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말씀과 신앙나눔 정의의 느티니무 숲((분당교회 장요한 신부 말씀)

정의의 느티니무 숲((분당교회 장요한 신부 말씀)

343
0
공유

정의의 느티나무 숲

다가오는 시간이 우리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수도 있다면 어떨까요? 기쁨과 설레임과 두려움 등등 만감이 교차할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다가오는 그 날로 인해 오늘의 의미가 달라질 것입니다. 셍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약속의 의미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네가 올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4시가 되면 흥분해서 들뜨고 설렐거야. 그렇게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하지만 네가 아무 때나 오면 나는 언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르잖아. 의식이 필요하거든…” 사막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한 말입니다. 약속이 있으면 그 기다림의 시간, 준비의 시간에 이미 행복이 시작된다는 그 말에 많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또한 만남의 의식을 준비하는 정성과 관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은 정해진 시간이 없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이 없다는 것은 모든 시간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항상 오고 계시고 우리는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 오시는 그 날은 어둠 속에 빛이 밝혀지는 날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날입니다. 억눌린 사람, 굶주린 사람,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그 날이 해방의 날이요 애타게 기다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포로 생활에서 귀향하는 백성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새 날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이사 61:1-4) 이는 예수께서 가파르나움 회당에서 처음 사람들에게 읽은 대목이기도 합니다.(루가4:18) 이름 하여 메시야 취임사라고도 하는 이 선언에서는 ‘가난한 이들에게는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존엄성을 되찾고 자유로운 새로운 시대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 2000년 장긍선 신부님 작)


이사야 예언자는 ‘슬퍼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재를 뒤집어썼던 사람에게는 빛나는 관을, 침울한 마음에서 찬양이 울려 퍼지게 하라’면서 그들을 ‘정의의 느티나무 숲’이라 하였습니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성공회대학교 신영복 교수가 쓴 서화첩에 적혀있는 글귀입니다. 홀로 있는 나무는 외롭기도 하거니와 뜨거운 태양과 온갖 비바람을 혼자 맞아야 합니다. 나무와 나무들이 어울려 숲이 이루어질 때 서로 의지하기도 하고 냇물을 흐르게 할 수도 있고 새들도 깃들입니다. 더불어 사는 숲이 될 때 산을 산답게 지켜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정의의 느티나무 숲은 바로 그런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정의란 혼자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들이 더불어서 숲처럼 공동체를 이룰 때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소위 ‘갑질’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갑을 관계라는 위계질서 속에서 약자에게 가하는 강자의 횡포를 말합니다. 작년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 상무가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 서빙을 하는 승무원에게 기내식을 꼬투리 잡아서 온갖 진상을 떨더니 라면을 끓여내라고 강요하는 가운데 책자를 집어 던져 이마에 상처를 입힌 사건이 있었습니다. 기내에서 승무원에 대한 폭행은 테러에 준하는 행동으로 매우 엄격하게 통제된다고들 합니다. 결국 이 상무는 미국 연방경찰에 의해 미국 입국이 거부되고 한국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이 상무가 미국에 가서 업무를 처리하지 못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항공사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바로 이 항공사의 최고경영자의 딸이 땅콩 서비스가 잘못되었다고 승무원을 무릎 꿇리고 욕설을 퍼부은 뒤 활주로까지 간 비행기를 되돌려 결국 사무장을 쫓아낸 사건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위 ‘갑질’은 사실 우리 생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태입니다. 얼마 전에는 폭언에 시달리던 아파트 경비원이 자살을 하는가 하면, 전화 안내 서비스를 하는 종사원들에게 쏟아지는 온갖 횡포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교만과 비행이라고만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의와 원칙과 예의가 실종된 우리 사회의 단면이기 때문입니다. 힘이 곧 정의가 되는 야만적인 사회로 뒷걸음질 쳤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공동체의 새로운 시대는 바로 정의가 실현되는 그 날부터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정의의 느티나무 숲’이 되는 그 때를 위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2월 14 대림 3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