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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제가 당신의 보리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되겠나이다.(연중 18주일, 최도미닉 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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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18주)/ 이사55:1-5, 로마9:1-5, 마태14:13-21

주여, 제가 당신의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되겠나이다.

 

나비효과란 기상학 이론이 있습니다. 나비 한 마리가 북경에서 날개를 살랑거리는 미세한 힘이 다음날 뉴욕에서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정확한 장기 일기예보가 불가능한 이유가 바로 이 나비효과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처음에는 그것이 아주 미미하지만 작고 사소한 변화가 나중에는 시스템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우리의 작은 삶의 변화들이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몰려들었습니다. 마침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은 군중들을 헤쳐 제각기 음식을 사먹도록 마을로 보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뜻밖에 말씀을 하십니다.

 

“마을로 보낼 것 없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주님은 어떻게 하시려고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이게 어디 가능한 일입니까?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음식을 마련하려면 200데나리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습니다. 그런데 설령 그만한 돈이 있다 해도 여기는 외딴 곳이어서 음식을 살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지요.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일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로 모든 사람이 먹고도 남을 기적을 만드신 것입니다.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이것은 기적을 만드는 힘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기에 이런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일까요?

 

우선 그것은 나만 아는 좁은 마음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넓은 마음이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는 나를 포기한 마음이었습니다. 남을 위해 나를 포길 할 수 있는 마음, 넓은 마음입니다.

머크 머질은 가장 뛰어난 영적 지도자라고 합니다. 그가 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 밖에 없다”라는 책을 보면 이런 말을 합니다.

“자애로운 어머니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식을 보살필 수 있고, 또 그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보살핌을 줄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깨달은 사람은 내 자식에게 행한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은 사랑을 나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런 마음이 넓은 마음, 큰마음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찾아 수많은 사람들은 상처받은 영혼과 병든 육신을 치유 받기 위하여 모여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측은한 생각하셔서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끝난 것 아닙니까? 아마 제자들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더 넓은 곳을 보셨습니다. 바로 군중의 굶주린 모습까지 보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옛날에 비해 정말 좋아졌습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풍류를 좋아하는 끼를 물려받아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 자동차가 북미와 유럽을 강타하고, 삼성과 엘지는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좁은 마음입니다. 이런 성장에서 처진 곳, 그늘진 사람들의 배고품도 살필 수 있는 마음, 넓은 마음입니다. 저는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마음을 가져야하고, 이런 마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색시 감을 고를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지금 제가 저 우물가에서 물을 달라고 청하겠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물을 줄 뿐만 아니라 나귀에게도 물을 주는 여인이 있다면 그를 이삭을 아내감으로 고르겠습니다.”

바로 이게 넓은 마음, 큰마음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아니 누구나 좋아하지요. 예쁠까, 가문은 어떨까? 병은 있는지 없는지, 부자일까 가난할까? 이런 것을 먼저 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좋은 아니었습니다. 나그네만 목이 마른 것이 아니라 나귀도 목이마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을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처녀를 택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신심입니다. 하느님 마음입니다. 넓은 마음입니다.

 

흔히 신앙이란, 예수 잘 믿어서 천당 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 문제가 치유되고 해결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 문제만을 해결하려고 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것만을 생각하는 이런 좁은 마음은 우리의 마음을 어리석게 하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이 어리석어 지고, 왜 탐욕이 생기고 분노가 생길까요? 나만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눈을 밝히려면 “나”라는 욕심을 버리고 남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남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마음, 이게 큰 마음이요, 깨달음입니다. 그리고 이 깨달음에서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얼마 전 작고하신 정채봉 선생님이 쓴 “가을 산행”이란 글에서 아주 잔잔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산행을 하다 밤톨을 하나 주은 것입니다. 그 밤을 깨물었는데 벌레가 한 마리 나옵니다. 그 순간 깜짝 놀랐겠지요. 그런데 저자의 마음을 정말 놀랍습니다. “나도 놀랐지만 저 녀석은 더 놀란 표정이다.”

어쩌면 이렇게 예쁜 마음을 가졌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서로 이런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우리의 삶들을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마음이 키워가는 것, 바로 신앙의 길입니다.

