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말씀과 신앙나눔 3월 30일 사순 4주일, 요한 9장

3월 30일 사순 4주일, 요한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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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은 사순 4주일 – 장미주일, 장밋빛 제의를 입은데서 비롯, 사순절 경건 훈련 중, 부활의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하고자… 참 좋은 날, 오후 교회 일정도 없는데… 자연을 통해서 새봄의 기쁨을 만끽하기를 … 하지만, 어떤 분들은 오후에 있는 중보기도회에 참여하여 교회와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영적인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이렇게 기쁨의 기준,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 


2. 유치원 때 : 하버드대학 – 아인쉬타인우유 / 초등학교 때 : 서울대학 – 서울유유 / 중학교 때 : 연세대학 – 연세우유 / 고등학교 때 : 인서울은 하겠다. – 건국우유 / 건강이 나빠져 자족하며 웃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깨달음에 – 빙그레우유로 바꿈


3.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 행복의 기준은 다 다르지만, 인간은 행복하고자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 일반적으로 행복하고자 추구하는 것들 : 4P – Pleasure, Prestige, Power, Property.


4. 행복은 눈에 보이는 어떤 조건의 확보에 있지 않다. 자주 말씀드리지만,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두 가지 조건이 확보될 때 행복하다. 하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것을 경험할 때, 그리고 또 하나는 왜 사는 것인지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 때.


5. 사람들을 보면, 4P로 대변되는 눈에 보이는 세상을 것을 성취하고자 달려가다가 어느 순간 문득… 이렇게 사는 걸까? 이보다 더 나은 삶은 없는 것일까? 고민하며 진실한 사랑을 찾게 되고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는 때가 있다. 물론 죽는 순간까지 이런 자각 없이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 고난을 맞이하거나 깊은 실존적인 고민 속에서 자기 인생에 질문을 던지고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된다.


6. 이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인간의 내면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다.
전도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7. 눈에 보이지는 않는 것이지만, 진실한 사랑과 인생의 목적을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바로 영원을 바라보는 믿음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는 영원하신 하느님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8. 오늘 복음은 인간이 영원에 눈을 뜨는 영적인 여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스토리이다.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이 예수님이 베푸신 치유의 기적으로 눈이 뜨이고 보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예수님에 대한 그의 고백이 달라진다.


9.
11절, 그는 “예수라는 분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시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시기에 가서 씻었더니 눈이 띄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절, 그들이 눈멀었던 사람에게 “그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니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하고 다시 묻자 그는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8절, “주님, 믿습니다.” 하며 그는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렸다.


10. 그런데 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갖는 인식과 고백에 따라 보는 것이 사람들이 보는 것이 달라진다. 보는 것이 달라지면 삶이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에서
“예수는 누구인가”가 핵심 주제이다.

 

11. 처음에 눈 뜬 소경에게 예수님은 단지 이적을 행하는 능력자 였을 것이다. 대개 무당들이 그렇듯이 이 단계에서는 그에게서 어떤 삶의 영향력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에게 몰려가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일부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생업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제자가 되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12. 아마도 여러분도 과거에 이랬을 것이다. 문제가 있어 어떤 집회에는 가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매주일 교회에 가고 그것도 모자라 주중에 교회에 가는 사람? 또 주말에는 어느 곳에 가서 봉사하는 사람? 이해가 안된다. 어떤 사람은 정기적으로 자기 수입의 십일조를 내고 또 어느 때는 특별헌금을 하려고 애쓰는 사람? 왜 그러는지 알 길이 없다. 오늘 같이 좋은 날씨에 서울에 가서 중보기도하는 사람… 이해가 안된다.


13. 시간이 지나자 그는 예수님을 예언자라고 고백했다. 예수님을 하느님이 보내신 분으로, 그 분의 말씀이 하느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말이다. 그의 가르침과 교훈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따를 만하다는 것이다.


