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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방언 – 이상한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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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 – 이상한 언어

 
본 내용은 대한성공회출판부에서 1998년 5월 발행한 책 <우리 믿음 바로 알기(김진만 저)>입니다. 게시를 허락해준 대한성공회출판부에 감사드립니다.

성령 운동에 열심한 사람들 중에 방언을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에서(혹은 교회 밖에서) 방언이라는 것은 경상도 사투리, 평안도 방언 같은 사투리나 지방어가 아니다. 그것은 희랍어로 ‘혀’와 ‘말한다’는 낱말인 ‘글롯사’와 ‘라리아’를 합친 말, 즉 ‘혀로 말하기’라는 것이다. 신약 시대에는 방언이 아주 흔한 현상이었다. 사도행전 2장 4절에 이런 기사가 나온다: 오순절에 모인 신도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그리고 사도들이 말하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자기네 지방 말로 들리므로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이를테면 서울의 종합 운동장에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 동유럽과 서유럽의 수 많은 나라 사람들이 모였는데, 한국 대통령이 한국어로 한 환영사를 그들 모두가 각기 자기 나랏말로 알아듣고 놀랐다는 것이다. 또 저희들끼리 자기네 말로 이야기를 하는데 서로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종합운동장에 모인 대통령과 세계 각국에서 온 가지각색의 사람들의 ‘마음이 성령으로 가득 차서’ 여러 가지 외국어를 자기 말처럼 알아들었다는 식이다. 보통 번역에서는 이 말을 ‘방언’이라고 했지만, 공동 번역은 ‘외국어’, 또는 ‘이상한 말’로 번역하고 있다.
 
방언을 하는 습관은 바울로의 고린토 교회에서도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런데 성 바울로는 방언에 대해서 뜻밖의 교훈을 주고 있다.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사람은 성령의 힘으로 신비한 일을 말하는 것이므로 아무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I 고린토 14:2 이하). 성 바울로는 대체로 방언이나 방언을 하는 능력에 회의를 표시하고, 그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예언과 예언의 능력을 더 귀하게 여겼다.
 
바울로는 같은 편지의 12장에서 하느님의 은사를 열거하고 있는데, 그 중에 방언을 하는 능력을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로 꼽고, 곧 이어서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해석하는 능력을 들고 있다.
 
바울로 성인의 말은 믿어야 한다. 방언을 하는 사람들은 고린도 교회뿐 아니라 한국의 교회에도, 성공회 교인 중에도 있다. 소위 ‘성령 세례’를 받았더니 손발이 떨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방언을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교우들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소위 방언을 할 줄 알아야 진실한 신자이며, 방언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믿음이 모자란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바울로보다 더 나은 사람인가? 방언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사의 하나라고 바울로도 인정했다. 그러나 그 은사 때문에 교회가 갈라지는 비극이 빚어진다면 큰 일이다. 그럴 위험성은 고린토 교회가 이미 보여주었다.