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김영호박사 칼럼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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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로마서 10:2-3)

어제 중국선교를 위해 떠나가는 이 글로리아 수녀님의 선교파견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강원도 횡성에 있는 도미니꼬 수녀회에 다녀 왔습니다. 오랜만에 카톨릭 미사에 참석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일어섰다가 앉았다가 무릎을 꿇었다 하며 진행되는 카톨릭의 매우 복잡한 미사가 예전에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별로 그렇지가 않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미사를 집전하는 카톨릭 사제의 몸짓은 상징적인 뜻은 있겠지만, 매번 미사 때마다 행하는 틀에 박힌 몸짓일 뿐이었으며, 개신교의 설교를 적용한 강론은 별로 감동을 주는 내용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사에 참여한 수녀님들과 신자들의 모습은 매우 진지한 모습을 보여 주었으며, 아름다운 선율의 카톨릭 찬미는 아직까지 신앙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나타내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개신교 예배도 카톨릭 미사 방식을 많이 배워서, 예배순서가 매우 복잡해진 편이지요. 복잡한 순서의 예배는 그 예배를 주관하는 목사의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고, 그로 인해 목사의 권위를 나타내는 수단은 되었으나, 카톨릭 미사의 신비감에는 이르지 못했으며, 오히려 평신도의 마음으로부터 드리는 예배의 감정을 방해했을 뿐이지요. 어느 교회에서는 심지어 가정예배의 순서와 말씀까지도 목사가 만들어서 제공하고 있다고 하니, 가정에서까지 평신도 스스로 예배를 드릴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는 세계에서 예배를 가장 많이 드리는 교회로 유명하답니다. 미국 기독교인들은 일주일에 단 한 번 예배를 드리지만,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주일예배, 주일저녁예배, 수요예배, 금요속회예배, 금요철야예배, 새벽예배 일곱 번, 거기다가 남여 선교회 월례예배까지 합하면, 일주일에 12-13번의 예배를 드리는데, 가정예배를 드리는 가정은 무려 20번 정도의 예배를 드리지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예배를 열심히 드리면서도, 예배란 무엇인지도 모르고 드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예배의 원형은 아주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디에서나 하나님께 돌을 모아 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서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세겜 (창세기 12:6), 벧엘 동편 (8), 브엘세바 (21:33), 모리아 산 (22:2) 등지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세 12:7-8)

그리고 이삭은 브엘세바 (26:25) 에서, 야곱은 벧엘 (28:19)에서 돌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야곱이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있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가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세 28:10-22)

예수께서는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의 예배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에 “이 산이다” 또는 “예루살렘이다” 하고 굳이 장소를 가리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것이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찌니라. (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나님께 예배 드려야 한다.)
(요한 4:19-24)

그러니까, 예배는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 여럿이 함께 모여 드리는 것이 원형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정성과 기도가 그 원형이라는 말입니다.
개신교 예배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예배시간의 절반을 차지하는 목사의 설교에 있는데, 아직도 개신교 신자들은 목사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신도들은 성경의 말씀보다 목사의 말씀을 더 따르는 자들이 되어 버렸지요.
예수께서는 전통적인 신앙방식을 따르던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 하는도다 하였느니라. (그들은 나를 헛되이 예배하며 사람의 계명을 하나님의 것인 양 가르친다.) (마태 15:7-9)
목사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도 없으며, 교회의 전통이 하나님의 계명이 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사의 설교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그것은 신자들의 신앙을 돕기 위한 나눔일 뿐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내가 여러분을 애타게 만나 보려는 것은 여러분과 함께 영적인 축복을 나눔으로써 여러분에게 힘을 북돋아 주려는 것입니다.) (로마 1:11)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우리가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지배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서 여러분과 함께 일할 따름입니다.) (고린도후 1:24)>
한국교회에는 매우 열심인 신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배참석에 열심이고, 기도생활에 열심이고, 전도에 열심이고, 헌금하는 일에 열심이고, 목사 섬기는 일에 열심이고, 성전건축에 열심이지요. 한국교회의 대부분의 교회의 주보 앞 페이지에는, “주일성수”, “십일조생활”, “배가전도”, “성전건축” 이라는 표어가 있답니다. 그 결과,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들이 한국에 있게 되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 열심들이 잘못된 지식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을 공동번역으로 읽어 봅시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열성만은 충분히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열성은 바른 지식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을 알지 못하고 제 나름의 방법을 세우려고 하면서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율법은 끝이 났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로마 10:2-4)

한국 개신교 교회의 특징은, “믿음만으로 구원 받는다” 는 교리를 철저히 따르는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언젠가 가나안농군학교에서 목사님들에게, “이제 기독교인들도 선한 일을 행하며 살아 봅시다” 고 했더니, 행위를 강조한다고 해서, 이단시비가 일어났던 적이 있었지요. 성경말씀 가운데서, 행하라고 한 말씀들을 철저하게 “믿음만” 이라는 교리로써 애써 거부하는 한국교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 “개인적인 믿음만”으로 구원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 개신교 교회의 진짜 특징은 “우리 교회의 교인이 되어야만 구원 받는다” 는 것을 가르치는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속한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한 행위들을 천국에서 상급 받는 행위로 가르쳐, 무언 중에 “행위만으로 구원 받는다” 고 가르치는 신율법주의적 교회가 되었지요. 구원 받게 하는 행위, 새로운 율법의 행위, 그것이 바로 “주일성수”, “십일조생활”, “배가전도”, “성전건축” 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돈 없으면 예수 믿기도 힘 든다” 는 말을 듣게 된 것이랍니다.
한국교회는 유대인들처럼 열심은 있었으나, 잘못된 지식을 따랐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할까요?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에베소 2:10)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 (그분의 백성, Jesus People) 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디도 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