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슬픔 – 라자로의 죽음

[위기관리] 슬픔 – 라자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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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 라자로의 죽음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가 사는 베다니아 동네에 라자로라는 병자가 있었다. 앓고 있는 라자로는 마리아의 오빠였다.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아드린 적이 있는 여자였다. 마리아와 마르타는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앓고 있습니다.” 하고 전했다. 예수께서는 그 전갈을 받으시고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다. 그것으로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느님의 아들도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고 계셨다.     그러나 라자로가 앓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곳에서 더 머무르시다가 이틀이 지난 뒤에야 제자들에게 “유다로 돌아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선생님, 얼마 전만 해도 유다인들이 선생님을 돌로 치려고 하였는데 그 곳으로 다시 가시겠습니까?” 하고 걱정하자 예수께서는 “낮은 열두 시간이나 되지 않느냐? 낮에 걸어다니는 사람은 세상의 빛을 보기 때문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밤에 걸어다니면 빛이 없기 때문에 걸려 넘어질 것이다.” 하시며     이어서 “우리 친구 라자로가 잠들어 있으니 이제 내가 가서 깨워야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주님, 라자로가 잠이 들었다면 곧 살아나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라자로가 죽었다는 뜻이었는데 제자들은 그저 잠을 자고 있다는 말로 알아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라자로는 죽었다. 이제 그 일로 너희가 믿게 될 터이니 내가 거기 있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다. 그 곳으로 가자.”     그 때에 쌍둥이라고 불리던 토마가 자기 동료인 딴 제자들에게 “우리도 함께 가서 그와 생사를 같이합시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러 보니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이미 나흘이나 지난 뒤였다. 베다니아는 예루살렘에서 오리밖에 안 되는 곳이어서 많은 유다인들이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마르타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와 있었다. 예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르타는 마중을 나갔다. 그 동안 마리아는 집 안에 있었다.     마르타는 예수께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구하시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하느님께서 다 이루어주실 줄 압니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르타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르타는 “예,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남기고 마르타는 돌아가 자기 동생 마리아를 불러 귓속말로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고 일러주었다.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예수께 달려갔다. 예수께서는 아직 동네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마르타가 마중 나왔던 곳에 그냥 계셨던 것이다.     집에서 마리아를 위로해 주던 유다인들은 마리아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그가 곡하러 무덤에 나가는 줄 알고 뒤따라 나갔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계신 곳에 찾아가 뵙고 그 앞에 엎드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뿐만 아니라 같이 따라온 유다인들까지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하고 예수께서 물으시자 그들이 “주님, 오셔서 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저것 보시오. 라자로를 무척 사랑했던가 봅니다.” 하고 말하였다. 또 그들 가운데에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라자로를 죽지 않게 할 수가 없었단 말인가?” 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수께서는 다시 비통한 심정에 잠겨 무덤으로 가셨다. 그 무덤은 동굴로 되어 있었고 입구는 돌로 막혀 있었다. 예수께서 “돌을 치워라.” 하시자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타가 “주님, 그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고 말씀 드렸다. 예수께서 마르타에게 “네가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하시자     사람들이 돌을 치웠다. 예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 제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제 청을 들어주시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여기 둘러선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주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라자로야, 나오너라.” 하고 큰소리로 외치시자 죽었던 사람이 밖으로 나왔는데 손발은 베로 묶여 있었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겨 있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의 복음 11,1-44말씀

예수님이 라자로를 살린 이야기는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기적사화입니다. 분류하면 기적사화 중에서도 ‘소생기적사화’입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기적사화들의 특징은 기적 그 자체가 아니라 기적을 통해 그 뒤에 숨어 있는 깊은 뜻을 보여주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적은 하느님의 뜻을 가늠시켜주는 상징(표징)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출가하여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직접 쫓아 다녔던 제자들이 있었고, 집에 머물면서 예수님을 따른 이들도 있었습니다. 전자를 출가제자로 부르면 후자는 재가제자로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에 나오는 라사로는 재가제자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던 베타니아에 살고 있었고 동기로는 마리아와 마르타가 있습니다. 세 사람 모두 복음서에 자주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갈 때는 주로 베타니아의 세 남매 집에서 며칠 씩 묵곤 했었지요. 예수님과 상당한 친분을 나누었던 지인들이었습니다.

라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예수님은 베타니아로 향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누이 마르타가 예수님에게 하소연을 했고 그녀의 소원에 따라 예수님은 죽은 라사로를 비로소 살려냅니다. 이미 죽은 시체가 썩기 시작한 때였다고 합니다. 라사로의 부활에 앞서 예수님은 마르타에게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믿음과 하느님 영광의 상관관계를 알려주는 말입니다.

요한복음은 이른바 영적인 복음서라 불립니다. 글로 씌어진 이면에 보다 깊은  영적인 차원이 존재하기에 그런 별명이 붙여진 것입니다. 라사로의 부활은 예수님이 생명을 마음대로 쥐락펴락 하는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보여주는 암시입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그리스도론적으로 해석해야 마땅하지 라사로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안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