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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나라, 참된 삶을 찾고 그 삶을 찾아가는 것입니다.(연중 17주일, 최도미닉 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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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17주)/ 열왕상3:5-13, 로마8:26-39, 마태13:31-22,44-52

하느님의 나라, 참된 삶을 찾고 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중국의 고전 중에 하나인 서유기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손오공 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소설을 보면 구도의 길이 어떤 길이지 잘 보여줍니다. 삼장법사를 빼고는 모두가 동물의 모습이다. 소, 돼지, 원숭이 등입니다. 이런 인간들이 구도의 길을 통해 참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게 신앙의 길입니다. 그런데 이 길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마귀와 싸워야 하고, 때로는 유혹의 손길로, 고난과 역경이란 장애를 넘어 결국 그 길을 완성하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왜, 교회를 다니고 있나요? 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저는 예수가 가신 그 길에서 보석처럼 아름답고 찬란한 빛을 보고, 그 빛을 따라 가는 삶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가신 발자취 속에서는 구원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평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축복이 담겨 있습니다. 망원경을 보면 보이지 않던 별들이 보이는 것처럼 예수를 통해서 보면 보석처럼 빛나는 진리가 보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이요, 축복의 길입니다.

 

그런데 이 길은 겨자씨처럼 작습니다.

그래서 하찮아 보이고, 그것을 선택하기가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결코 작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은 작아 보이지만 나중은 창대할 것입니다. 겨자씨만큼 작은 것이 싹이 트고 자라면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새들이 깃들게 됩니다. 나를 복되게 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을 줍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됩니다. 그리고 누룩이 반죽을 부풀게 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 아름다운 파장을 만들어갑니다.

 

때문에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사람은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예수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마치 보물을 찾고 진주를 찾듯이 찾아야 합니다.

나무의사로 나무를 보살피며 살아온 우종영 씨가 쓴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라는 책을 보면 이런 말을 합니다.

“이 땅에서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려는 그 마음 씀씀이에서 나는 내가 정말 알아야할 삶의 가치들을 배운다.”

 

작가는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모습에서, 나무들이 숲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참된 삶의 가치들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아름답고 참된 삶의 가치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나무처럼 살고 싶다”고 고백한 작가처럼 우리도 “예수처럼 살고 싶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에게서 무엇을 찾아야 할까요? 세상 부귀영화입니까? 이런 것들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풀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통해서 우리가 찾아야할 보물은 어떤 것일까요?

 

요한은 예수에게서 우리가 찾아야할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요한이 경험한 예수님은 사랑이셨습니다. 요한은 바로 사랑하라는 이 가르침에서 보물을 발견한 것입니다. 죄인까지도 사랑하신 사랑, 나를 사랑하고 내가 아는 사람만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이타적인 사랑을 본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주님처럼 사랑하려면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 나와 맞는 사람, 나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만을 사랑하는 세상 사랑과는 달리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을 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사랑은 우리가 찾아야할 진주요, 보석입니다. 그것은 보잘 것 없어 보입니다. 매우 작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영혼을 구원하고, 온 세상을 구원할 보석입니다. 우리를 부활의 영광으로 이끌어줄 보석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2-3절 말씀에서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지를 분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것, 내가 좋은 것을 찾는 다면 그것은 참된 믿음의 길이 아닙니다. 비록 내가 가기에는 좁고 힘든 길이지만 그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 선하고, 아름답고, 의로운 길이라면 그 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헨리 나웬이 쓴 “영성에의 길”이란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기 원한다면 연약함으로 점철된 예수님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분의 연약함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마음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로 나갈 수 있는 마음, 보석과 같은 삶의 가치는 주님이 보여주신 연약함, 바로 사랑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수까지 용서하시는 주님의 한없는 사랑, 제자들의 발을 씻겨드리는 겸손,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 순종,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을 치료해 주시고 그들의 이웃이 되어 주신 한없는 사랑, 이 모든 것이 주님을 통해서 우리가 찾아야한 보석입니다.

그다음으로 투신해야 합니다.

