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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일 사순 2주일 –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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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일 사순 2주일 마르코 8:31-38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라

 
1. 오늘 읽은 복음 성경말씀은 3년에 걸친 예수님의 공생애가 마무리에 돌입한 시점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예수님에게 남은 최후의 과업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일이었습니다. 그 여정 중에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라는 마을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2.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는 본래 이스라엘 최북방 헬몬산 기슭 해발 345미터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헤르몬산의 만년설이 올려다 보이는 작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헤로데대왕의 아들 필립보가 그곳에 도시를 건설하고 로마황제의 칭호인 가이사리아에 자신의 이름을 덧붙여 가이사리아 필립보라고 불렀습니다.

3. 당시 로마제국에 속한 영토 내에는 로마황제의 이름이나 칭호를 붙인 도시가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나 아무 도시에나 황제의 이름을 붙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규모가 황제의 위용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 도시의 가장 중심이나 도시 높은 곳에 황제를 숭배하는 신전이 자리 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4. 당시 로마 황제는 지상의 신이었습니다. 명목상의 신이 아니라, 신전에서 인간의 경배를 받는 실질적인 신으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분봉왕 헤롯 필립이 건설한 도시에 황제의 칭호가 붙었다는 것은 이 두 조건이 충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는 한 마디로 신으로 군림하는 황제의 신전이 인간을 압도하는 황제의 도시였습니다.

5. 예수님은 제자들을 그곳으로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에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6.이 대화가 황제의 도시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황제가 신으로 경배되고 화려한 위용을 갖춘 황제의 도시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 당신이 그리스도, 우리의 구원자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로마 황제가 구원자가 아니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갈릴리 목수 출신인 예수님 당신이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이는 황제로 대표되는 가치관인 황금만능주의를 따르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통해 선포된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고백입니다.

7. 동일한 장면이 나오는 마태오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의 대답에 흐뭇해하시며 칭찬하셨습니다.

마태오 16:17-18,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 교회란 베드로와 제자들의 고백, 즉 황금만능주의를 거부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제자들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8. 이렇게 제자들로부터 고백을 받는 바로 그 때에 비로소 예수님은 자신이 가야 하는 길이 어떤 길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마르코 8:31, “그 때에 비로소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게 될 것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하게하셨던 것이다.”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9. 인생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죄와 그 죄가 인간에게 가져오는 해악입니다. 죄란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주인 되어 살아가는 삶의 태도입니다. 그런데 그 죄는 하느님과 사람이 분리되는 결과 – 영적인 죽음 – 를 가져오고 이렇게 하느님을 떠난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기 욕심과 세속의 가치관대로 살아갑니다.

10. 이것이 왜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됩니까? 개인과 그 개인이 살아가는 사회에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란 하느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느님은 공의와 정의, 사랑으로 다스리시며 그 통치의 대상이 가장 최고의 존재가 되도록 다스리십니다. 우리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주인된 삶을 살아가는 죄인된 사람은 하느님을 왕,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느님의 통치를 거부합니다. 자기의 생각과 욕망으로 살아갑니다. 하여 개인의 삶이 공허해지며 사람이 사는 사회와 국가는 불의와 부패로 신음하게 된 것입니다.

11. 바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이 살아가야 하는 바른 인생의 목적을 주시고자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 죽음의 의미를 예수님은 마르코 10장 4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하셨다. ”

– but to serve, and to give his life as a ransom for many.”

– RANSOME : 몸값, 보상금, 속전, 속죄, 석방, 해방, 되찾기

12. 사람들은 예수님을 좋은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으로 여기고 참으로 고결한 사랑의 삶을 살아가신 성인으로 존경합니다.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것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죽음을 치르러 오신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13. 재의수요일부터 사순 3주까지 드리는 성찬례 특정문 중 영성체 후 기도문이 이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주께서는 성자 예수를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과 경건한 삶의 모범으로 이 땅에 보내셨나이다.”

– 예수님은 나의 죄 값인 죽음을 대신 죽으시고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삶의 모본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14. 예수님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주인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하느님과 더불어 살아가며 하느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누리는 삶을 구원의 선물로 주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 3:16,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하여 바울로는 오늘 서신에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고백합니다.

로마 4:25, 예수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가 우리를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15.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외에는 인간을 구원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기에 예수님은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를 ‘명백하게’(32절)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황제의 도시에서 신으로 군림하는 로마황제가 구원자가 아니라, 예수님이 구원자 그리스도라고 대답을 했던 베드로가 지금은 십자가의 수난을 예고하는 주님 앞에 나서서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뛰고 있는 것입니다. 원어의 뜻으로는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꾸짖었다는 것’입니다.

16. 바른 대답을 하여 칭찬을 받았던 베드로가 왜 지금은 펄쩍 뛰며 예수님의 말씀에 반대하는 것일까요?
당대에 기대했던 그리스도 = 메시야 = 기름부음 받은 자 = 구원자는 정치적인 군사적인 메시야였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도 역시 그 생각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를 때 가지고 있었던 속 마음이 마르코 9장 33절-34절에 나옵니다. 33-34절, “그들은 가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께서는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에게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은 길에서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서로 다투었기 때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17.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난예고를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온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을 알지 못했고 예수님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고 싶어 하는 생각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십니다.

8:33, “그러자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시며 꾸짖으셨다.”

18. 사탄은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가로 막는 자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믿음의 고백을 했던 수제자 베드로일지라도 자신의 생각, 욕심에 사로잡혀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면, 사탄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19. 예수님에게 하느님의 일이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이란 예수를 이용해 자기 야망 실현하고자 하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행하는 일들입니다. 정치적 군사적인 메시야를 기다리는 황금만능주의 가치관을 따르는 길입니다.

20. 그래서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34절,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 정치적 군사적인 메시야를 기다리는 황금만능주의 가치관을 버리고 십자가의 길을 택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자도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향해 그리스도라고 고백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1.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도로 치달은 신자유주의 시대입니다. 오직 맘몬이 우상이 되어 다스리는 황금의 제국입니다. 이런 시대에 예수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길은 힘들고 어려운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나누고 베푸는 단순한 삶으로 시작됩니다. 황금만을 숭배케 하는 세상의 질서를 거부하고 바꾸어 갑니다. 교회는 이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예수 공동체입니다.

22. 특별히 우리가 지내고 있는 사순절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신앙을 바로 세우는 훈련의 기간입니다. 바른 기도를 배워가는 은총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른 기도란 예수님이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사명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며 게쎄마니 동산에서 최후에 드린 기도입니다.

마르코 14:36, “아버지, 나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하고 말씀하셨다.

23. 함께 모여 깊이 성서를 묵상하며 더불어함께 하느님의 일 –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여 파주우물교회를 통해서 이 지역 파주 땅에 악한 황금만능주의가 거두어지고 정의와 평화가 가득한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