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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사슬을 끓고(사순 1주일, 최도미닉 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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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1주)/ 창세2:15-17,3:1-7; 로마5:12-19; 마태4:1-11

유혹의 사슬을 끊고

 

오늘 말씀은 사탄의 유혹과 인간의 파멸, 그리고 그 유혹을 극복하시고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의 삶이 아주 다이나믹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유혹의 사슬을 끊고 축복과 생명의 길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을 만들어 주시고 마음껏 열매를 따먹으며 행복하게 살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약속을 지켜야 했습니다. 선악과만은 따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열매를 따먹는 순간 반드시 죽게 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어느 날 하와가 동산에 있는 열매를 따먹으려고 하는데 사탄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하나도 따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게 정말이냐?”

 

정말 간교한 질문입니다. 이렇게 물음으로서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던 탐욕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먹으려는 마음, 아주 원초적인 욕망입니다. 사탄은 언제나 이런식으로 인간을 유혹합니다.

 

그런데 하와는 이 질문에 당당하게 말합니다. “아니야, 얼마든지 따먹게 하셨어. 다만 이 동산에 있는 선악과만은 따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어.”

 

그런데 이 대답에는 인간의 욕심이 묻어있습니다. 하와는 마치 자신의 생각을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만지지 말라는 말씀까지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자기 생각을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덧붙인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사탄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옳다, 너 잘 걸렸다. 너에게는 하느님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도사리고 있구나!”

 

사탄은 하와에게 아주 달콤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 열매를 먹어봐,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처럼 될걸! 하느님이 못 먹게 한 건 네가 이 열매를 먹으면 하느님처럼 될까봐 그렇게 하신거야?”

 

하와는 하느님처럼 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그 순간 선악과는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이렇게 하와는 사탄의 유혹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결국 첫째 아담은 유혹의 사슬을 뿌리치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죄와 죽음을 불러들였습니다. 사실 욕심과 이기심, 바로 원죄입니다. 여기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도, 실패한 사람도,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다 여기에 결려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40일 동안 단식하시며 광야에서 기도하고 계신 주님께 다가옵니다. 정말 고래힘줄같이 질긴 놈입니다. 아담을 유혹했던 그 수법으로 예수에게도 똑같이 유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르셨습니다. 아담과는 달리 주님은 유혹을 뿌리치시고 축복으로 가는 길, 생명으로 가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보면 길이보입니다. 저는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어떻게 해야 유혹의 사슬을 끓고 축복의 길, 생명의 길을 갈 수 있는지 함께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결과에 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주40일 동안 단식을 하신 주님에게 “돌을 들어 빵이 되게 하라”고 유혹합니다. 이 때 사탄은 아주 중요한 단서를 붙입니다. “당신이 하느님 아들이거든”이라고 했습니다.

돌이 떡이 되게 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해 줄 것이고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방법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상에 돌로 빵을 만들 수는 없는 법입니다. 빵을 만들려면 밀을 심어야하고, 추수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밀을 빻아 반죽을 해야 하고 그것을 구어내야 비로소 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순리요 진리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이런 순리를 무시합니다. 아예 과정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치뤄야 할 땀과 수고가 아니라 기적을 선택하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 아무리 빵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순리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기적은 돌이 빵이 되는 기적이 아니라 밀을 심을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우리 성공회가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우리 강동교회가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적만 이야기 합니다. 결과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장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헌신해야 하는지, 무엇을 준비해야하는지 그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때문에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결과가 아닙니다. 그 과정이 정말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 졌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정말 아름다운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남보다 더’ 라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 내려 보라”고합니다. 그러면 성서의 말씀대로 천사들이 떠받쳐 주는지 보자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남과는 다른 능력을 보여줘야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성전에서 뛰어 내려도 다치지 않을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아마 성전에서 떨어졌는데도 천사들이 떠받쳐 주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장관이겠습니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왜 성전 탑 위에서 떨어져야 합니까? 아마 예수님이라면 몰라도 다른 사람이 떨어진다면 다 죽고 말 것입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은 무시한 채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런 이기심, 남보다 더 큰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욕심은 결국 우리를 교만에 빠지게 할 것입니다.

 

징기스칸의 훈요 30조 중에 17조에는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예순 베이는 훌륭한 용사다. 아무리 오래 싸워도 지칠 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모든 병사들이 자기와 같은 줄 알고 성을 낸다. 그런 사람은 지휘자가 될 수 없다. 군사를 통솔하려면 병사들의 갈증과 허기와 피곤함을 같이 느낄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려하는 마음,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이 없다면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잘 봐야할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시켜 시중들게 하시고 돌에 부딪치지 않게 보살피시는 일은 높은 성전에서 떨어질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입니다. 하느님은 누구나 그를 믿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보살펴 주십니다.

