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말씀과 신앙나눔 크게 버리고 크게 웃기(연중 6주일, 장기용요한 신부 말씀)

크게 버리고 크게 웃기(연중 6주일, 장기용요한 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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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버리고 크게 얻기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2월 16일 연중 6주일 설교 말씀)

짙은 안개가 호숫가를 가득 메운 어느 여름날. 나룻배 하나가 안개를 헤치며 가고 있습니다. 고요한 호수를 조용히 가르는데 안개 저 편에서 다른 배 한 척이 얼핏 보였습니다. 그래서 사공은 외쳤습니다. ‘여보시오. 게 누구요?’ 그러나 상대편 배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배는 점점 다가오는데 상대편 배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공은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여보시오! 배가 부딪히려 하지 않소?’ 그래도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래서 사공은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욕설을 내뱉으면서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배가 부딪히잖소?’라고 외칩니다. 그래도 대답 없는 배가 점점 가까이 오자 사공은 장대를 집어 들어 두들겨 패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온 배는 빈 배였습니다. 사공은 더 이상 욕설도 화도 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두들겨 패려고 하던 장대도 슬그머니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자는 이런 빈 배를 도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비워지면 미움도, 분노도, 집착도, 괴로움도 없습니다. 다만 순리대로 살아 갈 뿐. 집착하는 것이 있고 자기애가 강하면 그만큼 괴로움도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움과 시기, 질투가 일어나는 까닭은 남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안에서 나오는 것이 더 더럽다고 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교인들의 생활 윤리의 규범이자 영성생활의 목표입니다. 교회 근처도 가보지 않은 사람도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알고 있습니다. 특히 인도의 간디는 크리스천이 아니면서도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훌륭하나 크리스천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가 본 크리스천들은 산상수훈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고 오히려 탐욕과 폭력으로 인류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내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이혼하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 …. 너무나도 자명한 생활의 규범인 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가끔 목욕탕에서 등에는 용이나 범으로 현란하게 문신을 하고 어깨에는 ‘차카게 살자’라고 쓴 건장한 체구의 사나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과연 어떤 의미에서 착한 것인지… 구호로서나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는지…
어떤 윤리적 규범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문자로 적혀있는 규범만 준수하면 된다는 것은 규범의 노예가 될 뿐 윤리적인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우리의 저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영혼이 정화되지 않으면서 겉으로 규범을 지켰다는 것을 내세운다면 그것은 또 다른 과시욕과 우월주의라는 욕망을 낳게 됩니다. 율법주의의 맹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영혼을 정화시켜야 합니다.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감이나, 또는 다가오는 징벌을 피하려고 계율을 지켜야 한다면 그것은 억압입니다. 성내지 말라는 말씀 때문에 겉으로 성내지 않을 뿐 그 안에서는 꼭꼭 숨겨놓은 미움과 분노를 더욱 깊게 삭이고 있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 때문에 육체적으로 간음하지 않는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깊이 숨어있는 욕망이 정화되지 않으면 위선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산상수훈에 비추어서 나의 윤리생활을 성찰할 때 우리는 반드시 영성 수련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내 안을 비워야 기쁨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습니다.
산속의 옹달샘에서 물 한 그릇 떠서 마실 때 부유물이 뿌옇게 떠있습니다. 이를 버리고 다시 뜬다 한들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고요하게 놓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부유물이 가라앉고 맑은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우리 영성수련은 이와 같이 비우고 가라앉히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서 맑은 영혼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그리스도와 일치되는 경험을 합니다. 크게 버리면서 크게 얻습니다. 산상수훈은 그렇게 실행이 됩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