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지도자 예수

지도자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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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예수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마르 12,35-37: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율사들이 그리스도는 다윗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다윗 자신이 성령에 힘입어 말하기를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도다.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 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하였습니다. 다윗 자신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아들이 되겠습니까?” 많은 군중이 그분의 말씀을 즐겁게 들었다.

자상한 대통령

이삼십년은 족히 되었을지 모른다. 김수환 추기경이 TV 인터뷰에 나와서 한 말이다. 추기경은 당시에도 상당한 유명인이었던 까닭에 전대의 대통령들과 수시로 만날 기회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인가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대통령 전용열차를 타고 지방 순시 길에 동행했다고 한다. 한참을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박 대통령이 열차에 동승한 철도청장을 호출하더란다. 그러더니 “조금 전에 지나온 역의 간판이 나뭇가지에 가려 잘 안보이니 당장 가지를 쳐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물론 청장은 득달같이 기관실로 달려가 연락을 취했을 테고 역 간판을 가렸던 가지는 가차 없이 잘려나갔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으쓱해진 표정으로 추기경을 돌아보며 한마디 던졌다. “제가 이 정도로 나라 살림을 세심하게 돌보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에 대해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들은 바 있다. 어느 해인가 남쪽에 큰 홍수가 나 어마 어마한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 그 때 박 대통령은 밤 새 잠 한 숨 안자고 청와대 창문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남쪽을 걱정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TV에 나와 전해준 청와대 인사는 박대통령이 그만큼 국민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라면서 대통령의 자상한 변모를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나의 어린 시절에는 박 대통령의 예화들이 세간에 많이 돌아다녔고 자연스럽게 존경심이 싹틀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각 학교에서 ‘박정희 대통령 어록’이라는 책을 비치할 정도였다.

차기 대통령 후보 이야기로 세상이 시끄럽다. 매번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마다 나라가 들썩였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언제나 새로운 느낌으로 대통령 선거를 맞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예수는 과연 어떤 지도자였을까?

예수는 어떤 지도자였나?

요즘 기준으로 지도자 예수를 평가할 때 과연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잠시 망설여진다. 예수의 의사결정 방법은 민주적 절차와 거리가 멀었고, 각 사람의 구구절절한 사정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대신 오직 하느님 나라를 위해 희생하라는 명령 일색이며, 모두 잘 먹고 잘 살게 만들어주기는커녕 세끼 밥도 제대로 해결해주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공중에 나는 새와 들에 핀 꽃을 보라’고까지 하였을까? 그런가하면 예수가 주변 사람의 충고에 귀 기울였다는 기록은 눈 씻고 찾아도 복음서에서 발견할 수 없으며,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차마 입에 담기 힘들 말조차 하였다. ‘저주 받아라’, ‘독사의 새끼’, ‘회칠한 무덤’은 기본이고 ‘눈을 빼 던져라’, ‘팔을 잘라 던져라’, ‘차라리 맷돌을 목에 걸고 물에 빠져 죽어라’ 등등. 어느 날인가 그래도 맘이 통했던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를 조용한 곳으로 데려가 ‘제발 곧 죽는다는 말 좀 고만하시라’고 부탁하자 ‘사탄아 물러가라’는 폭언마저 서슴지 않았다.

그러니 예수라고 하면, 한마디로,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지도자 상이 떠오른다. 그런 막무가내 지도자 예수가 삼년 동안이나 공동체를 이끌어간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다. 더구나 부활 승천 후 오히려 공동체성이 탄력을 받아 오늘날 세계 인구 절반이 예수를 명실공이 최고의 지도자로 섬기고 있으니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어느 날 예수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이 대답한 바에 따르면 항간에서 예수를 두고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언자’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마르 8,27-28). 또한 헤로데가 예수에 관해 수소문하자 ‘엘리야’니, ‘예언자’니 하는 보고가 올라왔고, 헤로데는 예수가 환생還生한 ‘세례자 요한’이라며 몹시 두려워했다는 보도가 나온다(마르 6,14-16). 그리고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자 사람들이 “이분은 갈릴래아에서 오신 예언자 예수요”라고 부른다(마태 21,10-11).

이 특이한 보도는 예수가 자신에 대해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어떤지 알기 원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겠다는 소신으로 똘똘 뭉친 지도자였지만 다른 한 편 주변 평가에도 세심한 관심을 기울인 분이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였지만 ‘세리와 죄인의 친구’이자 ‘먹보에 술꾼’이라는 평가도 받았다는 뜻이다.

