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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구경꾼이 아니라 추수할 일꾼이 필요합니다. (연중14주일 최도미닉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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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7(연중 14주) / 루가10:1-11,16-20, 이사66:10-14, 갈라6:1-6,


지금은 구경꾼이 아니라 추수할 일꾼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 영국과 미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정말 수많은 성당들을 보았습니다. 성당마다 얼마나 웅장하고 아름답던지 넋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저는 그저 성당을 보는 구경꾼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잠시 그 큰 성당을 보고 감상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제대 앞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 순간 내 자신이 더 이상 구경꾼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기도하는 순간 비로소 이 성당이 바로 내 성당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손길이 우리의 여정을 인도해주시고, 내 마음을 만져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구경꾼이 아니었구나.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구경꾼에 머물 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자신을 되살펴 보았습니다.

주님은 일흔 두 명의 제자를 뽑아 세상으로 보냅니다. 그런데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군이 적으니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자, 떠나라”

여러분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어떤 사람이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고, 그 나라를 선포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평화를 노래 할 수 있고, 그 평화를 줄 수 있을까요. 구경꾼이 아닙니다. 구경꾼은 절대로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일꾼을 원하십니다. 저는 우리 안중 교회 교인 모두가 일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은혜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구경꾼이 아니라 일꾼이 되야합니다. 왜냐하면 구경꾼은 아무것도 가질 수 없지만 일꾼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일꾼이 될 수 있나요?

일꾼은 자신이 해야 할 일과 그 때를 압니다.

주님은 추수할 것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이 많다는 것, 누가 압니까? 구경꾼은 모릅니다. 일꾼만이 압니다. 일꾼만이 자신이 일할 자리를 알고, 일할 때를 알고 그 일에 자신을 투신합니다.

일꾼이 이렇게 일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자신의 상황이 아니라 추수할 때에 자신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안중교회가 지금이야 말고 추수할 때라고 느낍니다. 저만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까? 저는 제단 앞에 서서 여러분을 보면서 10년 후 우리 교회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10년 후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며 지금이야 말로 추수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앞으로 10년을 후를 위해 지금 추수할 것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지금 이곳에 낫을 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구경꾼이 아니라 일꾼입니다.

두 번째, 일꾼은 자기 생각대로 일을 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왜 다닐 때 돈주머니도 식량자루도 지니지 말며 누구와 인사하느라 가던 길을 멈추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자기 생각에 빠질까, 세상을 향해 옆길로 빠질까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해외여행을 해보니까 돈주머니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돈 앞에는 인격도, 인품도, 연령도 소용이 없습니다. 장유유서, 어림도 없습니다. 돈이 있으면 좋은 좌석에 앉을 수 있고, 좋은 대우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돈을 벌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먼 이국땅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반갑고 기쁜 일인지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서 일정을 수정한 채 그 사람과 만나 한참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필요한 돈주머니도 지니지 말고, 인사하느라 가던 길을 멈추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저는 주님께서 왜 돈주머니를 지니지 말고 인사하느라 멈추지 말라고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내 생각, 세상풍조에 빠질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여기에 빠지면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로는 주님의 일꾼이 되어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로마서 12장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십시오.”

본받지 말아야할 이 세상은 어떤 것일까요? 바로 돈주머니가 아닙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기웃 거리다가는 가던 길을 가지 못하고 멈추고 맙니다. 틀림없습니다. 여기에 걸려서 멈추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세상풍조, 이런 것을 버리지 않고는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은 일꾼이 아닙니다. 일꾼의 특징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일을 해야 합니다. 이처럼 세상 풍조를 따라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은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일꾼이 되려면 바울로의 말씀처럼 이런 것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어야 합니다.

저는 미국을 방문하면서 성장하는 교회와 그렇지 못한 교회의 모델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서구 교회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교회들이 있지만 텅 비어있습니다. 관광객들만 오갑니다. 왜 이렇게 되는 줄 아십니까?

자신이 살아 있는 교회는 죽습니다.

신자들이 얼마나 자신 만만한지, 프라이버시가 강해서, 목회자가 함부로 전화해도, 심방해도 안 됩니다. 예배도 한 여름에는 쉬어야 합니다. 모든 게 세상과 나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정말 성장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살아 있는 예배가 이루어지고 성도의 교제가 일어납니다. 어떤 교회일까요? 말씀 앞에 서서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려는 교회들입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이 죽습니다. 자신을 포기합니다. 이런 교회들은 비록 작은 교회들이었지만 수 천 명씩 모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들은 세상에 바른 가치관을 심기 위해 자신을 투신합니다. 주님의 사역을 위하여 자신의 옥합을 아낌없이 붓습니다.

저는 여기서 하나의 원리를 발견했습니다. 성장하는 교회는 성장할 수 있는 그릇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원리란 발로 말씀 앞에 자신이 죽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 안에서 어떤 역사가 일어날까요?

