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말씀과 신앙나눔 2016 연중21주일 설교 (원주나눔교회, 이쁜이사제)

2016 연중21주일 설교 (원주나눔교회, 이쁜이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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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연중21주일 설교

소명
경계를 넘는 일

예레미야 1, 4-10
히브리서 12, 18-29
루가 13, 10-17

#1.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이번 주간에는 우리들에게 특별한 주간이었습니다. 선교 20년을 기념하여 우리들의 향후 10년 선교 방향을 정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상깊은 울림 있는 말들이 제 귓가를 스쳐지나갔습니다. ‘갑자기 교회가 어색하지 않고 불편하지 않았어요. 이제 저 교회 식구 됐나봐’ ‘지금 여기 앞으로 함께 할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신부님 재미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재밌었어요” 기도하면서 준비하는 데 몇 분이나 오실까요. 하고 질문하는 나눔의집 식구에게 30명이 제 목표에요. 했습니다. 그런데 약간 넘는 숫자가 오셨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많은 식구들은 아니었지만 아주 더운 날 잘 보냈습니다. 지나온 교회 비전들을 들으니 두근 거렸습니다. 아 내가 이 교회의 역사에 함께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
네 개인에게도 아주 큰 일이 있었습니다. 새 차가 사고가 난 것입니다. 차는 거의 다 망가졌고 차는 남편과 애린이 타고 있었습니다. 상태로는 기적처럼 살았다는 표현이 딱 맞으리만큼 심하게 망가졌습니다. 새삼 실감하며 우리는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사실 이번 주간에 준비할 일이 너무 많은 엄마를 남겨두고 아빠 교회로 방학 때만 할 수 있는 여행을 떠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하고 큰 사고가 난 것이었습니다. 순간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이는 엄마를 보자 마자 큰 소리로 울면서 ‘엄마 내 삶에서 가장 나쁜 날이야’하고 놀래서 엉엉 울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안고 말했습니다. ‘아니야 애린아. 차 좀 보렴. 저 정도 사고면 엄마를 못 만날 수도 있었는데 아빠도 너도 무사하잖아. 우리가 다시 만났으니 애린 삶에서 최고로 운이 좋은 날이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상대차가 과실 100%여서 이것저것 처리를 하고 돌아와 앉은 우리들은 저녁 식사시간에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빠 기도에 이어 애린이가 기도했습니다. ‘하느님’하는 데 아이가 울컥했습니다. 진심으로 기도하는 대목입니다.

#3.
새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오늘 말씀을 이어갑니다. 새 삶.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새삼 자랑스러운 원주교회의 비전들을 들으면서 교회에 새 삶의 20년 주인이 난데 그 길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 교인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러고 만난 오늘 복음과 1독서 2독서는 복음말씀은 마치 주님께서 우리들을 초대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우리교회는 아주 작은 작은 교회입니다. 교회가 감당하거나 집중받는 일이 많아서 가끔 부담스러울 정도로 아직은 푸릇푸릇 새싹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꿈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혈기왕성합니다.

#4.
우리들의 앞으로의 10년은 교회와 함께 할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20년의 비전을 함게 세운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형식적인 비전 선언만을 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들을 무엇으로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우리들에게는 용기가 필요하고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굽어있는 허리를 주님께서는 말씀하지도 않고 고쳐주십니다. 고쳐주시는 늘 우리곁에서 계셔서 용기를 주신다는 뜻입니다. ‘몸이 굽었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지은 짐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일 때 무슨 해야 할 일이 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럼 사양을 하게 됩니다. ‘주님 저는 못합니다. 왜 저입니까. ’ 그 때 늘 가장 소명으로 위로해주시는 말씀이 예레미야의 말씀입니다.

#5.
‘아이라서 말을 못합니다.’ 그럴 때 세계 만방에 손에다가 너를 맡긴다고 말씀하십니다. 큰 축복이 이보다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말씀을 읽으면 우리는 누구나 내가 됩니다. 내가 맡겨진 많은 일들이 나를 주저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허리 펴지 못한 채로 살게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내 편이라고 하니 갑자기 눈물이 나고 용기가 조금은 생깁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주님은 치유해주시고 안식일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도대체 안식일이 왜 생겼는지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픈 이들에게 억압하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니다. 안식일의 의미를 새롭게 해라. 오해하지 마라. 너를 무너뜨리고 움직이지 못하기 위해 있는 날들이 아닌 것이다. 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20주년 기념은 우리들의 안식일입니다. 우리들을 새롭게 움직이고 우리들을 희망차게 합니다. 그것은 학기를 새롭게 맞이하는 아이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무엇이기에 그런 큰 일을 주시는 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분의 뜻은 치유해 허리를 펴게 하는 일입니다. 여인아, 이미 나았다.

#6.
헌금하지 못해 낫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축복기도 한 번이면 좋아졌을 것인데 18년이나 묵은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그녀를 낫게 합니다. 그리고 대신 싸워주십니다. 그 분은 이렇게 우리를 담대하게 하고 소명을 이어가게 합니다. 소명은 경계를 넘는 일입니다. 경계를 넘는 사람들은 진정한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을 자유롭게 합니다.

#7.
자, 눈을 잠시 감아보십시오. 여러분이 디디고 있는 땅을 보십시오. 지옥문 앞인가요. 아니면 그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갔던 그 시나이산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재에 근거합니다.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우리는 그 몫을 분명히 해나갑니다. 우리들의 땅은 분명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분명 신비한 일입니다. 우리가 선교 비전을 세울 만한 힘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고작 100명이 안되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분명한 것은 지금 그 접경에 와있다는 것입니다.

#8.
우리가 결심할 것은 그분께 예배드리는 삶으로 소명을 따르겠다고 하면 되는 것일것입니다. 그럼 그분께서 이끄실 것입니다. 새학기를 맞이하는 사람들, 이제 가을과 겨울을 맞이할 우리들, 담대함으로 경계를 두려워하지 말고 나아가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