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공포 – 엠마오로 가는 길

[위기관리] 공포 – 엠마오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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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관리] 공포 – 엠마오로 가는 길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바로 그 날 거기 모였던 사람들 중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한 삼십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엠마오라는 동네로 걸어가면서 이 즈음에 일어난 모든 사건에 대하여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토론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서 나란히 걸어가셨다.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길을 걸으면서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하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인 채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글레오파라는 사람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사람으로서 요새 며칠 동안에 거기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다니, 그런 사람이 당신말고 어디 또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무슨 일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에 관한 일이오. 그분은 하느님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그 하신 일과 말씀에 큰 능력을 보이신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 대사제들과 우리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분을 관헌에게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형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분이라고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미 처형을 당하셨고, 더구나 그 일이 있은 지도 벌써 사흘째나 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인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을 찾아가 보았더니 그분의 시체가 없어졌더랍니다. 그뿐만 아니라 천사들이 나타나 그분은 살아 계시다고 일러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보았으나 과연 그 여자들의 말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시며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 그들이 찾아가던 동네에 거의 다다랐을 때에 예수께서 더 멀리 가시려는 듯이 보이자 그들은 “이젠 날도 저물어 저녁이 다 되었으니 여기서 우리와 함께 묵어가십시오.” 하고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집으로 들어가셨다. 예수께서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주셨다.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는데 예수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그들은 곧 그 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가보았더니 거기에 열한 제자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주께서 확실히 다시 살아나셔서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두 사람도 길에서 당한 일과 빵을 떼어주실 때에야 비로소 그분이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루가의 복음서 24,13-35

루가 124,13-35은 예수님의 부활발현사화인데, 루가복음에만 나오는 루가의 특수 자료입니다. 예수님의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60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습니다. 한 스타디온이 200 미터쯤 되니까 예루살렘에서 12 km 떨어진 곳입니다. 당시에는 신작로라는 것이 있었을 리 없으니 하루에 도착하기는 어차피 불가능한 먼 길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제자들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겠지요. 그러다가 길에서 동행자를 만나게 된 겁니다.

두 제자는 여자들로부터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말을 이미 들은 터입니다. 그러니 머릿속에는 온통 예수님 생각밖에는 없었을 테고 동행자에게도 자신들의 관심사를 물어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동행자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처럼 영 딴 소리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 정도만 이야기해도 아마 감을 잡으셨을 겁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는 극적인 반전을 내포하는 재미있는 이야기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당시 문학양식으로는 노벨레(짧은 소설)에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역시 그런 의도에 맞추어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겁니다. 정확한 역사적인 사실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면 재미는 물론, 이야기의 의미까지 놓치고 맙니다.

엠마오 이야기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이미 죽음의 세력을 극복한 분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살아생전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견하시던 때와는 다르게 말씀에서 슬픔이나 분노가 묻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눈이 닫혀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에 대한 연민에 가득 차 있습니다. 특히, 빵을 떼어주는 장면에서 제자들에 대한 애정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자 홀연히 사라지십니다. 극적인 재미를 더해주는 장면입니다.  

두 제자는 아마 엠마오에 볼 일이 있었을 겁니다. 아니면 흔히 추측하는 대로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에서 도망을 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지나친 상상은 이야기의 원뜻을 망치고 맙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갑니다. 부활 예수님을 목격한 자신들이 최선을 다하는 길은 그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는 일이었다고 생각을 한 겁니다. 바로 거기에 이야기의 초점이 있습니다. 종교적인 체험을 한 사람은 극적인 태도의 변화를 보입니다.  부활 예수님을 체험한 엠마오의 두 제자는 행운아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