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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나라의 초대(장기용 요한 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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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나라의 초대

봄이나 가을철의 주말이 되면 여러 장의 결혼식 청첩장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아 참석하러 다니는 모습이 잔치를 즐긴다기보다는 의무적으로 인사차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혼인잔치의 초대장을 마치 고지서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초청을 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행여 상대방에게 부담이 되면 기쁨보다는 금전적인 의미가 더 중요해지는 것 같은 서글픔이 앞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에 쫓겨서 결혼식을 하는 둥 마는 둥, 사진 찍기에 바쁘고 음식을 먹을 때도 번잡스럽고 혼란스러울 때는 이것이 잔치라기보다 요식행위에 가깝다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습니다.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은 결정해야 합니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바쁜 일이 있으면 가치의 우선순위에 따라 참석을 결정해야 합니다. 초대에 응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잔치가 소중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가는 것이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왕의 혼인 잔치에 비유했습니다. 왕의 혼인 잔치이니만큼 그 나라의 백성들은 경사로 알고 모두 기뻐해야 할 일일 것 같습니다. 그 왕의 잔치에 황소와 살진 짐승들을 잡고 준비를 해놓고 사람들을 초대했는데, 어떤 사람은 밭으로 가버리고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가고 또 어떤 사람은 종들을 붙잡아 때려 주기도 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잔치를 준비해 본 사람들은 그 과정이 얼마나 마음 졸이고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압니다. 혹시나 초대를 해놓고 준비가 소흘 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이고, 참석한 사람들 모두 흡족히 기쁨을 나누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왕 역시 잔치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사람들을 즐겁게 할 모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초대에 응하기는커녕 자기 일에만 바쁩니다. 그만큼 참석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심부름꾼을 때리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것은 왕에 대한 도전이고 적대시하는 일입니다.

1562-64년 베로네제의 유채화,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왕은 하느님이요 잔치 장소는 교회입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입니다. 하늘나라의 잔치에는 누구나 차별 없이 참석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눈부신 가을 햇살이 모든 이의 머리 위에 빛나듯이 모든 사람들에게 초대장은 보내졌습니다. 그러나 응답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관심의 방향이 하느님과 그의 나라가 아니라 자기중심으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나에게 이익이 되는 일부터 선택하고 행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 안에 들어 있는 죄의 씨앗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초대장을 받을 때는 건성으로 대답했을 것입니다. 예, 갈께요! 그러나 실제로는 하느님 나라를 위한 선택을 하기 보다는 자기를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잔치에 가서 즐기기만 하면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생각 하실 텐데요.

성경에서 초청받아 놓고 참석 안하는 사람, 심부름꾼을 때리고 죽인 사람은 유대인을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풀어서 그 살인자들을 잡아 죽이고 그들의 동네를 불살라 버렸다고 한 것은 아마도 60년경에 있었던 유대 전쟁으로 말미암아 초토화 된 상황을 두고 말 하는 것입니다.

또한 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라고 한 것은 이방인들을 무차별적으로 데려 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잔치 집은 손님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손님들 중에는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 있었는데 임금은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 내어 쫓습니다.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도록 합니다. 단지 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이런 벌을 내린다니 왕은 매우 속 좁은 사람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잔인하게도 느껴집니다.

여기서 예복이라는 것은 잔치에 초대받아 참석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에 따르고자 하는 순종의 의미입니다. 형식적인 예배에 참여했다고 해서 모두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 볼 수 있듯이 교회에는 선한 사람, 악한 사람 구분이 없이 공존합니다. 세례는 그런 사람 구분 없이 베풀 수 있습니다. 교회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공동체이기는 하지만 선택받는 이는 구분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갈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잔치에 기쁜 마음으로 응답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그 법칙에 순종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몸만 가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 잔치를 즐기고 왕을 기쁘게 할 예의와 가르침에 순종할 줄 알아야 합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0월 12 연중 28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