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말씀과 신앙나눔 2015년 7월 26일 설교문 요한 6:1-21 / 양지우 부제(노원나눔의집)

2015년 7월 26일 설교문 요한 6:1-21 / 양지우 부제(노원나눔의집)

560
0
공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오병이어가 드러내는, 참된 기적의 기쁨을 삶 속에서 누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1.

복음서의 저자 요한은, 오늘 매우 널리 알려진 오병이어 기적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보리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예수를 찾아 온 많은 이들을 먹이신, 참으로 놀라운 사건입니다. 이 이야기를 과거에 있었던 신기한 일 정도로 제한해서는 곤란합니다. 성서의 기적 이야기들은 지금, 여기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참된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2.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십니다. 그 곳에는 수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피곤함도, 배고픔도 잊고 예수님의 말씀을 갈망합니다. 예수께서 그 군중을 먹이려 하실 때, 난색을 보이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나누어 줄 만큼의 음식을 준비하려면 막대한 돈을 들여야 한다던 필립보, 한 소년의 도시락 거리를 바라보며 소용없을 것이라 낙담하던 안드레아. 이 이야기만 가지고는, 제자들의 반응이 사려 깊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시험하는 예수님이 부당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나누어진 공간이 산인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산은, 패배자들과 슬픔을 안은 이들의 공간이었습니다. 로마의 억압과 동족들의 착취를 견디지 못한 이들이 오르는 최후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무기를 들고, 도적이 되는 방법 외에 다른 선택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분노와 미움의 공간, 그 곳은 바로 산입니다.

 

제자들의 이야기는 이를 배경으로 살펴야 합니다. 가난하고, 슬픈 이들을 먹이기 위해 막대한 돈을 쓸 수 없다는 필립보, 가난한 아이의 도시락을 내려보며, 이깟 게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는 안드레아. 그제서야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마음을 떠보려는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영험함을 알 뿐, 진정으로 예수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3.

이야기에서 조연의 역할에 머물러 있지만 제자들의 태도와 정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도 등장합니다. 바로 안드레아가 “웬 아이”라 불렀던 그 소년입니다. 소년은 부모님께서 챙겨주신 음식을 예수님께 아낌없이 내어 놓았습니다. 소년의 가족이 매우 궁핍했으리라는, 상상은 매우 적절하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만은 굶기지 않겠노라고, 허리띠를 졸라매던 부모의 모습이 선합니다.

 

교우 여러분은 이 시대에 그리스도교를 괴롭히는 가장 강력한 질문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신이 어디에 있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왜 죄인인가. 우리는 구원이 필요 없다/ 같은 질문이 그리스도교를 괴롭히는 근본적인 질문인 것 같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쉽게 떨쳐버리지 못해 더욱 가슴 아픈 말은 바로 “이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질문에 삶으로 답해야 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 내가 맺은 관계, 그리고 나 자신까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값없이 주어진 것, 즉 “거저 주어진 것”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잠시 빌리고, 잠시 머무는 나그네들입니다. 소유, 관계, 그리고 삶 자체를 본래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내어 놓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 아이의 이야기를 살필 때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갖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진실한 소년의 봉헌이야말로 오병이어 기적을 이루는 주춧돌입니다.

 

4.

소년의 봉헌은 예수님께 전해집니다. 그 뒤, 교회의 사명을 완전하게 펼쳐 보이시는 예수님의 네 가지 행동이 보입니다. “빵을 들고, 감사기도를 올리신 다음, 쪼개어, 나누어 주셨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행동은 단지 빵에 한정되지 않고, 우리의 삶 자체에 드려지는 축성의 행위입니다. 즉, 하느님의 창조물로서 본래 갖고 있던 거룩함과 고귀함을 펼쳐 보이는 일입니다.

