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후회할 땐 늦으리!

후회할 땐 늦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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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할 땐 늦으리!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한다.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루가 12,33-34)

사유교회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에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후 약 80년이 지나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 드디어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었다(392년). 그쯤 이르자 기나긴 세월 박해를 피해 지하무덤에 숨어서 예배를 드렸던 그리스도인들도 공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게 가능해졌다. 당시에 큰 문제는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거대한 교회건물을 짓는 것이었다. 도시에선 비교적 건축이 순조로웠는데 도시에 거주하는 그리스도인 재력가들이 자신의 재산을 기꺼이 헌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골지역의 사정은 달랐다. 지역의 열악한 경제력으로 스스로 큰 건물을 짓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사정을 감안해 교구에서는 도시의 재산가들에게 지역에 교회건물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했고, 대신 교회에서 걷히는 십일조와 사제 임명권을 재산가들에게 주었다. 이른바 ‘사유교회’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처음에는 물론 순수한 의미로 시작된 사업이었지만 그 폐단은 날로 심해졌다. 재산가들은 제멋대로 교회를 좌지우지했고 심지어 맘에 안 드는 사제에게 태형을 가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11-12세기에 들어서면서 ‘사유교회’는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고, 교회의 모든 재산권은 교구로 옮겨지게 된다. 그 때쯤 흥미로운 사건이 한 가지 있었는데, 제 2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사제 독신 규정이 성문법으로 선포된 것이었다(1139년). 당시 사제들은 결혼이 가능했으며 자식에게 교회 재산을 물려주는 작태가 비일비재했다. 그 같은 교회재산의 부자세습을 막기 위해선 성직록의 포기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했고 사제독신제가 그에 일조하게 된다. ‘사유교회’가 사제독신제의 등장 배경 중 하나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교의 창시자인 예수의 직제자들이 결혼을 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사제독신제는 교회 역사에 크나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소유 공동체

루가복음에는 여러 별명이 붙어있다. 여성의 복음, 이방인의 복음, 소외자의 복음, 죄인의 복음 등등이 있는데, 특히 가난한 자의 복음이라는 별명에 주목해보자. 복음서작가 루가의 또 다른 저서인 사도행전에는 1세기 교회 역사가 실려 있는데, 그는 예루살렘 모교회를 서술하면서 요약문을 세 군데 만들어 넣었다(2,42-47;4,32-35;5,12-16). 그 중 앞의 두 가지가 모교회의 경제 형태에 관한 것이며 셋 중에 둘을 할애할 정도로 모교회의 정체성을 부여하는데 경제적인 여건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우선 본문을 읽어보자.

2,42-47: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친교, 빵 나눔과 기도들에 전념하였다. 또한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게 되었으니 사도들을 통해 많은 기적과 표징이 일어났던 것이다.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각자 필요한 만큼 그것을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떼고 흥겹고 순순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들며 하느님을 찬양함으로써 온 백성에게 호감을 샀다. 주께서는 그 모임에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셨다.

4,32-35: 신도들의 무리는 한마음 한 정신이 되었으며 아무도 자기 재산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그들은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그들 모두에게 큰 은혜가 내렸다. 사실 그들 가운데 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 누구든지 밭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팔아서 매매한 값을 가져와 사도들의 발치에 놓았고, 사도들은 저마다 필요한 만큼 각자에게 나누어주었다.

위의 본문에서 눕혀 쓴 부분이 모교회의 경제 형태를 알려주는 구절들이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재산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재산의 공동소유를 지향한다. ‘사유재산의 포기’인 셈이다(2,44;4,32). 그 둘은 소유 재산을 팔아, 그 판값을 필요에 따라 공평하게 공동체 내로 다시 분배하는 형태이다. 이렇게 모인 돈은 모교회의 공동 재산이 되고 그 씀씀이를 관리하는 책임은 사도들에게 주어진다. 공동체의 필요에 따른 ‘사유재산의 매각’으로 볼 수 있다(2,45;4,34.35).

전자(사유재산의 포기)를 모교회의 경제 원칙이라고 한다면, 후자(사유재산의 매각)는 그 실천 율이요,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자발적으로 재산을 팔아 사도들에게 가져온 일이 먼저 있었다면, 전자는 후차적으로 이루어진 신학적인 의미부여가 될 것이다. 즉, 자기 재산을 팔아 선선히 사도들의 발 앞에 내어놓는 신도들의 모습을 보고 하느님이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을 변하게 만드신 놀라운 역사를 이렇게 표현했다는 뜻이다(“신도들의 무리는 한마음 한 정신이 되어…”). 아무튼 이렇게 모여진 돈을 바탕으로 초대교회는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는, 이른바 ‘소유공동체’를 이룩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모교회는 과연 어디에서 소유공동체 개념을 끌어왔을까? 보나마나 예수님이 삼년 공생활 동안 이끌었던 공동체의 생활상을 모델로 삼았을 텐데 사실 예수님 주변에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 돕는 이들로 넘쳐났다. 세리장 자캐오는 재산의 반을 헌납했고(루가 19,8) 최고회의 의원인 아리마태 사람 요셉은 기꺼이 자신의 무덤을 양보했고(루가 23,50-56), 여인들 역시 재산을 바쳐 예수님을 도왔다(루가 8,1-3). 아니, 예수님 자신도 부자 티가 줄줄 나는 이가 나타나면 전 재산을 팔아내라는 요구를 할 정도였다(루가 18,22). 모두 사유재산의 포기와 헌납을 배경으로 한 내용들인데, 말하자면 추종자들의 재정적인 결단에 힘입어 예수님의 생활공동체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물어보았다.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도 여행보따리도 신발도 없이 보냈을 때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 이에 대한 사도들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루가 22,35)

