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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 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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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정경


그리스도교 교회는 그리스어를 쓰는 유대인들로부터 성서를 받았으며, 초기 개종자의 대다수를 이 헬레니즘 세계에서 찾았다.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어 성서(70인역)가 그래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공식적인 성서가 되었으며, 신약 성서에 압도적 다수를 이루고 있는 히브리 성서 인용들은 바로 이 70인역에서 따온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정경 안에 있는 외경들의 근원이 어떻든지간에, 이 외경들은 그리스도교 성서의 일부가 되었으며, 그러나 이 외경들의 정확한 정경적 지위에 대하여는 이견이 많았다. 신약 성서에서 이 외경들을 직접 인용한 곳은 없지만, 때때로 그 외경들을 알고 있었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사도적 교부들(1세기 말부터 2세기 초)에게는 이 문헌들이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그러나 멜리토(2세기 소아시아 사디스 주교)가 작성한 구약 성서 목록에는 그리스어 성서에서 추가된 문서들(외경)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오리겐(약 185-254년)은 구약 정경을 엄밀하게 22권으로 제한하고 있다.


오리겐 때부터, 히브리어에 익숙해져 있는 교부들은, 최소한 이론적으로라도, 외경들을 구약에서 분리하는 한 편, 그 외경들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었다. 시리아 동부에서는 7세기까지도 교회가 히브리 정경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 집회서(시라의 아들 예수의 지혜)를 더하고, 역대기, 에즈라, 느헤미야를 제외한 히브리 성서를 사용하였다. 여기에 솔로몬의 지혜, 바룩, 예레미야의 편지, 다니엘 추가본 등이 합쳐지기도 하였다. 6세기 페시타(시리아 본)의 필사본은 암브로시안 사본으로 알려졌는데, 거기에는 마카베오 3, 4권과 에스드라 2, (때로는 4) 권, 요세푸스의 전쟁사 7권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프리카 교회의 초기 의회들(히뽀에서 393년, 카르타고에서 397, 419년)은 외경을 성서로 사용할 것을 긍정하였다. 4세기 그리스도교 정통 신학의 일인자인 아타나시우스는 “정경들”을 분리하여, 그리스도인들만 “읽는 책들”과,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 모두 거부한 “외경들”로부터 구별하였다. 표준 라틴어역을 준비하면서 성서신학자 제롬(347-419/420 경)은 “정경들”과 “교회의 문헌들”을 분리시켰는데, 교회의 문헌들(즉 외경 문서들)이란 영적 함양에 좋지만, 권위 있는 경전은 아닌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정반대의 견해인 어거스틴(354-430, 위대한 서방 신학자 중 하나)의 입장이 우세하여서, 라틴 불가타 역에는 이 문서들이 남아 있게 되었다. 작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6세기 초 로마 교회의 견해를 반영한 것으로 알려진 Decretum Gelasianum은 토비트, 유딧, 솔로몬의 지혜, 집회서, 마카베오 상 하를  성서에 포함시키고 있다.


중세기에 걸쳐, 외경은 로마 교회와 그리스 교회에서 전반적으로 성서로 인정되었으며, 이따금 이론상의 의혹이 제기되곤 하였다. 1333년 리라의 니콜라스(프랑스 프란세스칸 신학자)는 라틴 불가타와 “히브리 진리” 사이의 차이점을 논하였다. 그리스도교-유대교 간의 논쟁, 히브리어 연구에 대한 관심의 증대, 그리고 결정적으로 종교개혁이 그리스도교 정경에 대한 쟁점을 되살아나게 하였다. 개신교도들은 모든 책들의 정경적 지위를 부인하고, 오직 히브리 성서에 있는 책들만을 정경으로 인정하였다. 최초의 자국어 성서로서 의문시되는 문서들을 분리시킨 것은 야콥 판 리스펠트에 의한 네덜란드 역이다(안트베르프, 1526). 루터의 독일어 판 성서(1534)도 이같이 분리를 하고, 최초로 “외경”이라는 제목을 달았으며, 성경과 동등하게 여겨질 수 없지만 신앙에 유익하다고 주를 달아 놓았다.


개신교의 견해에 대하여, 로마 카톨릭 교회는 트렌트 의회(1546)에서, 라틴 불가타 전 권이 동등한 정경적 지위를 누린다고 교리적으로 확언하였다. 이 교리는 1870년의 바티칸 의회에서 다시 확증되었다. 그리스 교회에서는 예루살렘 의회(1672)에서 몇 외경들을 명백히 정경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19세기에 러시아 정교회 신학자들은 이 문헌들을 성경에서 제외시키는 데에 동의하였다.


영국 교회의 구약 정경사는 대개 제한하는 쪽에 가깝다. 위클리프 성서(14세기)가 외경을 포함하고 있지만, 서문에서 제롬의 판단을 받아들이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하였다. 영국 주교 마일즈 코버데일(1535)의 번역본은 처음으로 이 책들을 분리해 내면서도, 바룩을 예레미아서 다음에 집어 넣었다. 영국 교회 39개 조항(1562)의 제6조는 명백하게 이 책들이 교리를 형성하는 데에 가치가 없으며, 그렇지만 교훈적 가치가 있으며 읽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외경을 제외시킨 최초의 영어성경은 제네바 성서(1599)이다. 1611년의 제임스 흠정역(King James Version, 1611)은 이 책들을 구약과 신약 사이에 넣었다. 1615년에 대주교 조지 아봇은 외경 없이 성서를 발행하는 것을 금지하였으나, 1630년 이후에 간행된 흠정역들은 외경을 제본에서 빼어 버렸다. 1640년의 제네바 성서는 처음으로 영국 안에서 의도적으로 외경을 제외하고 출판하였으며, 이어 1642년의 흠정역도 그렇게 하였다. 1644년 영국의회에서는 이 책들의 공적 독서를 금지시켰으며, 3년 후 장로교에서 발표한 웨스터 민스터 고백은 정경에서 배제함을 선언하였다. 1827년의 ‘영국과 해외 성서 공회’는 외경을 포함한 성서는 인쇄하지도 배포하지도 않기로 결의하였다. 20세기 영국의 대부분 개신교 성서들은 의문이 가는 책들을 삭제하였거나, 다른 권으로 포함시켜 놓았으며, 예외적으로 도서관용에는, 구약과 신약 사이에 포함시켜 놓았다.