14. 자기 삶을 진지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갖는 태도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존중하고 그에 따라 살면 자기 인생이 좀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가 있다. 그런데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는 없다. 내 생각과 경험에 비추어 납득되는 것에 대해서, 나의 삶을 좀 더 향상 시켜 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교훈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다. 하지만 예수님을 예언자나 랍비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이 그의 말씀에 순종하지는 않는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를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주체는 여전히 나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여전히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다. 기억하는가? 우리 기독교에서 죄란 자기가 주인된 삶이다. I-Centerdness.


15. 이런 분들은 대개 인생을 진지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자기 삶의 기준을 강화하면서 선하게 착하게 살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노력해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 갈 수도 있다. 그런데 노력하면 할수록 애쓰면 애쓸수록 힘들고 버겁다. 기도와 예배 가운데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참 애쓰는데 정작 어떤 관계의 어려움에 빠지면 내 안에 사랑의 능력이 없는 것을 뼈져리게 알게 된다.


16. 예수님 믿는다고 고백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데 이미 죽은 옛 자아가 자존심과 미움으로 시퍼렇게 살아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십자가의 사랑은 내 안에 없다. 나는 죽고 예수님이 내 안에 살기에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용서하고 용납하고 섬기는 사랑을 살아내지 못한다.


17. 그의 말씀을 교훈으로 받아들였지만, 정작 말씀대로 살아가는 능력이 없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절망하게 된다. 아직 예수님은 내 삶에 참 좋은 말씀과 교훈을 주는 예언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때 자기에 대해서 진정으로 절망할 수 있다면 그것이 축복이다. 자기에 대한 거룩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라고 했다.

 

18. 눈 뜬 소경은 예수님과 다시 만나서 대화하는 중에 예수님께 이전과는 전혀 다른 믿음의 고백을 드리게 된다. 38절을 다시 읽어보자. 38, “주님, 믿습니다.” 하며 그는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렸다. – 이 모습이 우리가 예수님 앞에 드려야 하는 고백과 태도이다.


19.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그 앞에 엎드리는 종으로 산다는 것은 하느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보는 것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영적인 눈이 완전하게 뜨이는 것이다.


20. 영적으로 눈을 뜬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주님의 시선으로 만물을 바라보고, 주님의 시각으로 만사를 관찰한다는 의미이다. 영적인 눈을 뜨면, 하느님께서 한없는 사랑으로 우리 모두를 대하시듯, 우리도 조건과 차별이 없는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21.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에 대해 유대인들은 “죄를 뒤집어쓰고 나온 불행한 인간, 저주받은 인간”으로 보았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이 마땅히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누려야 한다고 보았다. 이 시선을 갖게 되는 것이다.


22. 하여 먼저는 나 자신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게 된다. 내가 처한 환경이나 조건, 나의 지금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알게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고 그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존귀한 존재로서 자신을 보게 된다. 4P가 부족해도 하느님의 사랑으로 인해서 행복하다.
“어린양 찬양하리 내 평생 그 하나로 충분해요.” 노래하게 된다.

 

23. 그러면 하느님의 시각으로 사람들을 보게 된다. 내가 받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람들을 용서하고 용납하게 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주신 새계명에 순종하는 삶이 살아지는 것이다.

 

24. 나아가 하느님의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게 됨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긍휼하게 여기며 자기의 것을 나누게 된다.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회의 어둠을 보며 그것을 폭로하는 정의의 삶이 나오게 된다. 서신의 말씀처럼 어둠을 폭로하는 용기가 샘솟는 것이다. 예수님이 빛이시기에 예수님을 그 인생에 주인으로 모시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변화이다.

 

25. 인생의 기쁨, 행복이란 그저 걱정거리가 없어진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체험하는 것이다. 이는 곧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면서 영적으로 눈이 뜨일 때 사랑의 하느님의 시선으로 나와 이웃과 세상을 바라보며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기쁨과 행복이다.

 

26. 주님은 오늘도 거듭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나를 믿으라. 나를 너의 인생의 주인으로 맞아드리라. 하여 빛이신 나로 인해 영적으로 눈이 떠져 새로운 삶의 방식을 살아가며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