서 미국의 보복전쟁을 두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국은 아프간을 무너뜨리면서 동시에 아프간이라는 수렁에 빠져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미움과 증오는 관계를 치유하거나 화해를 만들어 내기보다는 더욱더 관계를 어둡게 한다는 역사적 진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합니다.

때문에 용서는 부탁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주님은 다른 어떤 것에도 조건을 달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용서에 있어서는 조건을 다셨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화해와 치유는 용서를 통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주님은 우리가 잘못한 형제를 위해 기도할 때 “주님, 저들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저들을 회개하게 해주십시오. 저들이 자신의 행위를 고치게 해 주십시오.”라고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게 해 달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용서할 때 비로소 하느님이 개입하시기 때문입니다. 집회서 28장 2절 말씀입니다.

“자기 이웃에 대해서 분노를 품고 있는 자가 어떻게 주님의 용서를 기대할 수 있으랴? 남을 동정할 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자기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할 수 있겠는가? 이웃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라. 그러면 네가 기도할 때에 네 죄도 사해질 것이다.”(집회28:2)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의 개입하십니다.

다음은 내 상황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기억해야 합니다.

빚을 진 종은 도저히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왕에게 가서 탕감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런데 왕은 기꺼이 그 엄청난 빚을 탕감 해주었습니다.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같았지만 왕에게 애원했을 때 그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에 어떤 응어리가 있을 때 내 자신을 의지 하지 말고 주님께 매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용서의 길을 가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은혜를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 자신이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 받은 용서에 비하면 우리가 형제에게 베풀어야할 용서는 정말 하찮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진리를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받은 용서는 1만달란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용서해주어야 할 분량은 100데나리온입니다.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 차이는 무려 60만 배나 됩니다. 이 세상에 1원을 벌기 위해 60만원을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런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종은 형제를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왜 용서하지 못했습니까? 지금 자신이 탕감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는 잊어버리고 자신을 받아야할 권리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형제의 실수를 두고 형제를 미워하고 원망합니까? 내가 받은 은혜, 내가 받은 용서를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남을 용서하기에 앞서 내가 받은 용서를 먼저 생각해야합니다. 주님은 나를 용서하기 위해 천하보다 귀한 당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죽음 목숨에 영원 생명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내가 받을 축복을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용서 못할 일이 없다고 하십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방식입니다. 용서하지 못할 때는 내가 일하지만 용서하면 하느님께서 일하십니다. 이게 성서의 가르침입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주신 유언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가르침의 정점에는 용서가 있습니다. “내가 용서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용서하라. 그러면 내가 함께 하리라.

1베드 4:9의 말씀입니다.

“모든 일에 앞서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용서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