 

둘째,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진리를 보고 기뻐하고, 감사하라 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을 보면 굶주리고 있는 사람은 무려 5천명이나 되었습니다. 그것도 남자만 오천 명이라면 그 숫자는 엄청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고작 물고기 2마리와 보리 빵 다섯 개뿐이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오천 명이 넘는 사람을 먹일 수 있겠습니까? 제자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니었습니다. 당신 앞에 바쳐진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비록 그것이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 불과하지만 이것은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나누고 사랑하는 일은 진리입니다. 이게 희망입니다. 주님은 나만을 생각하는 오천 개의 빵보다 이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공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무엇을 선택할 때 이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도를 먼저 생각했다.”

 

그렇습니다. 나만 생각하고, 내 이익만 챙기려는 오천보다 기꺼이 자신을 줄 수 있는 오병이어는 희망이었습니다.

 

기적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진리를 붙잡고 그것에 희망을 두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곧 희망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이런 희망이 되야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오병이어를 받아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기도에 살을 붙여 보겠습니다.

 

“아버지, 이런 제자들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내가 먹어야할 마지막 빵을 굶주린 나그네에게 주었던 사렙다의 여인처럼, 내가 먹어야할 이 빵을 기꺼이 내 앞에 가져온 제자들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이들이 희망입니다.

아버지, 이들이 아버지의 뜻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이 세상을 구원하고, 어떻게 이 세상을 치유하고, 어떻게 이 세상에 평화와 행복을 주실 것인지 이들이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가 먹어야할 일용할 양식을 굶주린 오천 명을 위해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이런 마음, 희망입니다. 굶주린 이 세상을 치유하고도 남을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셋째,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이 희망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없는 것을 가져다가 기적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제자들이 갖고 있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의 출발입니다.

 

오천 명이 먹는 기적은 오천 개의 빵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 것을 살 만큼 돈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오병이어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일을 푸는 열쇄는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5천개의 빵이 아니라 지금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입니다.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바로 이 작은 나눔이 내 안에서 일어났을 때 기적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인류의 기근을 해결할 힘이 없습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한명의 걸인에게 음식을 주고 도왔을 뿐입니다.”

한 사람을 도왔을 뿐인데, 이미 데레사 수녀는 굶주린 수억 명을 먹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나의 작은 용서가 서로를 용서하게 만듭니다. 나의 작은 화해가 이 땅의 화해와 통일을 만들어 냅니다. 나의 작은 나눔이 이 땅의 가난을 치유합니다. 이처럼 내가 먼저 하는 것이 힘입니다.

 

하늘나라는 누룩과 같습니다. 그것이 비록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것이지만 온 반죽을 부풀게 하는 것처럼, 우리의 작은 사랑이, 그 작은 선행이 교만과 욕심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 힘입니다. 서로 싸우고 미워하는 이 세상을 화해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입니다.

우리는 이 사회가 부패했고 잘못되었고 말합니다. 이것이 치유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누가 합니까? 바로 내가 해야합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되면 비록 나에게 득인 된다할지라도 그것을 포기하고 바른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우리의 작은 실천이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3%의 소금이 있기에 바다가 삽니다. 의인 열 명이 있었으면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소금과 의인 10명, 남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 자신이 소금이 될 때 바다가 살고, 내 자신이 의인이 될 때 나를 통해 이 세상이 바로 섭니다. 주님은 다른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바로 나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오병이어를 간직한 나를 들어 굶주리고 목말라하는 이 세상을 치유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기적을 만들어가는 공동체입니다. 치유를 만들어가는 공동체입니다. 그것이 개인이 되었던, 가정이 되었던, 아니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국가, 그리고 세계가 되었던 교회는 이들을 치유하고 구원하도록 파견 받은 곳입니다.

 

그런데 이 힘은 바로 우리가 바치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의 헌신에 있음을 기억해야합니다. 더 크고 넓게 볼 수 있는 마음, 나의 작은 헌신,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간직하며 살아가려는 나의 의지가 있을 때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역사가 나를 통해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여, 제가 당신의 오병이어가 되겠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