 

먼저 하느님께서 들어 올리십니다. 우리는 살아내기, 살아남기라는 지상 과제에 짓눌려 지냅니다. 살아남으려는 의지는 무서우리만치 공고해서, 마음 깊숙한 곳까지 잠식해 있습니다. 하느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가족이 아닌 이들, 더 좁게는 나 아닌 다른 이들을 바라볼 수 없게 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짓눌려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높이 들어 올리십니다.

 

그리고 감사 기도를 드리십니다. 빵과 우리의 삶은, 값없이 주어진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빚은 선물입니다. 선물에 대한 감사를, 마음 속 깊은 곳에 담아 우리는 기도드립니다.

 

그 후, 빵을 쪼개십니다. 단단하게 완결된 사람은 나누어 전해질 수 없습니다. 여백에 꽃이 피듯, 우리 자신을 쪼개어 무너뜨리고, 스스로를 극복해야만 누군가를 사랑할 힘을 얻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쪼개진 빵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이 빵은 예수님의 손에 들리기 전의 빵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하느님께 들어 올려 졌고, 은총에 대한 감사를 가득 머금었으며, 자기 자신을 부수어 나누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빵은, 우리 자신이며, 신비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뜻합니다.

 

5.

말씀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풍랑에 휩싸여 괴로워하는 제자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따듯하게 다독이시며, “나다. 두려워할 것 없다” 하십니다. 그렇게 두려움과 불안을 이기며 한 걸음 더 세상으로 내딛자 하십니다.

 

6.

교우 여러분, 오늘 복음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돌이켜 보십시오. 예수님께 모이고,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나의 소유, 관계, 자기 자신을 봉헌합니다. 봉헌된 모든 것은 예수님의 손에 들리고, 감사기도 드려지며 쪼개어져, 사람들에게 나누어집니다. 결국 이 빵을 나누어 먹은 이들은 두려움과 불안을 넘어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이 모든 일들, “기적”이라 불리는 이 오병이어의 사건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오병이어의 기적은 우리가 드리는 감사성찬례와 고스란히 겹칩니다. 여러분은 교회로 모여, 말씀을 듣고, 봉헌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빵을 쪼개서 나누어 먹고 세상을 향해 파송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군중들을 배부르게 하고, 생명을 주었듯이, 감사성찬례는 이 세상을 먹이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합니다. 오병이어의 이야기는 성찬례를 드리는 교회가 심장에 품고 있던, 구원의 잔치를 말합니다.

 

7.

혹시, “가나안 교인”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이 말은 “안나가”라는 말을 뒤집어 부르는 말입니다. 세상의 교회가 빛과 소금으로 살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의 열망을 고스란히 닮고 있는 것에 실망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나가지 않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작정한 세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이 아쉽습니다. 누군가가 교회를 나가지 않겠다고 용감하게 선언하는 그 순간에, 어떤 이들은 교회에 안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못 나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픈 이들과, 가난에 찌들어 말끔한 옷 한 벌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이들은 교회에 못 나갑니다. 그들은 마치,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산에 오른 군중들과 같이 이 세상을 피해, 깊고 습한 어딘가에 웅크리고 살아갑니다.

 

오병이어가, 그리고 그것을 담아낸 감사성찬례가 진정으로 기적이기 위해서는, “교회를 나가지 않겠다”는 호기 가득한 저항이 아니라, 교회로 모일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올 수 없는 이들을 찾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잣대와 판단으로 인해, 이 세상의 뒤편으로 밀려나 있는 사람들을 환대해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감사하는 삶으로 초대해야 합니다.

 

8.

이제 모두 함께, 오병이어의 기적을 받아 안은 서로에게 인사하고, 봉헌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립시다. 빵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하는 기도를 함께 올리며, 진정으로 변화하는 것은 빵 뿐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진실을 마음에 새깁시다. 영원히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는 참된 양식으로 살며, 두려움과 불안을 넘어서, 부족한 모습 그대로 친구가 됩시다. 세상의 짓누름과 편견, 억압을 이기고 교회로 모인 우리의 삶이, 진정한 기적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