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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교회를 바로 세우라(대림 3주일, 최도미닉 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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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3주일)/이사35:1-10, 야고5:7-10, 마태11:2-11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교회를 바로 세우라

 

저는 버스를 올라탈 때 처음 본 운전사이지만 나를 목적지까지 무사히 안전하게 운전해줄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은 어떤가요? 성경 말씀대로 예수는 나의 목자라고 믿습니까? 그 분은 나의 방패요, 나의 성채가 되시는 분이라고 믿습니까?

예수님이야말로 우리가 의지해야할 분이요, 나라는 존재는 그 분을 떠나서는 잠시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믿습니까?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과 삶은 우리가 가야할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믿습니까? 이 믿음은 흔들림 없이 우리 인생이 다하는 날까지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할 진리입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이런 믿음이 흔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믿음이 이렇게 흔들리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의심하게 되는가요? 그렇게 좋았던 믿음이 하루아침에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의 어떤 유혹과 고난이 있다할지라도 주님만을 의지하는 이 믿음만은 끝까지 지켜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요한은 감옥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예수인지 아니면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는지를”묻게 하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요한 만큼 예수님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자신은 신발 끈을 풀어 줄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고,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자신은 작아져야 하고 그분은 커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예수님 위에 내려오시는 모습”을 직접 보았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음성을 직접 듣기까지 한 사람입니다. 아마 성서에 나타난 사람 중에 요한 만큼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직접 체험한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자들을 보내어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묻게 한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요한만큼 예수님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확실한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믿음이 좋았던 요한이었지만 그도 의심을 하고 말았습니다. 왜, 이와 같은 의심을 하게 된 것일까요? 우리가 마지막 승리의 월계관을 쓰려면 이런 위기를 이겨내야 합니다. 고난과 위기 앞에서 흔들리고 있습니까? 지금 뭔가 갈등하고 있습니까? 오직 예수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선, 자기중심적인 믿음을 버려야 합니다.

왜 그토록 믿었고 의지했던 예수가 보이지 않을까요? 내가 중심이 되어 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미움이 생기고, 갈등이 생기고 오해도 생깁니다. 어떤 일이 생기면 남이 아니라 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은 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들여다보면 내 자신도 어떤 일에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를 보면 예수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요한이 감옥에서 “소경이 일어나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하여 진다.”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사야의 말씀처럼 메시아의 사역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의심을 했을까요?

세상 밖에서는 이런 소문이 일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이런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가 정말 소문처럼 메시아였다면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에게는 왜 아무런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그렇습니다. 주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도 나에게 어떤 유익이 없다면 사람은 언제나 불평하게 마련입니다. 다 좋아도 나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요한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분이 진정 메시아라면 왜 주님을 예비하며 삶을 송두리째 바쳤던 자신에게 아무런 기적도 보여주지 않는 것일까?

그렇습니다. 요한은 내 뜻, 내 의지, 나의 바람이 너무 컸던 것은 아닐까요?바로 이런 자기중심적인 이런 생각들이 그 좋았던 믿음을 흔들어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요? 만약에 어떤 사람이 교회가 내 뜻대로 움직여 주기를 바란다면, 내가 일하고 있는 일터가, 내 자식과 내 아내가 내 뜻대로 살아주기를 바란다면 그는 곧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받은 상처는 곧 타인에게도 아픔을 주게 됩니다.

때문에 주님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듣고 본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리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씀일까요? 나를 내려놓으면 보인다는 말입니다. 비록 요한 자신에게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지라도 예수님은 메시아로서의 일하고 계십니다. 병든자가 치유되고, 죽은 자가 일어납니다. 누구의 이름으로, 바로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참된 신앙의 길을 가려면 나를 중심에 두고 보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주님을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모든 문제가 치유되고 회복되는 길이 보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비록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여전히 나의 주님이시고, 나의 구원자이시며 그분이야 말로 내 생명을 다 바쳐 사랑해야할 나의 하느님이심을 믿습니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더라도, 포도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더라도,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나는 하느님을 찬양하리라 외쳤던 하바국처럼, 비록 죽음이 밀려와도 환란도 역경이 밀려와도 어떤 시련과 아픔이 밀려와도 예수의 이름에서 자신을 떼어 놓을 수 없다고 고백한 바울로처럼 우리는 어느 곳, 어떤 처지에서나 주의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을 찬양하며 살아가리라 다짐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 생각, 내 관점에서 보려는 이기적인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오히려 지금 교회가, 내 가정이,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내 삶의 현장에서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의 믿음은 반석위에 설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가 분명해야합니다.

