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묵상/영성/전례 최은식(도미닉) 신부의 아침묵상

최은식(도미닉) 신부의 아침묵상

722
0
공유

제목: 어디든지 따라가겠다고 (마태8:18-22)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하십니다.
예수를
따르고 싶다면 머리 둘 곳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머리 둘 곳, 집착이 아닐까요?

바로 이 집착이 우리가 가야할
길을 막는 큰 벽입니다.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빨리 버리면 버릴수록 좋습니다.
그저 지금,
‘예’라고
해야 할 것은 ‘예’라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 하면 족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집착 때문에
‘아니요’ 해야 할 것을 ‘예’라 하고,

‘예’라고 해야 할 것을 ‘아니요’ 라고 합니다.

편견과 편애,

그리고 내 편, 네 편도 다 집착에서 옵니다.
그리고 이 집착에서 온갖 갈등과 미움, 싸움이 일어납니다.

‘엔소니 드 멜로’ 신부님의 가르침이 생각납니다.
“참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이를 묶어놓지도 않거니와

사랑하는 이에게 묶이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자유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움,
이 자유로움이 삼위일체의 신비입니다.
일치는  집착하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이제
알겠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는 제자에게
왜 “죽은 자의 장례는 죽은 자에게맡겨두고
너는 나를
따라라”라고 하셨는지,

‘내 아버지’라고 하는 집착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한
아버지를 잃고 슬퍼하는 사람의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이기 때문에 치러야  하는 장례는 세상사람들이 하는
장례입니다.

이런 집착을 넘어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는 자와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는자와  함께
기뻐할 때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이란 집착을 버리고
무엇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자유 함이
주님과 함께 가야할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