평가할 수 없는 분

3년간의 공생애를 끝낼 즈음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입성 때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와 예수님을 환영했는데 그때 부르짖은 환호성이 마르 11,9-10에 나와 있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는 복되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

여기서 주목할 표현이 있는데 바로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이다. 예수님을 다윗의 현신인 메시아로 간주했고, 메시아란 마치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부국강병을 가져올 인물이었다. 곧,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칭송했다는 것이다. 사실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 수많은 인파를 끌고 대대적인 환영까지 받으며 입성했으니 정치적인 메시아로 간주될 만도 했다. 이렇게 사태가 다급하게 돌아가자 유대교의 종교지도자들이 직접 나서서 예수님에게 당신이 다윗의 후손 그리스도(메시아)가 맞는지 물어보았다. 그 대답이 마르 12,35-37에 실려 있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임을 부정하면서 자신을 오히려 다윗의 주님으로 선언한다. 한마디로 다윗조차 섬겨 모신 존재라는 것이다. 다윗의 찬양 시로 알려진 시편 110편 1절은 “야훼께서 나의 주님에게 요청하셨다.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내 오른 편에 앉아 있어라.’”이다. 이 구절은 신약성서에서도 낯설지 않아 사도 2,34; 1고린 15,25; 히브 1,13 등에 거론되어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는 더없이 뚜렷하다. 예수님을 평가하려는 무리에게 자신은 결코 평가될 수 없는 존재라고 하신 것이다.

인간은 어떤 사물이든지 정의가 안 된 채 놓아두면 불안해한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가지可知 범위 안에 사물을 끌어들여와 적절한 자리를 찾아주어야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는 노릇이다. 유대교 종교지도자들 역시 예수님을 미지의 인물로 놓아둘 순 없었다. 그런 까닭에 과거 역사에서 가능한 한 비슷한 인물을 찾아내 새 인물에게 적용시킴으로써 대상의 자리매김을 시도했다. 예수님의 경우 ‘다윗의 후손’, 곧 ‘메시아’로 정체 설정을 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당신이 다윗의 후손이요?” 하지만 예수는 그런 식의 정체 설정을 비웃다. 예수는 과거 역사를 통해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평가

김수환 추기경이 TV 인터뷰에서 덧붙인 말이 있다. 대통령이 자상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만일 이 소식이 전해지면 대한민국의 모든 기차역에서 가지를 쳐내느라 바쁠 테고 그로 인해 한동안 행정낭비가 있을까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쪽을 바라보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노심초사했던 모습과 대별되는 것으로 유신정국에서 수많은 민주 인사들에게 잔인한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다.

과연 어느 것이 대통령의 참 모습인가? 경제발전의 위업을 이루어낸 저돌적인 지도자가 참모습인가, 세세한 곳에도 정성을 기울인 따뜻한 감성의 지도자가 참 모습인가, 나라와 자신을 동일시했던 제왕적 지도가가 참 모습인가, 믿었던 부하의 손에 목숨을 빼앗긴 비운의 지도자가 참 모습인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가. 후대의 역사가 진정한 평가를 내려준다지만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헷갈리기만 할 뿐이다.

요즘 차기 대통령 선출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다. 그래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에 대해 설왕설래 많은 말들이 오가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은 지도자를 요구한다. 우선 민주적으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을 세세하게 살펴주며 놀랄만한 추진력으로 우리나라를 초강대국 대열에 하루빨리 올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고질병인 교육, 부동산, 양극화, 윤리적인 타락, 남북문제, 부정부패에 이르기까지 시원하고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면서 대통령 자신은 겸손과 자신감을 두루 갖추고 도덕적으로 한 치의 오점도 없어야 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황당무계한 기준이란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고 난 후 독자들은 예수가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었을 때 벌어질 일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란다. 그렇게 부탁하는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판단이 필요한 것 같다.

1. 모든 사람은 직접 또는 자유롭게 선출된 대표자를 통하여 자국의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자국에서 평등하게 공무를 담당할 권리를 가진다.
3. 국민의 의사는 통치 권력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이 의사는 정기적이고 진정한 선거에 의해 표명되어야 한다. 이 선거는 평등한 보통선거에 의한 것이어야 하고 비밀투표 또는 그것과 동등한 자유가 보장되는 투표절차에 의해 치러져야 한다.
(세계인권선언 21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