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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재생(사순 3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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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재생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3월 23일 사순 3주일 설교 말씀)

사람들이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차별’과 ‘냉대’는 영혼을 파괴하는 무서운 폭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둑이나 강도를 당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정신병에 걸리거나 자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차별과 냉대를 받으면 밤잠을 못 자면서 괴로워하며 좌절하고 극단적으로 인생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소위 ‘왕따’로 인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인간은 역시 관계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고 행복을 느끼도록 창조된 모양입니다.
사마리아는 일찍이 앗시리아의 침공으로 멸망하여 통치를 받았습니다. 앗시리아는 사마리아를 통치하면서 혼혈정책을 썼습니다.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스라엘다운 것이라 생각하는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극심히 차별했습니다. 차라리 짐승이 낫지 사람으로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빌론에서 귀환한 후 성전을 재건할 때에도 사마리아인들은 공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사마리아인으로 태어난 것만으로 혹독한 차별과 냉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벽을 넘어선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길을 가다가 우물가에서 쉬셨습니다. 무척이나 더운 한 낮이라 물을 길으러 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물을 길으러 나타났습니다. 이 여인은 다른 사람들이 더워서 다니지 않는 정오 무렵에 물을 길러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습니다. 동네 아낙들이 모여 숙덕이는 우물가에 이 여인은 눈길을 피해 다닐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성서에서 이 여인은 사마리아인이면서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자기 남편이 아니라 했습니다. 얼핏 보면 한마디로 부정한 여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글쎄요… 당시의 시대적 정황을 고려할 때 오히려 부정한 남자들에게 소박을 맞은 피해자가 아닐까요? 어쨌든 매우 불행한 여인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여인은 당시의 성차별까지 고려하면 이중 삼중으로 차별을 받는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 두초 Duccio 1255-1319)
바로 그런 여인에게 예수께서는 물을 좀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고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여인에게 말을 걸으셨던 것입니다. 그것도 실없는 말이 아닌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접근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을 놀림의 대상, 화풀이의 대상, 쾌락의 대상으로만 보았지 한 번도 도움의 손길을 지닌 이웃으로 보지 않았기에 이 여인은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의심하고 경계합니다. ‘당신은 유다인 남자이고 나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성서의 글자를 읽으면서도 퉁명스러운 어투가 들릴 정도의 이 여인의 반응은 매우 당연한 반응이라 보여 집니다. 수없이 배신당한 사람의 반응인 것입니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누군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무슨 의도를 가지고 나에게 접근을 하는 것인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줄을 모릅니다. 어떤 죄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시비를 걸면 나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남이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였다.’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이 여인에게 영생의 생수를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 여인이 세상에서 가장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영생의 생수일 것입니다. 이 여인의 인생에 맺힌 것이 무엇일까요? 이 여인의 영혼 깊은 곳에서 갈망하는 것은 바로 관계의 회복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간 대접받는 것과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예배의 장소도 상관없고,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이든 남성이든 차별의 벽을 넘어서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드리는 것이야말로 진실하게 예배드리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예배도 제대로 드릴 수 없었던 이 여인에게는 그야말로 복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암울한 과거에 얽매여 있던 이 여인은 기쁨의 발길로 세상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증언합니다. 자신의 과거를 씻어주고 새롭게 거듭나게 하신 분을 만났다고 말입니다.
그야말로 황홀한 재생입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