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유혹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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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 그 뒤에 예수께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 사십 주야를 단식하시고 나서 몹시 시장하셨을 때에
  • 유혹하는 자가 와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 예수께서는 “성서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하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 그러자 악마는 예수를 거룩한 도시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 보시오. 성서에, ‘하느님이 천사들을 시켜 너를 시중들게 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지 않았소?” 하고 말하였다.
  • 예수께서는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는 말씀도 성서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 악마는 다시 아주 높은 산으로 예수를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며
  • “당신이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 그러자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시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 마침내 악마는 물러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들었다.

마태 4,1-11

예수님은 광야에서 유혹을 받았습니다. 유대인은 예로부터 광야를 악마가 사는 땅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악마와 만나기 위해 광야로 간 겁니다. 악마는 세 가지로 유혹을 합니다. 돈을 빵으로 만들어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라, 나에게 절을 해라. 모두 세 가지 유혹입니다. 같은 내용이 마르코복음에도 나오지만 훨씬 간단합니다. 그저 광야로 나가서 유혹을 받았다는 게 전부입니다, 아니, 40일 동안 유혹을 받았다고 하는데(마르 1,12-13), 40이란 유대인들에게는 ‘충분한 시간’을 뜻합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악마의 유혹에 제대로 걸려들었다는 것입니다.

마르코복음과 마태오복음을 비교하면 양이 많이 늘어났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 마르코복음 외에도 마태오가 따로 입수한 자료가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마르코복음의 유혹사화를 바탕으로 확장을 한 겁니다. 또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루가복음에도 같은 유혹사화가 나온다는 사실입니다(4,1-13). 그런데 양쪽을 비교하면 중요한 차이점이 눈에 띕니다.

마태오복음과 루가복음에 나오는 악마의 유혹 순서를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우선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유혹은 같습니다. 그러나 다음 두 가지의 순서는 다릅니다.  마태오와 두 번째⋅세 번째 유혹의 자리가 바뀌어 있습니다. 과연 무슨 뜻이 있을까요?

먼저 두 복음서작가가 물려받는 전승에서 순서가 달랐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보다는 복음서작가들이 의식적으로 그런 순서를 잡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빵의 유혹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를 건드립니다. 사흘 굶으면 누구라도 도둑질을 한다지 않습니까? ‘세상의 모든 것’은 부와 권력에 대한 욕심입니다. 그리고 ‘뛰어내려라.’는 명예욕을 가리킵니다. 천사들이 보호해주는 지 알아보자는 말은 바로 당신을 그렇게 아끼는지 ‘하느님을 한번 시험해보자’는 뜻입니다.        

마태오는 예수님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을 유혹을 권력과 부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마태오의 개인적인 판단이며 또한 그의 인간이해기도 합니다. 빵과 권력과 명예, 셋 중에 어느 것이 가장 피하기 힘든 유혹입니까? 우리에게 던져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