 

그런데 사탄은 이 말씀을 엉뚱하게 해석해서 말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되려면 일류가 되어야한다고 말합니다.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고 남이 할 수 없는 일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야 성공하고 그래야 영웅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아들이 되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실 가만히 보십시오. 얼마나 똑똑한 사람, 뛰어난 사람이 많습니까? 이완용은 실력이 모자라서 나라를 팔아먹었겠습니까?

 

이 말에 주님은 단호하셨습니다.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여기서 실패합니다. 하느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세상의 능력과 힘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하루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혼자 일을 하려하지 말고 “하느님을 두려워하여 참되게 살며 욕심이 없고 유능한 사람을 찾아내어” 협력자로 세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어떻게 했습니까? 출애굽기 18장 25절 말씀을 보면 “모세는 백성들 가운데 유능한 사람들 골라내어 백성의 지도자로 삼았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하느님을 떠보고 말았습니다.

모세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참되게 살며 옥심이 없는 사람보다는 유능한 사람을 택했습니다. 결국 모세는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맙니다. 사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이게 우리 인간을 불행하게하는 뿌리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배웠습니다. 난사람 보다는 든 사람이 되고, 든 사람보다는 된 사람이 되야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된 사람, 든 사람은 바보처럼 보이고, 오직 난사람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난사람을 못 만들어서 날립니다. 배속에서부터 입시교육입니다. 그래서 불행한 것입니다.

애국가를 한번 불러보십시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어느 때 우리나라가 만세합니까? 경제 대국이 되야 합니까? 군사 대국이 되야합니까?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를 때 만세입니다. 이게 우리 조상들이 가르침입니다.

 

남보다 더 뛰어난 사람, 남이 갖지 않은 것을 소유해야 하는 그 순간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릴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마음이 우리를 얼마나 탐욕스럽게 하고, 분노하게 하고, 어리석게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모든 욕심과 분쟁과 싸움이 여기서 생겨나고, 자신이 얼마나 죄 속에서 헤매고 있는지 모르게 하는 것도 바로 이런 마음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남보다 더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까? 저는 남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주신 은총에 대하여 감사하고, 어떤 순간이 와도 주님을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능력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무식한 베드로도 좋습니다. 똑똑한 바울로도 좋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좋습니다. 주님은 차별이 없으십니다. 다만 겸손하게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하느님의 아들이 되어 아버지께 영광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한 달란트가 되었던 두 달란트가 되었던, 다섯 달란트가 되었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달란트를 어떻게 유용하게 쓸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탑 위에서 떨어지는 묘기를 부릴 필요가 없습니다. 없어도 됩니다. 물론 김연하처럼 필요하다면 해야지요. 그것이 모든 사람을 위해 유익하다면 해야지요. 그리고 그 일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해야지요. 그러나 이렇게 해야 하느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두어야 합니다.

주님은 한 번도 자신의 능력 과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을 일을 다 하여 세상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요한17:3)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하신 일은 오직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하심으로 유혹을 이겨 내셨습니다.

 

셋째,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사탄은 예수를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며” 라고 했습니다. 왜 화려한 세상을 보여주었을까요? 아담에게 한 것처럼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탐욕을 이끌어 내려는 것입니다.

데레사 수녀님은 “이 세상은 우리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라고 했습니다. 탐욕에 사로잡혀 바로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탐욕이 뭡니까? 한문을 보면 “탐” 자는 화폐를 거머쥐는 모습입니다. 때문에 청빈의 반대는 부가 아니라 탐욕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청빈의 빈자는 화폐를 나누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말합니다. “나에게 절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라고 했습니다. 첫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욕심 앞에서 허물어졌습니까? 이런 욕심 앞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비록 그 사람이 기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주님은 탐욕을 부추기는 사탄을 향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탐욕의 불을 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느님의 뜻인지를 묻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미국의 영적 지도자인 존 메카더 목사는 조용기 목사의 배임 및 탈세, 그리고 사랑의 교회 사태를 보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 미국은 기독교의 가치를 잃었다. 그걸 잃는 데 200년이 걸린 셈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 과정을 밟기도 전에 갑자기 끝난 듯하다.”

 

탐욕 앞에서 끝없이 추락하는 교회를 보면서 통탄하고 있습니다. 어디 교회뿐이겠습니까?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습니다. 사실 이 유혹 앞에 쓰러지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이기적인 탐욕의 유혹을 벗어나는 길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일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믿는 사람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라”고 말입니다. 이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지를 분간해서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야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사순대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유혹을 이기셨던 주님처럼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고 진리의 광야로 나가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