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말씀과 신앙나눔 2013년 2월 10일 주일 (설날/ 백) 성서말씀과 설교

2013년 2월 10일 주일 (설날/ 백) 성서말씀과 설교

794
0
공유



2013년 2월 10일 주일 (설날/ 백) 성서말씀


민수 6:22-27

 

22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3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말로 복을 빌어주라고 하여라.
24 '야훼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며 너희를 지켜주시고,
25 야훼께서 웃으시며 너희를 귀엽게 보아주시고,
26 야훼께서 너희를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면 내가 이 백성에게 복을 내리리라."

 

시편 89:1-2, 4-5, 12-16

1 주여, 내가 당신의 사랑을 영원히 노래하|리이|다. ∥ 당신의 미쁘심을 대대로 |전하|리이|다.
2 당신께서 다짐하신 |사-|랑, ∥ 그 미쁘심은 하늘처럼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4 내가 너를 왕위에 |앉히|고 ∥ 네 후손 대대로 왕 노릇|하게|하리|라.
5 주여, 하늘은 당신께서 이루신 기적을 |노래|하며 ∥ 거룩한 회중은 당신의 미쁘심을 |기리|옵니|다.
12 북녘과, 남녘을 만드신 이도 당신|이오|니 ∥ 다볼산도 헤르몬산도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옵니|다.
13 그 모든 전공이 당신의 |것이|니 ∥ 억세신 당신 손이여, 탁월하신 |오른|손이|여.
14 정의와 공정이 당신의 옥좌를 |받들|고, ∥ 사랑과 진실이 당신의 거동을 인|도하|옵니|다.
15 복되어라, 주님께 만세 부르는 |백-|성 ∥ 그들이 걷는 길을 당신의 환한 얼굴이 |비춰|주시|니
16 날마다 그 이름 높이 |기리|고 ∥ 당신의 정의로 사기도 |드높|습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아-|멘

 

야고 4:13-15

13 "오늘이나 내일쯤 아무 아무 도시로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어보겠다." 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합니다.
14 당신들은 내일 당신들의 생명이 어떻게 될는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들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15 그러므로 당신들은 "만일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우리는 살아가며 이런 일 저런 일을 해보겠다." 하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마태 6:19-21, 25-34

19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먹거나 녹이 슬어 못쓰게 되며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간다. 20 그러므로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어라. 거기서는 좀먹거나 녹슬어 못쓰게 되는 일도 없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가지도 못한다. 21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25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26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목숨을 한 시간인들 더 늘일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는 어찌하여 옷 걱정을 하느냐?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 못하였다.
30 너희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본기도>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대대로 번영을 누리게 해 주심을 감사하나이다. 비옵나니, 설날을 맞이하여 우리 선조들의 영혼을 기억하오니,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주님의 자녀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으로 이제와 영원히 사시며 다스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1>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설 아침입니다.
“새해에도 하느님께서 풍성한 복을 교우들께 내려주시길 기원합니다.”

설날은 추석과 더불어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우리의 명절은 대체로 조상 숭배와 효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추석은 햇곡식을 거두며 조상에게 감사하는 명절이고
설은 음력 새해를 시작하며 조상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명절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그리스도교 신자인 가족과 신자아닌 가족들이 함께 있으면 조상을 기념하는 제사문제를 두고 불편한 관계를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믿음으로도 우리 전래의 명절을 참되게 기념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형식적으로 고착화된 유교식의 제사예절이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조상을 참되게 기억하고 그들의 존재와 삶을 감사하고 조상을 위해 기도하며 바람직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차례의 제사를 대신하여 별세기념성찬예배를 바쳐드립니다.

 

별세기념은 인간의 이중성을 통찰하고 반성하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이 이중적인 존재라는 의미는 성서적인 표현으로 하면
흙으로 지어졌지만 하느님의 입김이 불어넣어진 존재라는 뜻입니다.
육신으로 살다가 죽는 유한한 생명이지만, 영혼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표현은 영혼이 불멸이어서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창조주이고 우리 영의 모상이신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우리는 흙덩이에 불과하다는 이 통찰,
하느님을 떠나서는 우리는 살아있어도 이미 죽은 것과 같다는,
하느님이 아니고는 그 무엇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
하느님 없이는 우리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 통찰이 귀한 것입니다.

