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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마르틴 루터(1483-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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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1483-1546)

본 내용은 대한성공회출판부에서 1998년 5월 발행한 책 <우리 믿음 바로 알기(김진만 저)>입니다. 게시를 허락해준 대한성공회출판부에 감사드립니다.

16세기 종교 개혁 시대에 영국 성공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종교개혁의 선구자 루터였다. 헨리 8세의 캔터베리 대주교 크랜머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학생시절부터 루터의 개혁 사상에서 엄청난 영향과 영감을 받았다. 영어로 된 가장 훌륭한 성서 번역을 남기고 외지에서 순교한 틴데일도 평생 열렬한 루터 신봉자였다.

루터는 수사였고, 신학 박사 학위를 가진 대학 교수였다. 루터는 혁명적인 글로써 큰 소동을 일으켰고, 독일인들의 반성직 감정이 그 추세를 도왔다. 수사 생활 중에 사람은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깨닫고 이것이 스스로의 죄와 구원 문제로 깊은 고뇌와 좌절에 빠졌던 루터를 살려주어, 개혁자로서의 장도에 오르게 했다. 믿음만으로 죄없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건전한 교리이며, 믿음의 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히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선행을 하게 된다는 것이 루터와 성공회의 가르침이다(아우구스부르그 고백 4조; 성공회 39개조 11, 12조).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로마 1:17). 이런 대목과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누구를 막론하고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우리 자신이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그리스도가 죄를 조장하시는 분이란 말입니까?”(2:16-17)에서 루터는 해방의 빛을 보았을 것이다.

루터는 1520년에 [선행론]을 쓰고 십계명을 신앙 생활의 기본으로 가르쳤다. 1520년 한 해 동안에 루터는 몇 편의 중요한 글을 썼다. 그 해 4월에 [미사에 관한 설교]를 써서 모든 교인이 사제라는 것을 선언했다. 6월에 낸 [로마 교황론]에서 로마 교황은 성경이 말하는 반그리스도라고 단죄했다. 8월에 낸 [독일 귀족들에게 고한다]에서는 국왕과 영주와 같은 세속 통치자들에게 교황은 아무런 지배권이 없다고 하고, 교황이 성경의 최종적 해석자가 될 수 없다는 것과, 교황청(쿠리아)의 부패를 고발하고, 다시 모든 신자가 사제라고 선언했다.

10월에 쓴 유명한 [바빌로니아 유배]에서는 성사를 일곱 가지에서 세례와 성찬의 두 가지로 줄였다. 영국의 헨리 8세는 이것을 보고 격노해서 루터의 잘못을 규탄하는 논문을 써서 교황에게 바치고, 교황은 그에게 ‘믿음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내렸다. 물론 헨리가 영국 교회를 로마로부터 떼내고 교회의 수장으로 앉히기 전의 일이다.

루터는 1520년대에 신약을 원어인 희랍어에서 독일어로 번역하는 위업을 시작해서 1534년에 독일어 신, 구약 전부를 완성했다. 그리고 1523년에는 성찬식 예문을, 1526년에는 세례식, 연도문 등을 지었다. 이것이 1549년에 크랜머가 꾸민 영국 성공회 첫 공도문의 바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