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김영호박사 칼럼 이웃 사랑은 어디에?

이웃 사랑은 어디에?

483
0
공유

어떤 사람이 예수를 찾아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지요.
어떤 사람이 서울에서 인천으로 내려 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 놓고 갔다. 마침 한 목사가 바로 그 길로 내려 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또 장로 한 사람도 거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타종교인 한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소독약과 치료약을 바르고 붕대로 싸매어 주고는 택시를 불러 태워 가까운 병원으로 데려가서 보살펴 주었다. 다음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병원 의사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오는 길에 갚아 드리겠소” 하며 부탁하고 떠났다.
자,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누가 10:30-36)


“누가 나의 이웃인가?” 라는 사람들의 물음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누가 그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는가?” 하는 또 다른 물음이었습니다.
“이웃”이라는 말을 국어 사전에서 찾아 보면 “아주 가까이 있는 사람”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와 아주 가까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고 묻는 것이 우리들의 물음인 셈이지요. 이 물음 가운데 숨겨져 있는 뜻은 “나와 아주 가까이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이웃을 사랑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답니다”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사람과 아주 가까이 있는 사람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인가?” 하고 예수께서 물으신 뜻은 “그 사람은 아주 가까이 있어 줄 사람이 필요하단다. 그러니 바로 네가 그 사람의 이웃이 되어 사랑해 줄 수 있겠니?” 하는 것이랍니다.


이웃사랑의 문제는 “남”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나”에 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나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이웃들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나는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의 이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남이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도록 이웃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도록 이웃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이웃사랑은 남을 위해서 하는 사랑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남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깡통을 내 밀며 동전 한 푼의 동냥을 구하는 걸인을 보며, 이 사람이 나의 구제의 손길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 하고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의 구걸의 손길이 바로 내가 구원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 하고 물어 오고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예수의 가르침입니까? 내가 이웃의 구원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 나의 구원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이 가르침 말입니다.


여러분은 앞에서 들려 주었던 이야기 가운데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타종교인이었지요? 여러분의 대답을 들은 예수께서는 무엇이라고 다시 말했겠습니까?
옳은 대답이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살 수 있다. (누가 10:28)
너는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 (마가 12:34)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누가 10:37)


이웃이 나의 구원을 위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를 아시나요?
예전에 부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다. 그 집 대문간에는 사람들이 들어다 놓은 나사로라는 거지가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앉아 그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려고 했다. 더구나 개들까지도 몰려 와서 그의 종기를 핥았다. 얼마 뒤에 그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었고 부자는 죽어서 땅에 묻히게 되었다. 부자는 죽음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다가 눈을 들어 보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브라함이 나사로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소리를 질러 “저를 불쌍히 보시고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제 혀를 축이게 해 주십시오. 저는 이 불꽃 속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고 애원하자, 아브라함은 “얘 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온갖 복을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불행이란 불행을 다 겪지 않았느냐? 그래서 지금 그는 여기에서 위안을 받고 너는 거기에서 고통을 받는 것이다” 고 대답하였다. (누가 16: 19-25)


이 부자는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해 곁에 아주 가까이 와 있는 이웃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만 알았더라면 거지 나사로의 고통을 자기의 것으로 함께 나누어 가져, 고통 당한 자들이 위로 받는 그 곳,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들어 가기 위해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