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주님 – 예수님의 부르심

주님 – 예수님의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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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 예수님의 부르심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주셨다.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말리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 때에 그는 각자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줄 것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여기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임금으로 오는 것을 볼 사람도 있다.”마태복음 16:13~28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여기는 지 궁금해서 제자들에게 명을 내렸습니다. 일종의 설문조사지요. 세 가지 답이 올라옵니다. 엘리야다, 예언자다, 세례자 요한이다. 예언자는 구약성서 시대에 지배 계층에 맞서 정의의 심판을 외친 이들이고, 엘리야는 살아서 하늘에 오른 위대한 예언자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엘리야가 하늘에 오르듯이 다시 와서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민간신앙이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 역시 종말심판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세 인물의 공통점은 바로 종말심판을 예언하는 ‘종말-묵시적인 예언자’라는 겁니다.

베드로의 견해는 좀 달랐습니다.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했습니다. 참으로 올바른 고백입니다. 베드로의 답은 그리스도인 최초의 신앙고백으로 자리 잡았고 멀게는 사도신경으로까지 발전됩니다. 더불어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까지 주어지지요. 로마의 베드로 성당에 가면 대성당 입구에 ‘천국의 문’이라는 거대한 철문이 있는데 거기에 실제로 열쇠구멍이 있습니다. 교황님이 베드로의 후예라는 사실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시입니다.

그런 베드로가 바로 뒤에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아, 물러가라’는 호된 꾸지람을 듣습니다. 이 부분을 처음 읽는 신자들은 아마 혼란에 빠질 겁니다. 도대체 뭐가 뭔지 헷갈리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마태오복음의 독자가 그 정도니 베드로 자신은 얼마나 종잡을 수 없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분입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자비를 베푸십니다. 차별 없는 인간사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 나선 사람들에게는 가차 없는 요구를 하십니다. 무엇인가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것이지요. 우리 주님은 그런 분입니다. 한 순간이라도 방심은 금물입니다. 베드로는 큰 실수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