구술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선택해서, 나의 삶으로 살아가지 않는 한 그것은 나의 보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한 농부가 소작을 짓다가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농사짓는 일은 농부가 하는 일상적인 일입니다. 십자가의 진리는 교회에만 있는 진리는 아닙니다. 저는 땅을 보아도, 바다를 보아도, 나무를 보아도, 지금 피고 지는 꽃을 보아도 십자가의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생화와 조화를 보십시오. 저는 그 속에서 십자가의 진리를 발견합니다. 자신을 포기하고 줄 수 있는 꽃은 생화요, 자기를 주지 못하는 꽃은 조화요 죽어있는 꽃입니다. 마치 농부가 일상의 일을 하다가 보물을 발견하는 것처럼, 우리는 일상의 삶에서 십자가를 봅니다.

 

그런데 진주는 발견한 장사꾼은 어떤가요? 장사꾼은 보물을 찾는 전문가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처럼 말씀과 기도 가운데 십자가의 진리를 찾는 신앙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그가 농부가 되었던 진주를 찾던 장사꾼이 되었던 보물을 발견한 그들은 자기가 갖고 있던 전 재산을 팔아 밭을 사고, 진주를 샀습니다.

여기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보물을 얻기 위해 자기가 갖고 있는 재산을 팔아서 보물과 진주를 샀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살다보면 농부처럼 일상의 삶에서 참된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혹은 영화를 보다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무를 키우면서, 부엌에서 요리를 하면서, 빨래를 하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진리를 깨닫기도 합니다.

 

그리고 진주를 찾듯이, 때로는 기도하면서, 때로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설교를 듣다가 “아, 맞아 이거야”하고 깨달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찾았던지 중요한 것은 투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농부와 장사꾼이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보물과 진주를 산 것처럼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로 ‘헌신 없는 종교’를 꼽았습니다. 만약 종교가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 자비를 말하면서 자기 헌신과 희생이 없다면 그 종교는 말잔치를 위한 집단에 불과할 뿐 아니라,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가치관을 마음속에 간직했다 할지라도 자기 투신이 없으면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선택에는 반드시 그 결과와 심판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심판이 없다면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부가 그물을 끓어 올린 후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추리듯이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 좋은 것을 선택할 줄 알아야하고, 그 선택한 것을 살아가야 합니다.

 

솔로몬이 처음 왕이 되었을 때 그는 지혜를 선택할 줄 알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지혜를 얻었고 명예와 부귀도 함께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작 이 모든 것을 얻은 후에는 지혜를 버렸습니다. 그 후에 그는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다 허무한 것이라고, 명예도 권세도 부귀도 그리고 건강백세도 다 헛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건강, 출세, 부귀영화가 인생의 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생각들입니다.

 

그래서 고백합니다.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솔로몬은 전도서를 마감하며 자신의 인생을 통해 경험한 한 가지 원리를 결론으로 말합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한 모든 일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심지어 남몰래 한 일까지도 하느님께서 심판에 붙이신다는 사실을 명심하라”(전도11:14)는 가르침이었습니다.

 

하늘나라는 우연히 찾아오지 않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어들입니다. 팥을 심어놓고 콩이 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콩을 거두려면 콩을 심어야 합니다. 지혜를 선택하고 그 삶을 살았을 때는 놀라운 축복과 은혜 가운데 있었지만 그것을 버렸을 때는 모든 것이 허무한 것임을 고백했던 솔로몬의 고백을 기억해야 합니다.

 

필립보서 2장 9절을 보면 예수님을 이렇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1절 말씀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영광이 우연히 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심은 결과입니다.

6절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주시기까지 낮추셨다.”라고 했습니다.

아들의 영광은 우연히 온 것이 아닙니다. 아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얻은 것도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바울로는 1절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간직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간직하셨던 겸손, 자신을 송두리째 나누어주셨던 사랑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삶이 없이는 영광도 행복도 보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주실 것”(로마2:6)이라고, 선택이 없으면 결과도 없습니다. 선택이 없는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다 우상이요, 거짓입니다.

그렇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 뿌리는 자, 기뻐하며 거두어들이리라” (시편126:5)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눈물을 흘리며 선한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래야 선한 열매를 거두어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삶의 참된 가치를 어디에서 찾습니까? 우리는 예수에서 찾습니다. 그리고 그 보물을 얻기 위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투신합니다. 우리는 이 선택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과 우리를 진리와 생명으로, 축복된 삶으로 인도할 것을 확신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