 

 

 

 

외경

(그리스어 apokryptein, “감추다”에서 왔으며), 성서 문헌 중에, 정경으로 받아들여진 것 밖의 작품들이다. 이 용어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높이 평가받다가, 이후 묵인되다가, 결국 배제된, 밀교적인 문서 뭉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넓은 의미에서 외경은 권위를 의심받는 문서들을 의미하게 되었다.


유대교-그리스도교 문헌 중 외경 저작들의 개념에 대해, 여러 수준의 의심이 제기되었다. 외경 그 자체는 정경 밖에 있는 것으로서,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여졌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신자들이 배울 가치는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이다. 위경(위서, pseudepigrapha)는 겉으론 성서의 인물이 쓴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들이다. 제2정경(deuterocanonial works)은 정경 안에 받아들여진 것들인데, 그렇다고 다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그리스어가 지중해권의 통용어로 쓰이던 때에, 구약 – 히브리 성서 – 은 대부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유대 학자들은 70인역(Septuagint) 성서를 만들었는데, 다양한 히브리 본문들과 아람어 단편들로 된 구약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성서는 많은 문서들을 담고 있었는데, 나중에 비-헬라적 유대 학자들이 얌니아에서 의회를 갖고(주후 90년), 이 성서가 진짜 히브리 정경 밖에 있다고 규정하였다. 탈무드는 이 책들을 Sefarim Hizonim (밖의 책들, Extraneous Books) 라고 떼어놓고 있다.


70인역은 성 제롬이 구약을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 성경(Vulgate Bible)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는데, 그는 이 책에 포함된 몇 외경들의 출처(신빙성)에 대해 의혹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제롬은 “비정경”이라는 의미에서 외경이란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다), 번복하여 대부분을 불가타에 포함시켰다. 1546년 4월 8일에, 트렌트 의회는 불가타 전권에 가깝게 정경을 선포하는데, 제외한 것은 마카베오 3권과 4권, 므나세의 기도, 시편 151편, 에스드라 상하, 동방의 그리스도교이며, 받아들인 것은 구약 외경 중에서 토비트, 유딧, 솔로몬의 지혜, 집회서(시락의 아들 예수의 지혜)였다.


그 밖에 로마 카톨릭에서만 정경인 것으로는, 바룩(예언자)서, 예레미야의 편지(대개 바룩의 6장에 들어있다), 마카베오 상하, 다니엘의 몇 이야기들(즉, 세 사람의 노래, 수산나, 벨과 용), 에스델서의 확장편 등이다.


구약 위경은 매우 많은데, 족장들과 사건들의 이야기들을 다루는데, 아담에서 즈가리아까지 수많은 성서의 인물들이 기록한 것으로 되어 있다. 가장 두드러진 저작들로는 이사야의 승천, 모세의 취임(승천?), 아담과 이브의 생활, 에녹 상하, 희년의 책,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열 두 족장들의 계약(유언?) 등이다.


신약 외경들은 모두 위경이며, 대부분 행전들, 복음서들, 서신들의 범주에 들어가며, 몇 몇은 묵시록과 지혜문학이다. 외경 행전들은 사도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성서 인물들의 삶과 연관되었다고 주장하고, 서신들과 복음서들과 다른 문서들은 이런 인물들이 쓴 것이라고 한다. 신비한 언어 체험에 관한 것과 밀교 예식을 묘사한 것들도 있다. 이런 대부분의 저작들은 나중에 이단으로 규정된 분파들에서 나온 것으로서,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영지주의이다. 그 중 어떤 것은 다양한 이단들을 반대하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어떤 것은 몇몇 성인들과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많은 여성들을 포함하여)의 삶을 대중화하려는 중립적인 노력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스도교 초기 10년간에는 아직 정통이 성립되지 않았으며, 다양한 분파와 파벌들이 이 어린 교회 안에서 주도권과 정통성을 위해 겨루고 있었다. 모두가 자신들의 문헌들을 통하여, 설교와 선교를 통하여, 신자들을 확보하려 하였다. 이런 배경 하에서, 사실상 모든 저작들이 자신의 신앙을 옹호하였는데, 나중에 이단이 된 것들은 폐기되고 파괴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외경들 말고도, 신약 안에는 제2정경(“후에 첨가된”) 것으로 알려진 저작들과 단편들이 포함되어 있다. 히브리서는 바울이 썼다고 하는데, 그는 이 책이 쓰여지기 전에 죽었다. 야고보서, 베드로 후서, 요한 이 삼, 유다서, 요한 묵시록 등이다. 마르코 16:9-20, 루가 22:43-44, 요한 7:53과 8:1-11의 단편들도 있다. 이것들은 로마 정경에 포함되어 있고, 동방 교회와 대부분의 개신교가 받아들이고 있다.


영지주의나 몬타니즘 같은 이단 운동들은 수많은 신약 외경들을 지어내었다. 이렇게 성서를 사칭하는 문서들의 존재는, 어리고 정통적인 그리스도교 교회의 정경화 과정에 큰 힘을 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