사유교회의 부활

요즘 한국 개신교 목사들의 수치스런 모습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글이 쓰인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개신교에서 널리 알려진 파행들을 꼽아보면 담임 목사직의 부자 세습(해당 목사는 이 말을 몹시 싫어한다), 한기총의 대표가 되려고 뿌린 표 매수 자금, TV에서 적나라하게 해부된 대형 교회 목사의 전횡, 그리고 재산을 차지하려고 원로목사 가족이 사분오열 되어 벌인 진흙탕 싸움까지,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각 교단의 총회장 선거를 할 때면 으레 뒷돈이 오가며,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급기야 제비뽑기로 총회장을 선출하는 교단마저 생겨났다. 한 때 ‘8당 7락’, 즉 8억 원 쓰면 총회장에 당선되고 7억 원 쓰면 떨어진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오고갔다. 하기는 큰 교단의 총회장이 되면 단 한 번의 설교사례비로 거액을 손에 쥐어주니 총회장 선거에 목숨을 걸만도 하다. 그리고 개신교 계통의 신문에 보면 목사들의 자격 시비가 끊이지 않아 ‘누구누구는 이단이다’라는 성명서 광고가 대종을 이룬다. 그리고 성명서들 사이로 가끔씩 ‘길목 좋은 곳, 교인 000명 보장’이라는 교회 판매 광고마저 눈에 띈다.

필자는 간혹 한국의 몇몇 목사들이 사명감을 지나치게 느껴 교회나 단체를 개인 소유로 착각하지나 않는가 하는 의심이 든다. 이를테면, 어느 어른 목사님이 ‘이 교회를 창립하고 오늘날의 모습으로 발전시킨 게 누군데 나에게 대드느냐? 예배당의 못 하나 창문 한 장이라도 내 손길 가지 않는 것이 있는 줄 아느냐?’라는 고함을 친다거나, 개신교 단체의 이사장 목사가 ‘이 단체를 30년간 맡아 이끌어 온 사람은 바로 나다. 너희들 모두 내가 뽑아서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었더니 이제 와서 나보고 물러나라는 말이냐?’며 호통을 치는 식이다.

아무튼 예나 이제나 그 놈의 소유욕이 문제다.

급사한 부자

예수님은 인간의 속성에 소유욕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 분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 속성의 본질까지 꿰뚫어 보신 분이라 수시로 재물에 대한 언급을 했다. 때로는 간단한 교훈 으로, 때로는 이야기가 있는 비유로, 때로는 재기 넘치는 대화를 통해 우리에게 인간의 소유욕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려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충격적인 말을 많이 들었다 한들 인간의 소유욕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추측하건데 사유재산을 포기하고 수도회에 들어간 수도자들도 소유욕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에 대해 관대한 해석을 내렸는데, 소유욕의 포기라는 불가능한 목표를 제시한 게 아니라 차라리 재물을 하늘에 쌓기를 권장했다(루가 12,33-34).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를 어디에 설정할까 하는 질문에 초월적인 차원에서 삶의 의미를 제시한 것이다. 즉, 삶의 유한성을 감안해 그 이상의 초월적인 가치를 추구한 셈인데, 좀 더 편하게 말해 죽음을 충분한 인식한 상태에서 살아 있을 때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죽음으로 인생이 무자비하게 끝나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되는 순간이다.

칼 맑스 등의 근대 유물론자들은 삶의 의미를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집단적 차원에서 찾았다. 이기적인 개인으로 머물지 않고 역사에 참여해 자유를 획득할 때만 삶은 의미 있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최병권 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2003, 69쪽)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맑스는 초기 교회에서 공산주의의 모델을 찾아낸 바 있다. 하지만 굳이 맑스의 견해를 빌리지 않더라도 예수님이 이룩해낸 생활공동체가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창출해내는 공간이었음을 분명한 사실이다.

어느 부자에게는 세상의 삶이 너무나 중요했기에 어마어마한 창고를 지어 풍족한 내일을 준비해 두었다. 그러나 그 부자는 창고가 완성된 날 밤에 처참하게 숨을 거두고 말았다.(루가 12,16-21) 내일에 치중하느라 오늘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가진 것을 팔아 오늘 자선을 베풀었다면 부자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해두는 셈’이라는 사실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은 탓이었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오늘따라 예수님의 말씀이 유난히 귀에 가까이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