릭 위렌 목사는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성공한 크리스찬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동감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왜 나를 이 자리에 세워 주셨든지 그 목적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주님은 요한의 제자들이 물러간 뒤에 군중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갔더냐?” 목적을 묻고 계신 것입니다. 목표가 흔들리면 삶이 흔들리고, 삶이 흔들리면 낙심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광야에 간 것은 바람을 보기 위함도, 갈대를 보기 위함도. 그리고 화려한 옷을 보려함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들려주는 예언자의 음성을 듣기 위해 간 것입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간 것입니다. 이 목표가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너희는 무엇하러 이 교회에 나왔더냐?” 성당이 아름다워서냐? 사람이 많이 모여서냐? 아니면 남보다 더 많은 축복을 받기 위해서냐?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말씀이 아니더냐? 그런데 그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여기에 있다” 예언자는 그 말을 전해주는 사람이지만, 주님은 그 말씀 자체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세상의 명예나 부귀를 추구함이 아닙니다. 자연의 이치를 연구하는 과학도 학문도 아닙니다. 이런 것은 모두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갖는 다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둘려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를 결단하고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환자에 대한 사랑보다 재물에 대한 사랑이 커지면 의사는 변질됩니다. 왜냐하면 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이 교회를 통해 무엇을 바라십니까? 말씀입니다. 말씀이 내 골수를 쪼개고 말씀이 내 심령을 변화시켜 하늘나라의 영광을 보려는 것 아닙니까?

바울은 로마서 8장 24절 이하의 말씀에서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힘쓰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내 자신입니까? 아닙니다. 예수입니다.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내 삶의 목표임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내안에서 나오는 소리, 세상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버리고 오직 십자가와 보혈을 통해 들려주시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이사야의 말씀처럼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그 음성을 듣기 위해 늘어질 두 팔에 힘을 주고, 휘청거리는 두 무릎을 꼿꼿이 세워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십자가를 볼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한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삶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지금 아파하는 사람과 함께 아파하고, 서로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습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서로 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말씀의 불길을 타오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내 명예와 권세를 세우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직 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바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서로 사랑하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지금 나의 삶의 현장에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이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과거를 버리십시오.

주님은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 중에 요한처럼 훌륭한 사람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과거에 요한은 정말 위대한 믿음의 소유자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그는 감옥에서 그토록 확신을 가졌고, 신뢰했던 그 믿음이 허물어져 있었습니다. 과거에 아무리 좋은 믿음을 가졌다할지라도 지금 그 믿음을 간직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 믿음은 이미 죽은 믿음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사람도 이보다 크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늘나라는 어떤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까? 오늘을 말합니다.

오늘이 중요합니다. 과거에 아무리 위대한 신앙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지금 그 믿음을 살아가고 있지 못했다면 그 믿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과거의 추억을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의 환상을 먹고 자라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아니라 오늘을 먹고 자랍니다.

주님은 어떤 상황에 있든지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신실하게 서 있기를 원하십니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오직 주님을 구주로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오늘도 묵묵히 주님이 가신 길을 가는 성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야고보의 말씀처럼 “농부는 땅이 귀중한 소출을 낼 때가지 끈기 있게 봄비를 기다립니다. 여러분도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하십시오.”(야고5:7)

소출을 낼 때가지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는 농부처럼, 괜히 과거나 미래의 환상에 사로잡혀 방황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일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과거는 흘려버려야 합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미래의 꿈꾸면서 오늘의 현실을 무시해 버린다면, 그리고 오늘의 삶의 헌신과 결단이 없다면 허망한 일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변질되면 먹을 수 없는 것처럼 의심은 우리의 믿음을 변질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의심을 버리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가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유혹이 있어도, 환란과 역경이 있어도, 죽음이 닥친다할지라도 결코 주님을 의지하는 이 믿음만은 지켜낼 수 있도록 깨어 있어야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런 믿음을 통해서만 주님은 성탄하시기 때문입니다. 반석위에 세워진 나를 통해, 이 교회를 통해 성탄하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