동시에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흙덩이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로서
육신의 죽음을 넘어서서, 이기적인 자기를 넘어서서
영원한 생명,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 위대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와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이것은 머리로 생각해낸 추상적인 교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삶을 통해서 실제로 경험하는 하는 진실입니다.

우리가 잘난 체하며 내 뜻대로 인생을 살아보려고 합니다.
지식을 쌓고 돈을 벌고 권세와 힘을 추구하고 명예를 얻으려고 애씁니다.
많은 경우는 그것들을 추구하는 경쟁에서 밀려나 좌절하기도 하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고 이겼다하더라도 진정한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을 알게 됩니다.

 

야고보서는 우리가 헛되이 장담하지 말고 겸허히 하느님 앞에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우리의 삶이 “아침 안개같다”고 표현합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나머지 모든 필요한 것은 아버지께서 채워주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말씀들은 억지로 지어낸 훈계가 아닙니다.
인생의 본질이 그러하기에 마땅히 그러해야한다고 말씀 할 뿐입니다.

우리 인간이란 흙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동시에 영으로 살림을 받은 피조물입니다.
유한한 육신을 지니고 이 세상의 한계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지만
우리는 반성하고 기도하는 정신, 자기를 초월하는 정신을 가지고
영이신 하느님을 그리워하며 차원 높은 삶을 살기를 원하는 존재입니다.

죄의 본질은 이런저런 구체적인 범죄 이전에
하느님 없이 내 뜻대로 인생을 성공하려는 태도입니다.
유혹의 본질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느님을 대신하여 다른 것을 통해 인생을 누리려는 마음가짐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과 화해하여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찬미하올 우리 하느님은 우리와 같이 변덕스런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변함없이 신실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한 해가 바뀌어서 새로울 수 있고 우리가 결심을 새롭게 하여서 새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새로움은 하느님께서 날마다 하루의 생명을 새로 허락해주시고
우리가 다시금 시작하려는 노력을 축복해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위태위태한 삶 가운데서도 우리는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보장되는 것을 깊이 깨닫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 존재가 아니라면 조상들을 기억하고 감사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영입니다.
우리도 영이고 조상들도 영이되 하느님께로 하느님께 돌아가는 영입니다.
하느님 안에서만 안식할 수 있는 영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조상들을 기억하고 그 영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위대하게 알려진 성인성녀가 아닐지 몰라도
그 분들은 모두 믿음으로 희망으로 그리고 작지만 영원한 사랑으로 삶을 지탱하고 살아가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자손들에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복을 위해 지금도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또한 이제 우리 조상들의 영혼을 위하여 이 성찬례를 바쳐드립니다.
이 성찬례를 통하여 그들의 삶을 기억하고, 그들로 인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또 그들의 영혼이 주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기도드립니다.


채근담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石火光中,爭長競短,幾何光陰?
석화광중, 쟁장경단, 기하광음
蝸牛角上,較雌論雄,許大世界?
와우각상, 교자론웅, 허대세계

부싯돌 빛 속에서 길고 짧음을 다투어 본들 그 세월이 얼마나 되며,
달팽이 뿔 위에서 자웅을 겨루어 본들 그 세계가 얼마나 크겠는가!


최민순 신부 라는 천주교에서 매주 존경받는 시인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의 “천당이 어디냐구 ”라는 제목의 시를 읽어드리고 싶습니다.

 

천당이 어디냐구 가 보았느냐구요.
지옥은 어디냐구 가 보았냐구요.
몰라요 모르지요 몰라도 나는 좋아요
어디나 님 계시면 천당이 거기구요.
님 아니 계시면 어디나 지옥이지요.
악마란 무어냐구 묻지 마세요.

사랑 곧 없다면야 천사도 악마랍니다. (최민순)

우리는 조상님들과 천국에서 만나야 합니다.
하느님이 계신 곳, 지금 여기에서부터 저 훗날 저 세상에서까지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서로 상통하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의 올 한해가 참으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충만한 한해가 되시길 기원하며 별세한 교우들의 영혼이 하느님의 은총을 입어 평안히 쉬기를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