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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사람의 죽음(분당교회 장기용요한 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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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사람의 죽음

부는 바람에 나뭇잎들이 비 오 듯 떨어집니다. 가을의 깊은 맛은 낙엽 떨어지는 늦가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초록으로 왕성하던 잎들이 모진 태풍도 견디어 냈는데 살짝 부는 바람에도 속절없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역시 오묘한 창조의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빛나는 젊음도 세월이 지나면 늙고 병들고 결국에는 원점으로 회귀된다는 하늘의 섭리를 낙엽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늦가을은 사색의 계절, 성찰의 계절이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함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살아갑니다. 언젠가는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사라져야만 하고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고 이 세상 것들이 전부인 양 탐욕과 오만에 휩싸여 삽니다. 그래서 이 가을 우리는 다시금 ‘나는 어디쯤 왔는가?’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올바른 것인가?’ ‘저 영원한 나라에 무엇을 가지고 갈 수 있겠는가?’를 생각합니다.

11월 1일은 모든 성인의 날(All Saints Day)이고, 11월 2일은 모든 별세자의 날(All Souls Day)입니다. 산 이와 죽은 이의 상통함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우리 교회는 이 날들을 통해 죽은 영혼들의 영원한 안식과 살아 있는 우리들의 삶에 주님의 영원한 생명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7세기 경 로마에 있던 판테온 신전을 교회가 성당으로 개조하여 사용하려 했습니다. 이 무렵 로마의 어떤 지하묘지에서 수없이 많은 순교자들의 유골을 발견하였는데 이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었으므로 교황은 ‘여러 성인들’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9세기경부터는 11월 1일을 축일로 정하여 그 이름을 모르는 성인들과 함께, 교회사에 있어서 이름 없이 순교한 모든 성도들과 순교자들을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919년부터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11월 2일에 별세 신자들을 기념하는 관습이 확대되어 별세 신자를 기념하는 축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순교자들, 그리고 별세 신자들을 기억하면서 죄 없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생각합니다. 역사에서는 그리스도교 순교자뿐만 아니라 얼마나 죄 없이 죽은 사람들이 많았던가… 성서에서도 보았듯이 모세나 예수가 탄생할 때 죽어야만 했던 수많은 어린이들… 전쟁과 전염병, 자연 재해 때문에 죽어야 했던 사람들… 양민 학살로, 인종청소로,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수고하다 죽은 사람들… 생각해보면 볼수록 죄 없이 죽어야만 했던 사람들은 끝이 없습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죄 많은 사람들이 심판받아 죽은 경우보다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당한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올해는 특히 세월호 사건 때문에 죄 없이 죽은 사람들을 더욱 더 간절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전 국민이 생중계로 304명이 수장되는 장면을 지켜보는 순간 속수무책이었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를 충격과 허탈의 세월을 보내게 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아프고 슬픈 것은 이 비극에 대해서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젠 제발 잊자고 하는 사람들이 유가족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인간다운 일인지, 최소한의 도덕과 양심에 비추어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의심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얼마나 잔인한 사회, 눈먼 사회인지를 보여주는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기억의 종교입니다. 특히나 죄 없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한 분을 기억하는 신앙입니다. 그 한 분이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모든 인류에게 희망을 주고, 정의가 반드시 불의를 이기고야 만다는 진리를 보여주었습니다. 어둠의 권세가 아무리 강하게 지배해도 결국 작은 불꽃 하나를 이기지 못하듯이 생명과 평화의 진리는 마침내 영원히 승리한다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고통 받고 슬퍼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천국의 복락을 약속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들이 결국 천국의 주인이 된다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의롭게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단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죄 없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려야만 하는 현실이 바뀌도록 해야 되는 신앙적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죄 없이 죽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위로와 평안이 있기를 빕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1월 2 연중 31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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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사람의 죽음

부는 바람에 나뭇잎들이 비 오 듯 떨어집니다. 가을의 깊은 맛은 낙엽 떨어지는 늦가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초록으로 왕성하던 잎들이 모진 태풍도 견디어 냈는데 살짝 부는 바람에도 속절없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역시 오묘한 창조의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빛나는 젊음도 세월이 지나면 늙고 병들고 결국에는 원점으로 회귀된다는 하늘의 섭리를 낙엽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늦가을은 사색의 계절, 성찰의 계절이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함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살아갑니다. 언젠가는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사라져야만 하고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고 이 세상 것들이 전부인 양 탐욕과 오만에 휩싸여 삽니다. 그래서 이 가을 우리는 다시금 ‘나는 어디쯤 왔는가?’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올바른 것인가?’ ‘저 영원한 나라에 무엇을 가지고 갈 수 있겠는가?’를 생각합니다.

11월 1일은 모든 성인의 날(All Saints Day)이고, 11월 2일은 모든 별세자의 날(All Souls Day)입니다. 산 이와 죽은 이의 상통함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우리 교회는 이 날들을 통해 죽은 영혼들의 영원한 안식과 살아 있는 우리들의 삶에 주님의 영원한 생명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7세기 경 로마에 있던 판테온 신전을 교회가 성당으로 개조하여 사용하려 했습니다. 이 무렵 로마의 어떤 지하묘지에서 수없이 많은 순교자들의 유골을 발견하였는데 이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었으므로 교황은 ‘여러 성인들’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9세기경부터는 11월 1일을 축일로 정하여 그 이름을 모르는 성인들과 함께, 교회사에 있어서 이름 없이 순교한 모든 성도들과 순교자들을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919년부터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11월 2일에 별세 신자들을 기념하는 관습이 확대되어 별세 신자를 기념하는 축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순교자들, 그리고 별세 신자들을 기억하면서 죄 없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생각합니다. 역사에서는 그리스도교 순교자뿐만 아니라 얼마나 죄 없이 죽은 사람들이 많았던가… 성서에서도 보았듯이 모세나 예수가 탄생할 때 죽어야만 했던 수많은 어린이들… 전쟁과 전염병, 자연 재해 때문에 죽어야 했던 사람들… 양민 학살로, 인종청소로,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수고하다 죽은 사람들… 생각해보면 볼수록 죄 없이 죽어야만 했던 사람들은 끝이 없습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죄 많은 사람들이 심판받아 죽은 경우보다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당한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올해는 특히 세월호 사건 때문에 죄 없이 죽은 사람들을 더욱 더 간절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전 국민이 생중계로 304명이 수장되는 장면을 지켜보는 순간 속수무책이었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를 충격과 허탈의 세월을 보내게 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아프고 슬픈 것은 이 비극에 대해서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젠 제발 잊자고 하는 사람들이 유가족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인간다운 일인지, 최소한의 도덕과 양심에 비추어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의심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얼마나 잔인한 사회, 눈먼 사회인지를 보여주는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기억의 종교입니다. 특히나 죄 없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한 분을 기억하는 신앙입니다. 그 한 분이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모든 인류에게 희망을 주고, 정의가 반드시 불의를 이기고야 만다는 진리를 보여주었습니다. 어둠의 권세가 아무리 강하게 지배해도 결국 작은 불꽃 하나를 이기지 못하듯이 생명과 평화의 진리는 마침내 영원히 승리한다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고통 받고 슬퍼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천국의 복락을 약속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들이 결국 천국의 주인이 된다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의롭게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단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죄 없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려야만 하는 현실이 바뀌도록 해야 되는 신앙적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죄 없이 죽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위로와 평안이 있기를 빕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1월 2 연중 31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