17절부터 19절 말씀입니다.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일흔 두 제자가 기쁨에 넘쳐 돌아 와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들까지 복종시켰습니다.’하고 아뢰었다. 예수께서는 ‘나는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내가 너희에게 뱀이나 전갈을 짓밟는 능력과 원수의 모든 힘을 꺾는 권세를 주었으니 이 세상에서 너희를 해칠 자는 하나도 없다.”

누가 복종합니까? 마귀를 복종합니다. 누가 떨어집니까? 사탄이 떨어집니다. 누가 짓밟힙니까? 뱀과 전갈이 짓밟힙니다.

독사가 돼지 앞에는 꼼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물어도 비계 때문에 독이 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뱀이나 전갈이 물어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그 독이 몸에 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을 험담해도, 누가 나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우리 안에는 없나요. 뱀이나 전갈이 물기는커녕 우리는 근처에만 가도 기절해 버리니 말입니다.

오늘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봅시다.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 잡아주어야 합니다.”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래서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십시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을 보십시오. 누가 나에게 잘못을 하면 화부터 내는 것은 아닙니까? 서로 남의 짐을 저주기는커녕 내 짐마저 남에게 떠넘기는 것은 아닙니까?

왜 이렇게 됩니까?

내가 일꾼임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인 행세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일꾼입니다. 입으로만 주님, 주님 하지 마십시오. 마음과 말과 행실로 주님이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주님, 지금 나는 힘이 듭니다. 지난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주님, 제가 어부로 지금까지 살아 왔지만 지금 주님이 하라고 하신 대로 하면 고기가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하라고 하시니 그물을 던지겠습니다.

자기의 현실, 자기의 고집을 버리고 그물을 던졌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베드로는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이게 일꾼입니다.

다음으로 일꾼은 역경을 헤쳐 갈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게 구경꾼과 다른 점입니다. 홍수나 가뭄이 닥쳤다고 합시다. 구경군은 도망가지요. 그러나 일꾼은 아닙니다. 물을 대고 골을 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어린 양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구나”

주님은 바다에 파도를 없애고 바람을 잠재워서 우리를 안전하게 만든 후에 보내시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람과 파도치는 곳으로 보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파도가 없게 해주세요. 바람이 없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저 사람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없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일꾼이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일꾼이 하는 기도는 바람 앞에도 파도 앞에도 흔들림 없는 믿음과 이것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를 지날 지라도 주님을 믿고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실패하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게 일꾼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일꾼은 협력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둘씩 짝지어 보내셨습니다. 싸우라고 둘씩 짝지어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협력하라고 둘씩 보내신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압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협력할 수 있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협력이 가능한가요.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짝발 게임을 해보셨을 겁니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일등을 하려고 어린이를 질질 끌고 갑니다. 그런데 슬기로운 사람은 어린에게 보폭을 맞추어 줍니다. 그러면서 하나 둘 하면 구호를 냅니다. 중간 쯤 가면 역전됩니다.

협력은 언제 내가 아니라 남에게 맞출 때 일어납니다. “너 나에게 맞춰”라고 하면 협력이 될 수가 없습니다. 서로 남에게 자신을 맞추어 주십시오. 남을 이해해 주고 배려하는 마음, 이 때 협력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분노와 저주를 버리십시오. 분노와 저주의 마음으로는 결코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가는 곳마다 평화를 빌어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환영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불벼락을 내리라고 합니까? 아닙니다. “당신네 동네에서 묻은 발의 먼지를 털어놓고 갑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가 다가 왔다는 것만은 알아 두십시오.”라고 일러 주라고 하셨습니다.

먼지, 아주 나쁜 감정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대할 때 느끼는 감정을 먼지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을 갖고 갑니까? 아닙니다. 떨어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안 애단 신부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번은 신앙 집회를 가기 위해 차를 몰고 가다가 무거운 짐을 이고 가는 한 할머니를 차에 태웠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가면서 백미러를 보니 짐을 그대로 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님은 “짐을 내려놓으시지요.” 했더니, “태워준 것도 고마운디”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꼭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더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하시는데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나요. 그래서 그 짐이 무거워 죽겠나요. 그렇다면 그 짐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증오하는 마음으로는 결코 평화를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일꾼이 되려면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당신이 나에게 어떤 아픔을 주었던, 나는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 마음에 임하기를 빕니다.”

안중교회에 왔을 때 한 교우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신부님, 안중교회는 과거에 200명이 넘게 출석했던 교회입니다. 그 교회의 모습을 회복시켜 주십시오.”

저도 우리 교회가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정말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귀가 복종하고, 사탄이 떨어지고, 뱀이나 전갈을 밟을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구경꾼이 아니라 일꾼이 되야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일꾼이 되라하십니다. 일꾼이 되라 하심은 삯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마귀를 복종시키고, 사탄을 떨어뜨리고, 뱀이나 전갈을 밟을 수 있게 하려함입니다. 병든 자를 났게 하고, 평화를 빌어주는 자로 세워주기 위함입니다. 이런 은혜를 삯으로 받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