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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분당교회 장기용요한 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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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평소 우아하게 살던 사람도 급해지면 어쩔 수 없습니다. 화장실 급한 것은 위도 아래도 없고, 인종차별이 없으니까요. 다만 그런 상태를 미리 잘 대비를 한다거나 아니면 점잖은 상태로 교양 있게 해결할 수 있는 장소만 다니면 아무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닷없는 생리적 현상은 가끔 예상치 못하고 대비하지 못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게 합니다. 그럴 때면 화장실 가게만 해준다면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다는 맹세를 하느님께 하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그런데 그 급한 문제를 해결하고 나오면 그 맹세를 깨끗이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 인간의 심성인 모양입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꿔야 할 때,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해서 옷자락이라도 붙잡고 애원을 해야 할 때… 이러한 상황은 누구든지 몇 번은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일이 해결되어 지나고 난 뒤 얼마나 그 교훈을 값지게 마음에 새기고 사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하며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지…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예수께서는 형제가 죄를 짓거든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셨습니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말 간절하게 용서를 구하지만 아마도 그 용서가 끝나면 도돌이표대로 되돌아가듯이 죄를 짓는 것이 인간의 속성인 모양입니다. 7번씩 70번이나 용서를 하라니… 용서가 자비의 시작이므로, 용서 없이는 살아남을 인간이 없을 것이므로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 모양입니다. 그만큼 인간은 나약하고 죄 많은 존재입니다. 문제는 내가 그만큼 많이 용서받고 살고 있다는 것을 잊고 산다는 것이겠지요.

예수께서는 용서에 대해서 말씀하신 다음 이어서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무려 일만 달란트, 즉 노동자들이 일 년을 일해서 겨우 모아야 벌 수 있는 돈이 1 달란트인데 1만 달란트라면 엄청난 돈입니다. 이 돈을 탕감 받은 종이 겨우 100일 동안 벌 수 있는 돈 100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끌고 가서 그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둡니다. 이에 분개한 다른 동료들이 왕에게 찾아가서 탄원을 하였더니 왕은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하며 그 종을 형리에게 넘깁니다.

용서받기 전과 그 후에 전혀 다른 인간성을 나타내는 이 종의 모습에서 우리의 나약하고 선하지 못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이 벌어진지 어느덧 5개월이 되었습니다. 많이도 울었고, 가슴을 쥐어짜며 이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서 입이 열린 사람들이면 누구나 한마디씩 했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결코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 대한민국은 4월 16일 이전과 이후가 달라질 것이라 전망했습니다. 당시에는 누구나 다 한국 사회가 지나친 배금주의, 물신숭배 풍조와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이러한 참사를 당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적폐를 청산하고 국가가 개조되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출처 : http://media.daum.net/sewolferry/memorial/)


그러나 지금은 어떨까요? 세월호 유가족들은 지금도 거리에서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법리적인 어려움이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면 유가족들이 신뢰하는 방법의 대안도 마련되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제가 침체되고 민생이 어려운 것이 세월호 유가족 때문이라는 기가 막힌 논리로 저들의 간절한 호소가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진실규명이라는 것 하나만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요구한다느니, 자녀들 대학 특례입학, 공무원시험 가산점 등등 어디서 듣도 보지도 못한 특혜를 요구 한다고들 손가락질 합니다. 심지어는 어떤 단체에서 단식하는 사람들 앞에서 폭식을 하면서 조롱하고 손가락질하고 저주를 늘어놓습니다. 정말 어떤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서 인간이 태생적으로 갖는 윤리의식과 이웃의 아픔에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이 남아있는지를 의심하게 합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윤리 도덕적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 옆에서 끝까지 곁에 있어주는 것이 인간다운, 신앙인다운 도리가 될 것입니다.

‘망각은 노예의 길이요, 기억은 구원의 신비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9월 14 연중 24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